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더 33]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

[스페셜 리더 33]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

CEONEWS 2025-01-31 13:06:4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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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NEWS=최재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정국이 심화되면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차기 여권 대권 주자로 김문수 고용부 장관이 급부상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만 18세 이상의 남녀 1013명을 대상으로 한 ‘범야권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김 장관이 15.6%의 지지를 얻어 1위를 기록했다. 이번 조사는 유선 전화면접과 무선 ARS를 병행해 진행되었으며, 응답률은 4.5%,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로 나타났다.

중앙일보의 의뢰로 (주)엠브레인퍼블릭이 지난달 29일부터 30일 사이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김 장관이 범 보수권 대권주자로 5% 남짓한 지지를 얻었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일주일 만에 두 배 이상 상승한 결과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윤 대통령이 관저에서 영장 집행을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강경 보수가 똘똘 뭉치고 있다”며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윤 대통령을 지켜줄 만한 인물 중 김 장관이 가장 적합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장관은 지난 1월 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 강제 집행과 관련해 “현직 대통령인 만큼 예우를 갖춰야 한다”며 “완전히 죄인 취급을 하고 있는데, 민심은 뒤집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김 장관의 지지율 상승은 여권 내에서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향후 정치적 행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설적인’ 운동권 지도자...민중당 창당 나서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은 1951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4남 3녀 중 여섯째로, 영천국민학교와 경북중학교(현재 경운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전공을 정하지 못해 고민하던 중, 당시 영남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사촌형 김장수의 추천으로 경영학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유명한 운동권 지도자였던 그는, 20년 이상 노동운동에 헌신하며 1980년대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인물로 자리 잡았다. 당시 노동운동가들 대부분이 그를 따르거나 그가 이끌던 조직과 깊은 연관을 맺고 활동했으며, 김문수는 노동운동계의 김근태와 같은 절대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그는 수많은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1학년 때, 훗날 민주당 국회의원이 되는 5년 선배 심재권의 권유로 서울대 학생운동 서클인 ‘후진국 사회연구회’에 들어가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2학년 때는 김근태의 영향을 받아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70년대 초중반까지는 학생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병행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진로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고 회고하며, 결국 노동운동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그는 공장에 위장취업하여 노동조합을 만들며 80년대에 전설적인 노동운동가로 성장하게 된다.

1985년에는 서울노동운동연합의 설립에 기여했으며, 1986년 인천 5.3 운동으로 체포되었을 때, 그 뒤를 이은 인물이 심상정이었다. 심상정의 결혼을 주선해 준 것도 김문수였으며, 그는 고문을 받으면서도 심상정의 위치를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6월 항쟁 이후, 양김의 분열로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자, 김문수는 이재오, 장기표, 이우재 등과 함께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느끼고 1990년에 민중당을 창당했다. 그는 서울 구로(갑) 지구당 위원장을 맡았지만, 민중당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고 해산되었다. 같은 해 14대 대선에서 비 김대중-김영삼 계열의 민주화운동 진영에서 민중후보로 추대된 무소속 백기완도 1%라는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하며 낙선했다.

‘민선 최초’ 경기도지사...직접 창시한 ‘GTX’

그는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에 출마하여, 당시 현역 국회의원이었던 자유민주연합의 박규식 후보와 김대중의 측근인 새정치국민회의의 박지원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이후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은 제16대와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연속으로 당선되었다. 특히 17대 총선 직전, 최병렬 당시 당대표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 가결 책임으로 사퇴하면서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경선에 출마했지만, 박근혜 후보에게 밀려 3위에 그쳤다. 

이후 원내대표 경선에도 출마했으나, 5선 중진인 김덕룡 의원에게 패배하며 낙선하였다. 결국 그는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해 17대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그는 민선 최초로 경기도지사를 연임하며 뛰어난 정치 감각과 능력을 발휘했다. 그가 창시한 GTX 개념은 2018년 더불어민주당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모습을 통해 그의 기획력이 입증되었다.

그의 도정 중 가장 큰 성과로는 경기도 최초의 대중교통 환승할인이 적용된 수도권 통합 요금제 도입이 있다. 2004년 서울시 대중교통 체계 개편 이후 2년 넘게 지지부진하던 이 문제를 2006년 7월 취임 후 곧바로 재협상에 나서, 2007년 7월 1일부터 시행하게 되었다.

또한, 경기남부와 북부를 연결하는 경기순환버스의 운영 활성화도 그의 업적 중 하나로, 2013년 4월 1일 수원시와 의정부시를 최단거리로 연결하는 8401, 8409번 노선을 시행하였다.

2012년 18대 대선 경선에서는 8.7%의 득표율로 2위를 기록했지만, 승자인 박근혜 후보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박근혜 후보는 84%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김문수는 여론조사에서 75:16으로 조금 더 따라붙은 것이 위안거리라고 전했다.

보수 진영의 유력한 대권 주자 ‘김문수’

2016년 9월 7일, 그는 SBS 뉴스브리핑에 출연하여 경기도에서 오랫동안 정치 활동을 해온 그가 대구로 내려가 총선에 도전한 이유와 당 대표 출마 시사 후 불출마 선언에 대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이 방송에서 그는 자신의 정치적 여정을 되돌아보며,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2016년 10월, 외교안보 전문가 초청 안보특강에서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의 회고록 논란을 언급하며 문재인 전 대표의 북한 인권 결의안 기권 문제를 비판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비서실장, 김만복 국정원장을 강하게 비난하며 거친 언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2022년에는 윤석열 정부에서 장관급 대통령자문위원장인 경제사회노동위원장으로 내정되었고, 같은 해 9월 29일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대통령실은 그의 임명 이유로 청년 시절 노동현장 경력이 많고 정치 경력이 길어 사회적 대타협 및 노동개혁 추진의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가 우익으로 전향한 이후의 행보가 재계와 노동계 사이에서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2024년 7월 31일, 그는 윤석열 정부의 두 번째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며 경사노위 위원장직을 내려놓았다. 후임 경사노위 위원장으로는 권기섭 전 고용노동부 차관이 임명되었다. 고용노동부장관으로 취임한 직후, 그는 첫 번째 업무 지시로 임금 체불 전액 청산과 체불 사업주에 대한 엄벌을 지시했다.

2025년 들어 그는 보수 진영의 유력한 대권 주자로 주목받고 있으며, 2025년 1월 8일 기준으로 범보수 차기 대권 주자 중 선호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정치적 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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