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 한국에서 '불법 여성 문신사'로 일한다는 것

타투: 한국에서 '불법 여성 문신사'로 일한다는 것

BBC News 코리아 2025-01-31 19:12:01 신고

Paul Ivan Harris / BBC
나르는 한국에서 7년여 동안 타투이스트로 활동했다

'나르'는 한국에서 타투(문신) 아티스트로 일한 지 2년 정도 됐을 무렵, 다시 떠올리기 싫은 경험을 했다.

나르는 "작업이 끝나갈 때쯤 고객에게 거울로 타투를 확인해 달라고 했어요"라고 회상했다. "그런데 속옷을 입지 않은 채로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있더라고요."

나르는 그가 실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퍼가 내려갔으니 올려라"라고 정중하게 요청하고 방을 나갔지만, 다시 돌아왔을 때도 그는 여전히 몸을 노출한 상태였다.

나르는 "그는 '나랑 같이 영화 한 편 찍을래? 여기 침대도 있고 아무도 없는데'라는 식으로 말했어요"라고 했다. "저는 그때 20대 중반이었고, 너무 무서웠어요."

"저는 '농담하지 말라'고 했어요. 굉장히 화가 나고 무서웠는데, 여기서 화를 내거나 무서워하면 더 큰일이 날 것 같은 거예요. 큰일이 나더라도 경찰에 신고를 못 하는 입장이니까…"

나르가 경찰에 신고할 수 없었던 이유는 1992년 대법원이 문신 시술을 의료행위로 판단한 이후 비의료인의 타투 작업이 불법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의사 면허가 있어야 합법적으로 문신을 새길 수 있다는 뜻이다.

Paul Ivan Harris / BBC
타투이스트 나르는 수채화 타투 디자인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국내 의료법상 의료인 면허 없이 문신 작업을 하다가 적발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타투이스트가 기소되고 처벌받았는지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지만, 국내 타투이스트 노동조합인 타투유니온은 매년 최소 50명에게 법률 지원을 제공하고 있고 실제로는 매년 수백 명이 이 벌금형을 받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타투이스트들은 불법으로 타투 시술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타투이스트 대부분은 면허를 소지한 의료인이 아니다. 2021년 보건복지부가 국회입법조사처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타투 시술자는 약 35만 명으로, 대부분은 눈썹·입술·헤어라인 등 반영구화장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타투유니온에 따르면 반영구화장을 제외한 서화 타투 시술자 수는 약 2만~3만 명 수준이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타투 시술을 비의료인에게 허용한 곳이 많고, 최근 국내에서도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내려지면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여야 모두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 관련 면허와 규제 등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타투이스트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지난 1월 '타투이스트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실 국회는 우리 국민들의 일반적인 삶을 가장 늦게 닮아가는 곳"이라고 말했다. 강 의원은 국내에서 문신을 받은 사람 중 1.4%만이 의료인을 찾았다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실적으로 타투 시술을 하는 의사가 적기 때문에 대부분이 비의료인으로부터 타투 시술을 받고 있어, 오히려 비의료인 타투 시술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여 시술자와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25년간 성형외과 의사이자 타투이스트로 활동 중인 조명신 원장은 "지난 30년 동안 비의료인에게 타투를 못하게 한 상황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타투 시술은) 비의료인이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왜 할 수 없다고 생각하죠? 다만 의료적인 측면이 있으니, 그건 교육받아야죠."

반면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최근 타투 법제화를 위한 일련의 법안에 대해 강한 반대와 우려를 표명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의협은 문신 행위가 "단순 피부 건강 훼손을 넘어 암 진단 방해 등 인체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이는 근본적으로 의료행위일 수밖에 없으며 대중적인 관심이 높아진다고 하여 위험성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갤럽의 2021년 6월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약 4분의 1이 문신을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영구화장 시술을 제외하면 수치는 5%로 떨어진다.

피부과 전문의로 대구경북피부과의사회 이사를 맡고 있는 이광준 박사는 "현재 상황에서는 문신사법에 반대한다"라며 "(규제 등) 여러가지 제반 여건이 갖춰지고 난 다음에는 의료기사와 같이 (의료) 제도권 안에 편입된 형태로 자격증이 발급되면 좋겠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새로운 법은 고객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나르와 같은 타투이스트도 보호할 수 있다. 나르는 사건을 겪고 몇 달 후 혼자 운영하던 타투 스튜디오를 닫기로 결정했다. 현재 그는 다른 타투이스트들과 함께 공유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있다.

나르는 "그곳에서 훨씬 더 편안함을 느낀다"라고 했다.

Paul Ivan Harris / BBC
타투이스트 바늘은 고객과의 분쟁 후 경찰서에 가야 했다

12년 동안 타투이스트로 활동해 온 '바늘'도 어려움을 겪었다. 타투를 한 지 3년째 되던 해, 고객 중 한 명이 그를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바늘에 따르면 해당 고객은 문신한 지 약 2개월 후 문신이 '번졌다'는 이유로 이를 지우기 위한 비용 500만원을 요구했다.

바늘은 고객의 항의가 합리적일 경우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었지만, 고객이 여러 번 요청에도 불구하고 문신이 번진 모습을 보여주길 거부했다고 했다. 바늘은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그러자 며칠 후, 스튜디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그 고객이 경찰과 함께 서 있었다.

바늘은 경찰서에 가야 했지만 "타투를 하다가 걸리는, 그러니까 현행범이 아니어서 (과태료) 100만원을 내고 돌아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고객은 이후에도 6개월 동안 계속해서 바늘에 돈을 요구하며 협박성 메시지를 보냈고, 바늘은 이때 자신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토로했다.

조 원장은 "우리나라의 (타투이스트들은) 아주 특별한, 불법적인 환경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게 약점이 된다"라고 우려했다.

15년 차 타투이스트인 유주는 성추행이나 신고 등의 문제를 겪고 일을 그만두는 타투이스트들이 꽤 있다면서 자신은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말했다.

"저는 타투를 한 지 너무 오래돼서 제 주변에 제 직업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공공연하게 모르는 사람한테 '제가 타투이스트예요'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까…"

타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타투 법제화를 어렵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최근 한국리서치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60% 이상이 문신과 문신을 한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Paul Ivan Harris / BBC
안리나 씨는 딸이 "엄마의 몸은 무지갯빛"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타투이스트 출신인 안리나 씨는 자신을 국내 타투 인플루언서 1세대 중 한 명이라고 소개한다. 목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300개에 가까운 문신을 새긴 그는 인스타그램에서 26만 명, 유튜브에서 10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확보하고 있다.

안 씨는 "지금까지 정말 많은 악플을 받았다"라며 "심할 때는 자고 일어나면 악플 1500개가 달린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SNS를 통해 딸의 출산 소식을 공유하자 "너 같은 엄마한테서 태어날 바에는 낙태가 낫지 않냐", "모유에서 잉크 맛이 날 것 같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고 했다.

또한 성기 사진이 첨부된 수백 건의 성희롱성 메시지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이러한 온라인 폭력은 안 씨가 2023년에 타투 업계를 떠나기로 결심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이후로 그는 카페 아르바이트, 배달원, 모델 등 다양한 일을 해왔다.

안 씨의 문신은 온라인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도 주목의 대상이다. 그는 "목욕탕에 가서 다 씻고 나오면 어르신들이 (문신이) 지워지는 거냐며 침을 발라보거나 등짝을 때리는 분들도 계셨다"라고 했다.

물론 부정적인 반응만 있었던 건 아니다. 안 씨는 골목에서 담배꽁초를 줍다가 한 어르신을 만났다고 했다.

"'(문신이) 너무 예쁘네. 너무 멋진 사람이 이렇게 쓰레기도 주워주네. 고마워요' 하면서 어깨를 토닥여주시는데, 사실 그 며칠 전에도 악플과 전쟁 중이었거든요. 그 자리에서 오열했던 것 같아요."

한겨레21에서 몸과 젠더 이슈를 다루는 '바디올로지'를 연재 중인 이유진 선임기자는 "문신한 여성은 충동적이고 반사회적이며 성적으로 개방된, 말하자면 결혼제도에는 적합하지 않은 여성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2010년대 들어 젊은층,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자기표현의 한 형태로 문신이 점점 인기를 얻었지만, 이는 여성이 전통적인 역할에 부합해야만 '정상'으로 인식하는 보수적인 시각과 상충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설명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러 어려움에 직면한 일부 타투이스트들은 더 큰 자유와 인정을 찾아 해외로 떠났다.

Paul Ivan Harris / BBC
타투이스트 공그림은 한국에서 일할 때 본인을 일러스트레이터로 소개한다고 말했다

7년 넘게 타투 아티스트로 활동해온 공그림은 한국 외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활동해왔다. 올해는 이전에 일하며 "아티스트로서 존중받고 있다"고 느꼈던 런던으로 이주할 계획이다.

공그림은 "서울의 (타투) 작업 환경은 아티스트로서는 많이 한계를 느낄 수 있다"라며 "자신의 개성과 예술적 비전을 더 잘 표현하고 싶은 타투이스트들이 해외로 많이 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조만간 타투 법제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나르에게는 너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최근 임신을 한 나르는 고민 끝에 한국을 떠나기로 했다. 사람들이 본인의 직업을 평가하는 것을 넘어, 나중에 자신의 아이까지 평가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저는 타투이스트라는, 법에 보호받지 못하는 직업인으로서 (삶이) 안정적이지 않아요. 또나중에 아이한테는 어떻게 설명을 할 거며…"

"한국은 법을 바꿔야 하고, 일부 사람들은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사에서 나르, 바늘, 유주, 공그림은 실명이 아닌 타투이스트 활동명을 사용했다.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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