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에서 비롯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2심 재판에서 19개 혐의가 모두 '무죄' 판결이 났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이복현 금감원장 등 당시 윤석열 라인 검사들이 주도한 수사에 대해 6년 3개월 만에 1심과 2심이 모두 '무죄'라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 3심 판결이 남아 있지만 1심, 2심 결과를 볼 때, 대법원의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여 '윤석열 검찰 라인'의 대대적인 '이재용 수사'는 결국 '무리한 기소'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300명 조사·53곳 압수수색.. 법원 '위법증거수집' 지적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김선희·이인수 부장판사)는 3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원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국정농단 수사 과정에서 시작됐다. 이재용 회장이 삼성 경영권을 불법으로 승계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에게 '로비'를 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부회장 시절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통해 경영권을 확보했는데 이를 위해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이 회장에게 유리한 쪽으로 합병이 이뤄지도록 용인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도 함께 불거졌다.
당시 수사 책임자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친윤 라인' 검사들이었다.
현 금융감독원장인 이복현 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조사부 부장검사가 수사를 이끌었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으로서 수사를 지휘했다. 윤 대통령은 이 회장이 기소될 당시 검찰총장이었다.
2020년 9월 기소된 이 회장은 83차례 재판에 출석했고, 2021년 1월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받았다. 이후 8월 가석방될 때까지 565일간 수감 생활을 했다.
1심과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이유는 '위법증거수집'으로 보인다.
이 회장 측에 따르면 검찰은 수사기간 동안 300여명을 860회 조사하고 50곳이 넘는 곳을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장소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그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물산,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의 후신인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 등 삼성의 10개 계열사 본사, 사무실 등 37곳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삼성 측 서버와 PC에서 압수해 분석한 디지털 자료만 2270만건(약 24TB)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강제 수사를 받던 임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도 있었다.
1심은 검찰이 이 과정에서 확보한 증거들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고, 2심도 "압수·수색 과정에서 탐색·선별 절차의 존재 및 실질적인 참여권 보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날 재판부는 업무상 배임과 위증 혐의에 관해서도 합병 필요성, 합병비율 등에 관한 배임이 인정되지 않고 공모나 재산상 손해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라는 1심 판단을 유지했으며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에게도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수심위 '불기소 권고'에도 기소 강행.. "무리한 기소"
이 회장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검찰의 무리한 기소라는 비판이 나온다.
2019년 8월 서울중앙지검에 부임한 이복현 현 금융감독원장은 분식회계보다 부당합병 수사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국정농단 수사에서 마무리된 부당합병 의혹을 다시 수사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이에 2020년 6월 이 회장은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고, 수사심의위는 10 대 3 의견으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다.
검찰이 같은 달 이 회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도 법원이 기각했다.
하지만, 검찰은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라며 이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1심에서 패한 검찰은 2심에서 2000개의 추가 증거와 1500쪽의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유죄 입증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결과는 무죄였다.
검찰은 즉각 상고하겠다고 밝혔으나 대법원이 법리 해석의 적절상만을 판단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검찰이 승소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제계 "환영".. 시민단체 "사법부 강력 규탄"
이번 판결을 놓고 재계와 시민단체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인공지능(AI)·반도체 분야 글로벌 산업 지형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이 크게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무한 경쟁하고 있는 기업인들이 불필요한 사법리스크에 시달리는 대신 기업경쟁력 강화와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적극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상철 한국경영자총협회 홍보실장은 "첨단기술의 글로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과감하고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국가 경제발전에 더욱 매진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정희철 한국무역협회 무역진흥본부장은 "이번 판결을 통해 삼성의 사법 리스크가 한층 더 해소되면서 AI,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 산업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하고, 국가 경제를 위한 과감한 투자와 혁신 전략을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3일 성명을 내고 "법치의 근간이 흔들리고 위협받는 내란 정국에서 재벌 대기업과 총수에 대해 법치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는 점에서 이번 사법부 판단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재벌총수 이재용 회장 한 명을 위해 기존 삼성물산 주주, 정부, 국민연금공단, 외국계 기관투자자 등에게 손해를 끼치고 국내 시장의 건전성, 공정성을 훼손시킨 범죄자에게 죄가 없다며 국민 상식에 반하는 판결로, 스스로 법치를 포기한 사법부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도 이날 낸 성명문에서 "검찰이 '피고인이 훼손한 것은 우리 경제의 정의와 자본시장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적 가치'라면서도 이재용에게 고작 징역 5년과 벌금 5억 원만을 구형한 것도 범죄의 중대함에 비해 부족한 수준이었지만 법원은 이마저도 인정하지 않고 재벌총수에게 또 다시 면죄부를 줬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동안 국가 경제를 고려한다는 명분으로 재벌총수에게 실형을 선고하지 않는 관행이 있었다"며 "법원마저 특정 재벌총수를 비호한다면 대한민국 재벌그룹의 후진적 지배구조는 더 이상 개선될 수 었다"고 지적했다.
與 "마녀사냥식 반기업 선동 사라져야"
국민의힘은 이 회장의 무죄 선고와 관련해 "이번 항소심 판결을 계기로 대한민국에서 이제 ‘마녀사냥식 반기업 정서 선동’은 결단코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4일 논평에서 "물론 기업도 잘못이 있다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겠지만 그동안 정치권 일각과 일부 언론, 그리고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기업 때리기가 과도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며 "앞으로 정부는 물론 정치권과 언론 등도 '보다 더 전향적·적극적 자세'로 대한민국 기업과 기업인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마음껏 경쟁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과 환경조성에 총력을 기울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 수석대변인은 "무엇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전 세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머지않아 우리에게도 더 거센 도전의 폭풍우가 밀어닥칠 것"이라며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직된 노동시장 ▲과도한 기업 규제 ▲높은 법인세 같은 이른바 '코리아 엑소더스 현상'의 핵심적 요인들부터 철저하게 개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 속에서 기업은 대한민국과 국민을 부강케 할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며 "우리 스스로 거위의 발목을 부러뜨려 뛰지 못하게 하는 우를 다시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삼성그룹 역시 그간의 '사법 리스크'를 초래한 내부 원인을 다시 한번 성찰하고 대한민국 대표기업의 위상에 걸맞는 혁신의 길로 나서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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