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지 않아요 | 마리끌레르

해치지 않아요 | 마리끌레르

마리끌레르 2025-01-31 16:45:02 신고

BOTTEGA VENETA

전쟁이 멈췄다. 차별이 사라지고, 혐오도 끝났다. 현실이 아닌 패션 월드의 이야기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니, 미우치아 프라다니 하는 인물들의 전설적인 사례를 빌려오지 않아도 패션이 일종의 메신저로서 자신의 쓸모를 드러내 왔다는 기록은 공공연하게 발견할 수 있다. 당장 지난 10년만 되짚어도 인종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생겨나는 여러 분쟁, 성차별, 참혹한 전쟁에 맞서는 목소리는 옷 위에 프린트되거나 옷 자체로 형상화되며 패션과 사회를 연결하는 데 일조했다. 우리가 패션을 통해 사회 현상을 대면하는 일에 익숙해진 건 유구하고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직전 몇 시즌간 패션계가 그려온 유토피아적 그림은 퍽 이질적이고 이례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경제, 환경, 성 인지 감수성을 비롯해 우리 삶을 둘러싼 여러 지표들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인데 런웨이는 꿈, 인형, 동물 혹은 온갖 사랑스러운 상징으로 채워진 탓이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젠지는 물론이고 기성세대까지 이 흐름에 마음을 빼앗겼다는 사실이다. 요즘 우리는 유년 시절을 상기시키는 옷차림을 하거나 가방에 키링을 주렁주렁 매단 어른들을 심심찮게 마주한다. 만원 지하철에서 슬라임을 만지거나 피크민을 키우고, 돌멩이나 식물을 애지중지 대하는 이를 발견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사회나 소비자를 연구하는 여러 학자들이 저마다 의견을 낸 가운데 김난도 교수는 지난해 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25>를 통해 보다 명료한 단어와 해석으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한다. “작고 귀엽고 순수한 것들이 사랑받는다. 이들의 공통점은 해롭지 않고, 그래서 자극이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며, 굳이 반대하거나 비판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방이 나를 공격해 오는 것만 같은 험한 세상, 작고 귀엽고 연약한 존재는 그 자체로 힘을 갖는다. 무해하기 때문에 가지는 힘, 즉 ‘무해력’이다.”

무해력은 곧장 일상의 담장을 넘어 럭셔리의 지대로 향했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다’는 막연한 이유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관통했기 때문이다. 최근 회자된 ‘루이 비통 × 무라카미 리에디션 컬렉션’의 괄목할 만한 성공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우스 브랜드와 예술 분야의 협업이 산재하면서 유명 예술가의 명성도 예전처럼 매력적인 요소가 되지 못한 지 오래다. 그러나 판다와 해피 플라워의 환한 미소가 이끌어 내는 긍정적 분위기는 진지하고 때로 난해하기까지 한 여러 콜라보레이션과 달리 동심을 자극하고, 나아가 아이템을 소유함으로써 행복한 기분까지 얻게 될 것만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더불어 루이 비통은 위엄 가득한 ‘루이 비통 메종 서울’ 대신 오가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루이 비통 서울 도산’에서 론칭 이벤트를 열며 이 모든 제품을 즐길 거리, 위안받을 거리로 인지하게 만드는 영민한 진심을 보였다.

마티유 블라지의 보테가 베네타 2025 여름 컬렉션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뜨개로 오밀조밀 뜬 꽃송이와 꽃다발, 객석에 놓인 동물 모양의 사코 스타일 체어, 부모님의 옷을 몰래 입어 보던 어린 시절의 기억 등 사랑스러운 요소로 가득한 런웨이는 그야말로 무해한 것을 그리는 노스탤지어의 총체와 같았고, 가방과 옷 전체를 동물 패턴으로 수놓고 동물 키 링을 대거 출시한 로에베 × 수나 후지타 협업 컬렉션 역시 동화 속에 들어온 듯한 미감을 구현해 내며 크게 주목받았다. 이외에 집, 베개, 아기를 등장시킨 비베타의 2025 S/S 컬렉션, 아동복 브랜드 쁘띠바또와 손잡고 유년기의 옷장을 재현한 미우미우 역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한 감상을 이끌어 내며 온라인 숍을 뒤흔들었다. 가장 순수했던 때의 기억을 되살리고, 손에 닿는 물건을 통해 공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이 무해력의 시대에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마케팅 전략으로 작용한 것이다.

문득 8년 전 작고한 스트리트 패션 사진가 빌 커닝햄의 명언이 떠오른다. 럭셔리보다는 각자의 사연과 배경이 담긴 진짜 옷과 소지품을, 화려한 런웨이보다는 거리를 사랑했던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패션은 현실을 살아내기 위한 일종의 갑옷과도 같다. (Fashion is the armor to survive the reality of everyday life.)” 혹자는 이런 흐름을 비판한다. 결국 상업성만 남게 된다는 우려 때문이다. 물론 활짝 웃는 캐릭터를 쳐다보고, 동물 키 링으로 가방을 꾸미고, 아동복 같은 옷을 입는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일상과 가장 가까운 판타지에 잠시 숨어들어 뜨개 갑옷을 걸치는 일이 잠시나마 우리를 치유할 거라는 기대는 분명 비관보다 낫고, 무엇보다 무해하지 않은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