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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국배 기자] 김모씨는 A은행에서 500만원을 빌렸다. 김 씨는 A은행에 200만원의 예금을 보유하고 있는데 대출 연체를 하자 A은행은 김 씨의 예금 전액을 압류했다. 은행이 예금에서 대출 원리금 일부를 차감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 최저생계비 185만원은 보호 대상이므로 이를 포함해선 안 된다. A은행은 최근 10년간 4만 6000명에게 약 250억원의 압류금지 채권을 부당하게 상계(대출금을 압류해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대출 연체 발생 시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최저생계비까지 은행들이 부당하게 가져간 것으로 드러나면서 금융당국이 칼을 빼들었다. 당국은 실태 조사 후 은행권 정보공유 확대, 소비자 안내 강화 등을 통해 필요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우리·KB국민·NH농협은행 등의 주요 은행의 ‘최저 생계비 부당 상계 사례’를 확인하고 전 은행권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에 착수했다. 주요 시중은행을 시작으로 이달 하순까지 전체 은행권을 대상으로 최저 생계비 부당 상계 문제를 파악할 예정이다.
지난해 은행 정기 검사를 진행한 금감원은 다수 은행에서 대출 연체 시 민법상 압류가 금지된 최저생계비까지 상계 처리한 사례를 확인했다. 은행은 차주가 타 행 대출에서 연체가 발생해 타 행이 우리은행 예금 상계를 요청하면 최저 생계비를 제외하고 지급했지만 해당 은행에서 연체하면 제한 없이 압류조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우리은행을 비롯해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등도 부당 상계 사례를 다수 적발했다”며 “현재 전체적인 규모 등은 추가로 확인 중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기회에 전수조사를 해 만약 문제점이 있거나 개선 사항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개선할 것”이라고 했다.
압류 금지 대상 최저 생계비는 채권 은행 예금뿐 아니라 전체 금융권 합산 금액으로 따진다. 채권은행은 연체가 발생한 채무자가 여러 금융회사에 통장을 가지고 있으면 합산해 185만원을 추려 압류해야 하는데 실무적으로 쉽지 않다 보니 일괄 압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채무자로선 법원에 압류 금지 채권 범위 변경을 신청해 허가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는 차주가 타 행에 예금이 얼마나 있는지 시스템상 조회할 수 없어서 자기 은행 예금을 계속 상계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나마 올해 들어 1월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압류금지 통장(생계비 통장)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민사집행법 일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채무자가 전 은행을 통틀어 1개의 생계비 계좌를 개설하도록 하고 이 계좌에 1개월간 생계유지에 필요한 예금 채권은 압류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압류 금지 생계비를 초과하는 금액을 예치하면 자동으로 초과분을 예비 계좌로 송금한다. 이는 민주당의 22대 총선 공약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만 시행은 내년 1월부터다.
소비자가 계좌 1개를 생계비 통장으로 지정하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이에 금감원은 최저 생계비 상계와 관련해 은행권과 정보 공유를 확대하고 소비자 안내 강화 등 제도를 개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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