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훈 한국기계연구원 반도체장비연구센터 책임연구원(사진)은 국내 기술사업화 환경에 대해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해 북미 최대 글로벌 엔지니어링 회사 KBR에 기술 이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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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임연구원은 “대부분의 연구자들, 특히 창업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기술사업화가 활발한 미국으로 가고 싶어할 것”이라면서, 국내의 기술사업화 현실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기술성숙도(TRL) 총 9단계 중 사업화 단계인 7단계 이상이 되지 않으면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국내에서 시간이 걸려 힘겹게 연구개발비 만으로 TRL 6~7 단계까지 갈 동안, 외국은 3~4 단계에서부터 투자를 통해 자금이 유입되고 기술개발 속도가 빨라지면서,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기계연은 지난해 정부출연연구기관 융합연구를 통해 만든 탄소저감 기술을 글로벌 엔지니어링 회사 KBR에 이전 했다. 이대훈 책임연구원과 조성권 책임연구원이 개발한 이 기술은 촉매방식 나프타분해센터(NCC) 공정의 촉매 재생기에 연료유 대신 공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을 열원으로 공급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기술이다.
현재 조선, 플랜트 등 굵직한 사업들에서 기술 라이센스를 가진 기업은 해외기업들 밖에 없다. 이번에 기계연이 KBR에 기술 이전을 하게 되면서 KBR을 통해 개발된 기술을 외국의 여러 회사가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이 책임연구원은 “문제는 우리 기업들이 자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도, 해외에서 시작된 산업에서는 신뢰성이 중요한 만큼 전문적인 대형 회사의 기술 라이센스를 도입해야 한다는 점”이라면서 “우리나라가 라이센싱 기업을 보유하려면 기존의 라이센싱 기업을 통해 자체 공정기술에 대한 크레딧을 쌓아야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술사업화 이후에도 여러 난관이 따르며, 그 과정이 쉽지 않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연구과제가 끝난 뒤에도 KBR이 요구하는 실험을 추가로 해야 했지만, 이에 대한 지원이 없어 외부 기업에 자체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며, “연구개발(R&D)이 끝난 후 연구원들은 기업이 제품화를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기업은 연구소에서 제공하는 기술이 제품화 가능한 단계까지 완성된 상태이길 기대한다. 이 과정에서 중간 다리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기술이전과 사업화 사이의 단계는 논문이나 특허 같은 정량적인 성과가 나오는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기술이전을 마친 후 기업과 연구원 간의 연결고리가 없어 노하우나 기술 확장과 관련된 부분을 전수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재 과학자들이 기술사업화를 실현할 동기부여와 유인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기술이전을 하거나 연구팀원이 창업을 할 경우, 연구원들은 해당 기업의 지분을 가질 수 없게 되어 있다”며, “내가 관여한 기술인데도 ‘내 회사’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가 없다”고 전했다.
연구원들은 또한 민간기업에서 겸직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는 연구원 창업이 활성화되지 않는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다. 창업을 하게 되면 연구소 출입이 제한되며, 연구소 인프라를 활용하려는 인적·물적 네트워크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이 책임연구원은 “연구원이 지분을 갖고 겸직을 하는 것은 학교에서는 가능하지만, 연구소에서는 불가능하다”며, “이를 허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시행령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도한 세금 부과 역시 혁신적인 기술 개발을 저해하는 장애물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이전에는 비과세였던 직무발명보상금이 2016년 12월 소득세법 개정으로 일반 소득으로 간주되면서, 연봉과 합산해 과세되며, 기술료가 포함된 소득에도 누진세가 적용돼 결국 45%의 세금을 떼어간다”며 “로또 당첨보다 더 높은 세율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또한 대기업들이 기술에 적절한 가치를 인정하고 이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구조의 정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학자들의 연구가 기술 사업화를 통해 금전적인 이익을 창출하더라도, 그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지나치게 적다는 것이다. 결국 뛰어난 인재들이 의학 분야로 몰리며 과학계에는 인재가 유입되지 않는 악순환이 지속된다고 지적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A라는 대기업이 기술을 통해 1000억원의 가치를 창출했다고 해도, 해당 기술을 하청업체에 기술 이전하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A 기업은 하청업체로부터 장치 구매 비용만 지불하고, 연구자는 1000억원의 가치 대신 장치 가격(예: 2억 원)의 1%인 200만원만 받게 된다”며 “기술 산업계에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해 준다면, 연구자들은 더욱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좋은 기술을 개발하며 창업에도 도전하고 싶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현실에서는 애써도 100만원도 못 받는 상황에서 누가 연구를 하겠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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