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세련되고 올바른 표현-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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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세련되고 올바른 표현-④

연합뉴스 2025-02-04 14:11:3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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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본인 제공

◇ '안사람'을 '배우자'로?

'안사람'이 내외(內外)를 구분 지어 여성의 정체성을 집안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다른 말로 대체하자는 의견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대안이 '배우자'가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물론 성 중립적이란 덕목은 지켜야 할 고려사항이지만 말맛, 언어 감수성, 음성화했을 때의 자연스러움도 중요하다.

'제 배우자예요'는 마치 이제 막 결혼한 사람 같다.

"제 배우자 될 사람입니다"가 귀에 익어 그렇다. 이를 무시할 순 없다. 이러한 언어적 관습을 가리켜 '사회적 언어 양식'이라 한다.

'안사람'의 어원이 못마땅하다면 '배우자'는 더 고약하다. 배우자(配偶者)의 배(配)는 알다시피 '나누다'는 뜻이다.

우(偶)는 '짝'이다. 짝을 나누다? 너무 단조로운 구성 아닌가.

게다가 '偶' 자의 형상을 보면 사람과 닮은 어떤 것, 즉 허수아비, 인형이란 의미다. 토우(土偶)할 때 그 우(偶)다. 씁쓸하지 않나.

또 하나, 의존명사 자(者)는 요즘 피하는 추세다. '당선자'를 '당선인'으로 바꾼 게 대표적이다. '탈북인'이 '탈북자'보다 어감이 좋다.

'노숙자'도 '노숙인'이 배려언어에 해당한다. '장애인'도 먼 과거에는 '장애자'였다. 물론 기자, 철학자 등 관습적으로 써온 건 어쩔 수 없는 예외다.

여러모로 '배우자'라는 표현은 무겁고 일상어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배우자'는 딱딱한 행정용어에나 적합하다.

기계적 중립만을 좇아 말의 멋, 맛, 격이 실종되고, 실제 활용도와 현실성도 망각한 결정 사례로 보인다.

대안은 '아내'가 가장 무리 없을 것 같다. 이 말도 물론 어원적으로 '안/내'(內)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원뜻에서 많이 멀어졌다고 볼 수 있고 어감과 발음이 예쁘고 부드럽다. 아내 다음으로는 '처'(妻)'가 어떨까 싶다. 한자어지만 편하고 단순하며 어감도 나쁘지 않다.

◇ 자기소개

"인사드립니다. ○○부 박지연 장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대 경제학과 김영호 교수입니다."

"반갑습니다. ○○당 최혜정 대표입니다."

"안녕하세요, ○○병원 이종수 원장입니다."

어떤가. 문제없나?

박사, 교수, 회장, 사장, 장·차관, 대표, 이사, 감사, 전무, 상무, 변호사, 총장, 원장, 단장, 위원장, 본부장, 실·국·부장 등 높은 지위의 직함일수록 직함을 먼저 말하고 나중에 이름을 말하는 게 언어 예절에 부합한다. 그래야 겸손하고 교양 있어 보인다.

"정치학 박사, 정용호입니다."

"통일병원 원장 강진성입니다."

"성평등 장관 임소혜입니다."

"혁신당 대표 장인경입니다"가 센스 있고 바람직하다.

꼴불견 중 으뜸은 이거다.

"네, ○○/○○(갑/을/병) 지역구, ○○○ 의원입니다."

무슨 특위나 청문회 때, TV 중계가 있다는 점을 의식한 국회의원들 대부분이 이러고 있다. 참을 수 없는 협량(狹量)과 꼴사나운 잔망스러움의 극치다.

이 사람들은 예외 없이 '의원'을 나중에 말함으로써 같잖은 위세를 드러낸다.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중립적인 직업명, 직위 단위들도 물론 있다. 대표적인 게 PD, 기자, 아나운서다. 이런 경우는 앞에 쓰나 뒤에 쓰나 무관하다. 조합원, 대의원, 간사, 총무, 과장, 계장, 대리 등도 얼추 이 범주다.

모름지기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다 싶을 때, 스스로를 칭하려면 이름을 직함보다 뒤에 놓는 것이 보기에도 듣기에도 센스 있고 예의 바르게 보인다.

◇ 중의(重義)의 함정

"도롱뇽을 살리려고 이웃이 밭에 제초제 치는 것을 온몸으로 막기도 했다"

이런 걸 가리켜 '중의(重義)의 함정'이라고 한다. '살리려고' 대신 '죽이려고'를 넣어도 뜻이 통한다. 어쩌면 그게 더 의미 전달이 더 확실하다.

물론 '목적성'이 약한 허점이 있다.

이웃이 평소 도롱뇽에 대한 반감이 너무나도 깊어 그 박멸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제초제를 뿌려 빚어지는 '결과', 즉 도롱뇽의 죽음을 무시, 간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떡할 것인가.

일차적인 해법은 "이웃이 밭에 제초제 치는 것을 도롱뇽을 살리려고 온몸으로 막기도 했다"처럼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문장이 매끄럽지 않다. 목적어 '을/를'이 연거푸 나오는 것도 신경 쓰인다.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흔히 쉼표라 불리는 반점(半點)의 활용이다.

"도롱뇽을 살리려고, 이웃이 밭에 제초제 치는 것을 온몸으로 막기도 했다."

이런 게 평소 하찮게 보이는 쉼표의 위력이다. '중의가 해소됐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애초부터 중의 현상이 일어나지 않게 쓰는 것이 최선이다. 앞뒤 문맥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자르기, 나누기' 대안이 보통 잘 통한다.

"그는 이웃이 밭에 제초제 치는 걸 질색했다. 이유는 도롱뇽이 죽을까 봐서."

◇ 원래와 본디

'원래'는 일본말로 간나이(がんらい)[原來/元來], '본래'는 혼라이(ほんらい)[本來]다.

우리말과 일본 말에 공통으로 있다. '원래'가 '본래'보다 대중성에서 앞서는 느낌이다. 비슷한 뜻으로 '본시'(本始)도 있는데 요즘 눈에 잘 안 띈다.

중장년층이나 가끔 쓰는 형국이다.

아쉬운 건 '본디'의 약해진 존재감이다.

어감도 예쁘고, '本-디'의 구성이라 고유어적 미덕을 갖추고 있는데 안타깝다.

'디'의 실체는 확실치 않으나 '역행 구개음화'의 일종이란 해석이 제일 설득력 있다.

굳이[구지], 미닫이[미다지]처럼 'ㄷ'이 'ㅣ'를 만나면 '지'로 발음되는 현상이 구개음화. 그러나 그 역행도 드물지만 있다.

즉, '본지本地'가 구개음화 역행으로 '본디'가 됐다는 설이다.

'원래'의 과도한 완력을 누르고, 여린 '본디'를 격려해 살려내면 어떨까.

'그이는 원래 성품이 고와 | 그이는 본디 성품이 고와'

어떤가? 입 모양과 목소리가 '본디'를 찾을 때, 더 고상하고 품격 있어 보이지 않나?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 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 겸임교수. ▲ 전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 위원.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현 가천대 특임교수.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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