[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업계에서 ‘제네릭 의약품 활성화’ 정책을 두고 취지와 거꾸로 가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약품비 절감이라는 제네릭의 취지와 달리 정부가 약가에 손을 댄 이후 해외보다 가격이 되레 비싸지는 것으로 나타나자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는 ‘해외 약가 비교 재평가’를 통해 제네릭 의약품의 가격을 대폭 인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정부는 해당 정책의 추진을 본격화했으며, 2023년 1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관련 민·관 간담회를 10차례나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제네릭 의약품의 활성화와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하는 중이다. 업계는 정부 측과 만나 해외 약가 비교 재평가의 부당성과 시행시기의 부적절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왔으나, 정부의 시행 의지를 꺾는 데는 부족함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제네릭 의약품은 오리지널 대비 저비용으로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확보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정부의 의료비 지출을 절감하는 효과도 지닌다. 하지만 정부가 꼽은 국가들이 비교군으로 적절하지 않으며 환율 폭등과 전공의 사태 등으로 시기도 좋지 못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려는 8개 국가는 신약 산업이 발달해 제네릭 의약품의 가격이 저렴하기로 유명하다”면서 “환율 폭등과 전공의 이탈로 의약품 경기가 좋지 못한 가운데 해외 약가 비교 재평가를 도입하는 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꼴과 같다”고 비판했다.
업계는 특히 비교 방식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제네릭 의약품 해외약가 비교 재평가의 근거는 우리나라 제네릭 의약품 가격이 해외보다 높다는 전제로 이뤄진다. 그러나 국가별 제네릭 의약품 산정법을 감안해 가격을 추정하면 최초 등재 시 매우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나라의 제네릭 의약품 가격은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의 최대 53.55%(1년간 59.5%)로 산정된다. 반면 해외 A8 국가(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일본, 캐나다)의 제네릭 의약품 가격은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의 40~80%로 산정된다는 데서 모순점이 발생한다.
가격산정비율도 40%를 기록한 프랑스를 제외한 A8 국가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을 뿐 아니라 신약의 가격이 우리나라가 A8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아 최초 등재 시 제네릭 의약품의 가격은 국내가 낮을 수밖에 없다. 최초 등재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주요국들보다 훨씬 낮은 셈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제네릭 의약품은 시판 후 가격 변동이 크지 않지만 외국의 경우 시장원리에 따라 가격이 지속 하락한다는 점. 한국제약바이오협회 ‘KPBMA FOCUS’에 제출된 자료에서는 주요국들의 제네릭 의약품 가격은 시간이 흐르면서 급격히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우리나라 제네릭 의약품 가격은 등재 시 해외 주요국보다 낮게 등재되지만 등재 후 가격 경쟁이 일어나지 않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해외 주요국의 가격과 역전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국내 제네릭 의약품 약가 제도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해외 약가 비교 재평가를 도입하려면 최초 등재 시 기준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약가결정 기준(오리지널 대비 53.55%)을 해외 가격을 참조해 산정하게 바꾸고 등재 후 해외 가격 변동과 연동해 가격을 깎아야 사후관리 체계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가격을 직접적으로 인하하는 방식의 ‘약가 사후관리제도’를 시행하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우리 정부는 제네릭 의약품을 포함한 모든 보험 등재 의약품에 사용량-약가 연동협상을 비롯한 약가 사후관리제도를 적용해 수시로 가격을 인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제네릭 의약품의 적정 사용을 통해 약품비를 절감하기 위한 정책으로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 저가약 대체조제 장려금 지급 제도, 처방조제 약품비 절감 장려금 제도 등을 시행해 제네릭 의약품의 사용을 장려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매우 미미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종혁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주요국들의 경우 제네릭 의약품의 가격이 시판 후 자연스럽게 인하되도록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특정 시기의 해외 가격을 참조해 가격을 인하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드물다”며 “타당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의약품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서는 제네릭 의약품 사용 촉진 제도를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며 “제네릭 의약품 사용 촉진 제도와 더불어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강화와 제약 산업 진흥이 균형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합리적인 정책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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