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선생 4주기 맞아 대학로서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전시
"최근 상황에 '못된 세상' 메쳐야 한다고 하실 듯"…15일 추도식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그릇을 보라고 사발이 아니잖아, 바가지 아니야. 이게 우리 한국의 어머니들이었어."
고(故) 백기완(1933∼2021)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생전 그림 한 점을 특별히 아꼈다.
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부엌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여성. 바삐 움직이다 잠시 짬을 낸 듯한 모습의 그는 바가지 안에 담긴 국수를 먹고 있다.
백기완 선생이 낸 책 '부심이의 엄마생각'을 읽은 민중미술의 대가 신학철 화백이 그린 그림 '어머니'(2006)였다. 백 선생은 '억만금을 줘도 안 팔' 그림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넉넉지 않은 사정 속에 다른 그림은 내놓더라도 끝까지 팔지 않고 아낀 작품이었다.
백기완 선생의 4주기를 앞두고 신학철 화백의 그림으로 두 사람의 인연을 돌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11살 나이 차에도 서로를 '백 선생', '신 선생'으로 부르며 쌓아온 우정이다.
신학철 화백은 5일 서울 대학로 백기완마당집에서 열린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 전시 간담회에서 "백기완 선생은 서정성을 좋아하는 진짜 예술가"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두 사람을 잇는 '부심이의 엄마생각' 연작 30점과 경향신문에 연재한 '하얀 종이배'에 실린 삽화 40점을 포함해 육필 원고, 사진 등 9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백기완노나메기재단과 함께 전시를 준비한 노순택 작가는 "백기완 선생과 신학철 화백은 둘도 없는 동무였다"며 "예술을 나누고 투쟁을 함께한 모습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기완마당집 2층을 채운 작품 속에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묻어난다.
윗저고리만 입고 아랫도리는 벗은 '부심이', 입을 쩍 벌리고 우는 '부심이'를 그려달라는 주문에 흔쾌히 그린 책 표지부터 장마당, 지게꾼 등 민중의 삶을 생생히 그린 그림도 볼 수 있다.
신 화백은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기소돼 고초를 겪기도 한 자신의 대표작 '모내기'를 거론하며 "당시 백 선생께서 보고 가신 뒤 '그림 좋다'고 했다고 한다"고 옅은 미소로 회상했다.
두 사람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공동 작품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눈길을 끌었다.
아이들을 위한 통일 이야기를 담은 '하얀 종이배' 글이 완성되면, 신 화백은 글에 어울리는 삽화를 먹으로 완성했다. 일주일에 5꼭지씩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고 한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두 사람에 대해 "신학철 선생은 백기완 선생을 '선생님'으로, 백 선생은 신 선생을 '친구'로 생각하며 각별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백기완 선생은) 신학철 화백이 진짜 민중적 삶에서 우러나오는 예술 작품을 정직하게, 또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점을 높이 평가하셨다"고 덧붙였다.
백기완 선생이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본 그림도 신 화백의 작품이다.
채원희 재단 사무처장은 '백두산 호랑이' 작품을 거론하며 "2020년 선생님이 투병하셨을 당시 신 화백께서 '통일꾼' 백기완이 백두산에 올라 통일을 목 놓아 부르는 모습의 작품을 보내주셔서 보여드렸다"고 전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큰 어른'의 빈자리를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잇따랐다.
백기완노나메기재단 후원회장인 명진 스님은 "어른이 없는 시대"라며 "백기완 선생이 지금 계셨으면 하는 안타까움에 더욱 그립다"고 말했다.
명진 스님은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상황과 관련, "선생께서 살아계셨다면 '형틀에 묶어놓고 이실직고할 때까지 매우 쳐라"고 하셨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백 선생의 딸인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는 "(아버지는) 생전 '노나메기 세상(너도 나도 일하고 올바르게 잘 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역사적 긴장, 시적 긴장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버지께서 (지금 상황을 보셨으면) '못된 세상'을 메쳐야 한다, 역사의 반역을 메쳐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것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백기완 선생의 4주기 추도식은 15일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전시는 8월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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