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K배송과 K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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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K배송과 K노동자

한스경제 2025-02-02 07: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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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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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경제=이수민 기자] "새벽 2시 58분에 배송될 예정이라고 택배 기사에게 문자가 왔어요. 시간을 보니...마음이 짠 했네요"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위와 비슷한 내용의 '택배 노동자 문자'를 공유하는 글이 올라왔다. 업무 특성상 택배 기사들은 매 근무일마다 본인 구역에 할당된 택배를 모두 책임지고 배송해야 한다. 연초·명절 특수기를 앞두고 폭주하는 택배 물량과 이에 비례한 업무량을 감당하기 힘든 기사들의 고충이 온라인상으로 급격하게 퍼져나갔다.

해당 게시글에는 '나는 늦게 받아도 상관없다', '당일 배송을 받지 않아도 되니 기사님들이 쉬엄쉬엄 일했으면 좋겠다' 등의 댓글이 무수히 이어졌다. 작고 따뜻한 마음들과 무관하게, 어제 시킨 택배는 어김없이 오늘 우리 집 문 앞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배송 경쟁이 유통업계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당일배송, 새벽배송을 비롯해 최근에는 1시간 내외로도 배송이 가능한 그야말로 '총알 서비스'가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다. 유래 깊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빨리빨리' DNA가 배송 서비스까지 침투하리란 것은 어쩌면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K배송의 시작점은 지난 2014년 첫 선보인 쿠팡의 로켓배송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켓배송은 밤 12시 이전에 주문하면 다음날까지 배송이 가능한 서비스다. 하루 만에 받는 택배는 오늘날 우리에겐 당연한 일상이 됐지만 당시 업계 전반으로는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쿠팡의 배송 혁신은 자연스럽게 전체 유통업계 배송 시스템에 영향을 미쳤다. 유통기업들의 물류센터 고도화와 인프라 확장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배송업체 또한 밤낮, 휴일을 모두 반납하며 배송 경쟁에 동참했다. 물류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은 올해부터 주 7일 배송을 시작했고, 한진택배·롯데글로벌로직스 등 경쟁사들 사이에서도 주말배송 확대 등을 검토하고 있다. 

배송 서비스의 고성장은 소비자들의 편의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수준'까지 높여준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문제는 속도의 불균형이다. 배송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견고해지지만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근무환경 개선 속도는 몇 년째 더디고 엉성하다. 24시간 가동되는 K배송의 동력은 수많은 노동자로부터 비롯됨에도 기업들의 개선 의지는 여전히 편향적이다. 

물류센터, 택배 노동자 과로사와 사망사고는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해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2017년 이후 택배업 사망재해 현황'에 따르면 택배노동자 사망 건수는 코로나19 이후 4배 이상 폭증했다. 질병 사망의 경우 대부분 통상 과로사에 해당하는 뇌혈관질환 또는 심장질환으로 인해 발생됐다. 2017년부터 8년간 39명의 택배업 노동자가 과로사로 사망했고, 그다음으로 사고사(28%)로 사망했다. 현장에서의 예기치 못했을 사고사보다 과로사로 인한 사망이 월등하게 높다는 점 또한 시사할 부분이 적지 않다. 

새벽 2시, 도착 시간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낸 택배 노동자를 향해 근무 태만이라 지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뀌지 않는 근로 환경과 노동 구조를 지적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 대부분 사람들이 안다. 문제점은 명확하다. 아무런 변화의 움직임 없이 또다시 노동자의 비극이 반복된다면 정부와 기업, 소비자 누구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CJ대한통운은 지난 1월 택배기사 전체를 대상으로 휴가 제도를 확대하고 출산휴가 신설, 주 60시간 내 근무 원칙 등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쿠팡 또한 최근 청문회에서 택배 근로 환경 개선을 약속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휴식권 확대와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기업들의 약속이 더 이상 흩어지지 않고 본격화되기를 바란다. 빨리빨리의 DNA가 이 부분에서도 적극 힘을 발휘할 때다. 불균형의 해소, 즉 소비자의 편의성과 노동자의 건강권이 균등할 수 있도록 무엇보다 기업과 정부의 속도감 있는 행동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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