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년대 폴란드포스터 8천점 수집한 오황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
오황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이함캠퍼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양평=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오황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디자인 가구 컬렉터(수집가)다. 단추 회사를 운영하며 수십 년 동안 국내외에서 디자인 가구를 수집해 온 그는 10여년 전 가구를 사러 폴란드를 방문했다. 가구를 판매하던 사람은 그에게 혹시 포스터에도 관심이 있냐고 물었고 오 이사장은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8천여점에 이르는 1950∼1960년대 폴란드 포스터 수집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폴란드 포스터를 소개하는 전시 '침묵, 그 고요한 외침'이 열리고 있는 경기 양평의 이함캠퍼스에서 최근 만난 오 이사장은 "포스터를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고 회고했다.
"저걸 내가 가져가야 할 텐데 싶더라고요. 흥정을 마치고는 (포스터가 보관돼 있던) 철제 서랍째 들고나왔죠. 나오는데 '득템'(좋은 물건을 얻었음을 의미하는 신조어)했구나 싶었어요."
발데마르 시비에르의 '선셋대로' 영화 포스터[이함캠퍼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렇게 시작된 폴란드 포스터 수집은 이후 3∼4년간 이어져 오늘날 컬렉션이 완성됐다.
"이제는 새로운 게 별로 없어요. 거의 다 모은 것 같아요. 처음에 제게 폴란드 포스터를 소개한 사람이 '이제 1950년대 포스터를 찾으려면 너(오 이사장)에게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국내에는 생소한 폴란드 포스터는 1950∼1960년대 세계 그래픽 디자인계에서 전환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 포스터다. 이전의 포스터들이 쉽게 설명하듯이 디자인됐다면 이 시기 폴란드 디자이너들은 함축적이고 개념적인 방식으로 포스터를 독창적으로 디자인했다. 이들을 가리켜 '폴란드 포스터 학파'로 부르기도 한다.
폴란드 포스터 전시 전경[이함캠퍼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를 기획한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에 따르면 폴란드 포스터는 70∼80%가 영화 포스터다. 영화 포스터는 흥행을 위해 대개 주연 배우의 얼굴과 주요 장면으로 구성되지만 폴란드 포스터들은 은유와 암시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로마의 휴일' 포스터는 주연 배우인 오드리 헵번이나 그레고리 펙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우는 게 일반적이지만 폴란드 포스터에서는 개선문의 아치 밑에 영화의 주인공인 공주를 배치하고 공주를 찾는 수행원들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배치하는 식이다. 여기에는 당시 폴란드 영화사들이 국영이었던 만큼 영화 흥행 여부가 중요하지 않아 디자이너들이 마음껏 포스터를 디자인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이 있다.
영화 '로마의 휴일' 포스터
남들이 주목하지 않고 금전적 가치도 순수 미술품에 비해 크지 않은 폴란드 포스터를 모으는 데는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많은 데다 '남들과 똑같이 하는 것은 싫다'라는 오 이사장의 성향도 한몫했다.
"순수 미술은 여러 분들이 (수집)하니까 나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잖아요. 해외 경매에서 포스터가 거래되긴 하는데 비싸지 않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아직 가치를 잘 모르는 거잖아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고 점점 소진되고 있어서 앞으로 더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겁니다."
폴란드 포스터 전시 전경[이함캠퍼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함캠퍼스'라는 전시장 이름도 오 이사장의 이런 성향이 드러난다.
"아트센터나 미술관, 아트스페이스 같은 이름은 너무 흔하니까 다르게 하자 싶었어요. 또 전시장은 공부하는 자리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뭐든지 담을 수 있는 빈 그릇이라는 의미를 담은 '이함'(以函)에 공부하는 곳인 캠퍼스를 결합해 이함캠퍼스라고 지었죠."
이함캠퍼스는 이번 전시 이후에도 꾸준히 폴란드 포스터를 한국에 소개할 계획이다.
"사람들의 안목을 높이는 전시를 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중에서도 디자인에 관심을 두는 것은 일상에서 접하기 쉽고 영향을 많이 주기 때문이지요. 앞으로 디자인 가구 전시와 폴란드 포스터 전시를 번갈아 할 계획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로마의 휴일'과 '선셋대로' 등 유명 영화 포스터를 비롯해 폴란드 포스터의 여러 특징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 200여점을 은유와 암시, 유머, 레터링과 이미지의 통합, 회화적 서정성 등의 키워드로 나눠 6개 섹션에서 소개한다. 전시는 6월22일까지. 유료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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