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사찰당하며 숨도 못 쉬고 살았는데…"
뉴스1에 따르면 지난 9일 춘천지법 속초지원 민사법정. 1970년대 강원 동해안에서 조업 중 북한에 납치됐다가 귀환한 뒤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납북귀환어부에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자 법정에서 안도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재판부가 배상금액을 밝히자 이 탄식은 이내 허탈함으로 바뀌었다.
많게는 수억 원대의 배상금을 청구한 이들에게 재판부는 겨우 10% 정도가 인정된 2500만 원 안팎의 배상을 '피고 대한민국'에게 명령한 것이다.
재판부는 "납북 피해 어부들은 귀환 후 불법 구금 상태에서 구타와 각종 고문 등 극심한 가혹 행위 및 허위 진술을 강요당하고 이에 따라 형사 처벌을 받게 됐다"며 "이후 이들과 가족들은 불법적으로 감시와 사찰을 당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간첩으로 몰리는 등 명예를 훼손 당했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당시 정치, 경제 여건, 국방력 등을 고려하면 피해 어부들의 납북을 방지하지 못한 대한민국에게 그 책임을 묻기 어려우므로 이 부분은 불법 행위에서 제외한다"고 판시했다.
위자료 산정에 대해선 "대한민국의 이런 행위들은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납북피해 여부와 가족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면서도 "이 사건과 유사한 국가배상 판결에서 인정된 위자료 액수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산정한다"고 했다.
구금 기간 등을 고려해 산정한 앞선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례에서 벗어나지 않은 결과였다.
재판장도 납북귀환어부들을 향해 이례적으로 사과했다.
김현곤 재판장은 "위자료를 많이 인정해 드리고 싶었으나 최근 다른 납북 어부 피해 사건과의 균형, 형평도 고려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양해해 달라"며 "과거 50여 년 전 법원을 비롯해 국가기관이 적법 절차 준수와 기본권 보장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국가기관과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50년 세월 당국의 사찰과 '간첩'이라는 이웃주민들의 눈흘김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이들에게 이날 법원의 판결은 허탈함으로 다가왔다.
이들이 북한에 납치됐을 당시 나이는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천신만고 끝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수사기관의 불법 구금, 고문, 구타였다. 찬양고무와 같은 이념 용어부터 시작해서 각종 법률용어는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오징어잡이 소년들이 알리가 없었다.
50년 세월 당국의 사찰도 견뎌야 했다. 인생의 황혼기가 올 때까지 '간첩 누명'을 쓰고 살아야 했던 이들이 '피고 대한민국'에게 바라는 것은 진심어린 사과와 최소한의 보상이었지만, 이날 판결로 모두 물거품이 됐다.
위자료 산정 부분에서 제대로된 배상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한 귀환어부들은 항소을 준비하고 있다. 또 이들은 전남권 납북귀환어부들과 연대해 특별법 제정을 위한 활동도 이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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