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고선호 기자]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강도 높은 공세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표 수출 품목 중 하나인 가전분야에 강력한 관세 정책이 예고되면서 관련 시장 및 기업에 미칠 파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주요 가전기업들이 해외사업 부문에서 판관비 등 심각한 비용 부담으로 실적 악화를 면치 못했고 추가적인 환율 리스크와 관세 정책의 부정적 영향까지 더해지면서 업계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수출 실적의 하락세는 물론 산업 전반에 영향이 커질 전망으로, 대대적인 고관세 확대 정책에 앞서 선제적인 대응책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韓 가전업계 직접 겨냥한 美 “자국 이익 우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그간 공언해 온 관세 정책 실행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핵심 대상인 멕시코·캐나다에 대해 관세 25%를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고관세 정책에 더해 영향권 안에 있는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현지 생산량 확대를 골자로 관세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전방위 압박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후보자가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우리나라의 가전제품과 반도체, 자동차 등 주요 수출품에 대한 강력한 관세를 예고했다.
러트닉 지명자는 29일(현지시각) 이뤄진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우리 훌륭한 동맹들은 우리의 선량함을 이용해왔다”며 “일본의 철강을 비롯해 한국의 가전 같은 경우 그들은 우리를 그저 이용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들이 우리와 협력해 그 생산을 미국으로 가져올 때다. 우리 동맹들이 미국 내 제조업 생산성을 늘리도록 그들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 생각한다”라며 직접적인 압박 의사를 내비쳤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7일(현지시간) 지난 임기 때 한국산 세탁기에 50% 관세를 부과한 일을 언급하면서 해외 기업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에 대해 재확인한 바 있다.
이 같은 미국 정부의 대대적인 고관세 정책 추진 가능성에 국내 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당사에 대한 직접적인 관세 정책뿐만 아니라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 인상도 기정사실화되면서 현지에 조성한 공장 이전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은 현재 북미시장 공략 및 가격경쟁력 재고를 위해 멕시코 내 공장을 조성한 상태다. 비교적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해 완성품을 미국 시장으로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어서다. 무관세 정책의 토대는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3국이 서로 맺은 무역협정 USMCA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8년 기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후속으로 체결했다.
현재 멕시코에서 생산시설을 운영 중인 기업으로는 삼성전자와 LG전자,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트랜시스, 포스코, 포스코인터내셔널 등이 있다. 이들 기업은 멕시코 생산 시설과 물량을 어떻게 할지 대책을 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멕시코 티후아나와 케레타로 두 곳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TV와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등을 생산해 북미 시장에 보내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멕시코 케레타로 공장의 건조기 생산 물량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 공장에서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뉴베리 공장의 주력 생산품은 세탁기다.
LG전자도 레이노사와 몬테레이, 라모스 등에서 만드는 냉장고를 미국 테네시주 크라크스빌에 있는 세탁기 및 건조기 공장으로 옮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현재 LG전자는 크라크스빌 공장 뒤편에 현 공장을 4개 더 지을 수 있는 땅을 마련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전 업계 관계자는 “생산지 이전 및 기존 생산지별 캐파 조정 등 보다 적극적인 생산지 전략의 변화까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의)고관세 부과 제품은 한 제품을 여러 생산지에서 대응할 수 있는 ‘스윙 생산’ 체제를 확대하는 식으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최적 생산지 운영을 통해 유연화하지 않으면 비용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고관세에 K가전 ‘휘청’…제2 ‘세이프가드’ 발동되나
급변하는 미국 시장의 상황은 국내 기업들의 입지를 크게 뒤흔들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모든 국가 수입품에 10~20% 관세를 부과하는 보편관세 추진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북미를 비롯한 글로벌 시장 공략 확대에 나선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가전기업들에게 미칠 여파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 2018년 1기 행정부 당시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를 통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생산한 수입 세탁기 120만대 초과 시 최대 30%의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한 바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미국 내 현지 생산을 강화해 위기에 대응했다. 삼성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약 3억8000만 달러를, LG전자는 테네시에 약 2억5000만 달러를 투자해 현지 공장을 세우고 상당량의 세탁기를 현지에서 생산하는 방식을 택했다.
문제는 세탁기와 건조기를 제외한 TV, 냉장고, IT 제품은 멕시코 등 해외에서 제조해 미국으로 수출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트럼프 2기에도 1기의 세이프가드 조치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율의 관세를 무기로 자국 투자 확대를 또다시 압박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만약 해당 기업들의 제품에 대한 10~20%의 보편적 관세 부과가 이뤄질 경우, 가격 인상을 선택할 수 없는 삼성과 LG 입장에선 현지 수요를 감내해야 하는 위험을 떠안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는 브랜드 인지도와 수요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로, 해외 글로벌 경쟁사들과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 국내 업계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지난해 미국 생활가전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매출 기준 점유율 각각 21%, 19%를 기록하며 나란히 업계 1·2위를 차지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내 물가 상승 우려로 관세 부과가 현실화 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 인상 조치 이면에는 이민자 문제 해결 등 각종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양국 간 정치적 이해관계에 앞서 대미 수출 비중 자체가 관세 인상의 빌미로 거론된 만큼 직접적인 리스크를 피해가긴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국내 가전업계는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부과를 강행할 경우에 대비해 미국 내 물류 창고에 재고를 확보하는 등 긴급 대응에 나선 상태다.
우선 멕시코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 내로 최대한 반입해 놓은 이후 국내와 동남아 등 주요 생산거점에서 생산된 제품을 수출하는 방안 등을 통해 당장의 영향을 해소하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미국 현지 생산기지 증설 역시 주요 고려 사항 중 하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관계자는 “미 행정부의 예고에 따라 관세 정책이 추진된다면 현지에서 생산되지 않은 제품에 대해서는 관세 부과로 가격 경쟁력에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며 “결국 미국 내 판매 가격을 올리거나 이윤을 줄이는 선택을 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의 공급망 조정이 시급하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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