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조용한 상처: '우한 봉쇄' 5년 … 그 이후 이야기

중국의 조용한 상처: '우한 봉쇄' 5년 … 그 이후 이야기

BBC News 코리아 2025-01-28 13:03:32 신고

3줄요약
Feature China/Future Publishing via Getty Images
'중국의 시카고'로 알려진 도시 우한에 지난 2020년 내려진 도시 봉쇄령으로 인해 1100만 명이 자가 격리되었으며, 중국 내 육상 교통이 중단되었다

중국의 사회복지사이자 시민운동가인 궈징(34)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시민들이 이차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으나, 여전히 (사회에서는) 이들이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그래서 많이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2020년 1월 23일, 중국 후베이성에 자리한 대도시 우한에는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봉쇄령이 내려졌다.. 궈를 포함해 이곳 주민 1100만 명은 외출이 제한되며 자가 격리되었다.

궈는 자영업자들이 몰락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당국이 광범위하게 권력을 남용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러나 봉쇄 이후에도 이러한 일들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은 그저 스스로 참아내야 했죠."

76일간의 우한 봉쇄는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봉쇄의 신호탄과도 같았다. 그리고 우한의 청년들에게 당시의 경험은 삶의 전환점이었다.

미국 시카고 대학교의 다리 양 교수는 "전체 역사에서 5년은 짧은 시간이지만, 청년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기간"이라면서 "코로나19의 기원지인 우한의 많은 이들은 여전히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고 설명했다.

예상치 못한 폭풍

Guo Jing
궈징은 봉쇄 기간 기록한 일기를 이후 책으로 출판했다

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은 우한시 보건위원회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한 첫 감염 사례 27건을 발표하던 2019년 새해 전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 간 전염이 가능하다는 증거가 쌓여가고, 의료 시설이 포화 상태에 힘겨워하는 동안에도 지역 당국은 "예방과 통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했고, 심지어 심각성에 대해 경고하는 의사들을 침묵시키면서까지 1만 세대가 모이는 지역 잔치도 개최했다.

이렇듯 공식적으로 당국은 침착한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위험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궈는 상점 진열대에서 독감 약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도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더 이상 상황이 나빠지리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주민들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설 맞이에 나섰다. 체스트넛(24, 가명)은 "봉쇄령이 내려질 수 있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친구들이랑 훠궈를 먹으러 갔다"면서 "우리는 정말 별일이 아니리라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제 어머니는 장을 보러 화난 수산물 시장에 가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택시 기사님이 그 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고, 어머니는 다른 시장으로 향하셨습니다."

보건 당국은 야생동물을 첫 감염 사례는 야생동물을 식용으로 판매한다고 알려진 '화난 수산물 도매시장'에서 발생했다고 추적했다.

AFP
세계 최초의 COVID-19 감염 사례는 우한의 '화난 수산물 도매 시장'으로 거슬러 올라가나,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원은 아직도 미스터리다
BBC
Guo Jing
우한에 도시 봉쇄령이 내려진 2020년 초기, 사재기 열풍이 불며 상점 진열대가 텅 비곤 했다

그러다 설을 고작 2일 앞둔 1월 23일 새벽 2시 30분(현지시간), 중국 당국은 갑작스레 우한 봉쇄령을 내렸다. 그리고 불과 3개월 만에 우한에서는 거의 3900명이 사망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실제 사망자 규모는 이보다 더 크리라 추정한다.

우한에서 일하는 대만인인 트리스탄 리우(33)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화장터에 사람이 넘쳐났고, 구급차도 부족했다"는 리우는 "시신이 며칠간 집에 방치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마침내 누군가가 시신을 수습하러 와도, 가족들은 화장터까지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외롭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리우 또한 곤란해지게 된다. 대만 측에서 시민들에게 대피 항공편을 마련했으나, 중국 본토 출신인 동성 연인을 데리고 갈 수 없었다. 당시 대만의 동성 결혼법이 중국 본토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우는 BBC 중국어 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여자친구를 두고 떠날 수 없었다"고 말했다.

Tristan Liu
우한에서 보드게임방을 운영하는 트리스탄 리우(좌)와 양시

이들의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져만 갔다. 이들이 살던 아파트는 문마다 경보기가 설치되고 봉쇄되었다. 이후에는 배달 음식을 받을 수 있는 작은 구멍만을 남긴 채 아파트 건물 입구가 아예 철판으로 막혀버리기도 했다.

자가 격리의 폐해는 심각했다. 근처에서 벌어진 주민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하자 끝없는 자가 격리에 지쳐 있던 양은 시위 현장을 목격하고자 배달 구멍으로 몸을 통과해 가려고 했다. 그러다 발목을 심하게 다쳤다.

리우는 "병원에 데려갔지만 아무도 여자친구를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면서 "결국 우리가 직접 상처를 드레싱해야만 했다"고 회상했다.

Reuters
우한 주민들은 생필품 구매, 병원 방문 등 매우 제한된 경우에만 외출할 수 있었다
AFP
외곽으로 통하는 주요 도로부터 차단되며 도시 전체가 봉쇄되었다

'인간애 결여'

엄격한 제한 조치로 인해 정치적 현실을 깨닫게 된 이들도 많다. 오직 오락 목적으로만 VPN을 사용했던 청년 체스트넛은 이제 당국의 우려스러운 위법 행위 기록을 마주하게 되었다.

"일부 공무원들은 마치 조직폭력배처럼 행동했다"는 그는 "시민들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고, 노인들을 폭행하고, 식량 공급을 끊어버렸다"고 설명했다.

"친정부 지지자들은 공공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말하지만, 저는 인간애가 결여된 행위라고 느꼈습니다."

Tristan Liu
우한 등 중국 내 여러 도시의 시민들은 정기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또 검사 결과 음성이 나와야 상점, 식당,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다
Tristan Liu
도시 내 코로나19 검사 센터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만큼 오래 대기해야 했다

당국과 개인의 권리 간 이러한 긴장은 코로나19의 최초 내부 고발자인 리원량 박사의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

리 박사는 2019년 말 동료 의사들에게 SARS(사스) 유사한 바이러스에 대해 경고하려 했으나, 현지 경찰은 "소문을 퍼뜨린다"며 그를 침묵시켰다. 그러다 결국 34세의 나이에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망했고, 그의 죽음은 대중의 의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체스트넛은 "너무 화가 났고 안타까웠다"면서 "리 박사는 자신의 사명감을 실천하려 했으나, 무시당했고, 심지어 처벌받았다"고 덧붙였다.

"가장 고압적인 방식의 관료주의였습니다. 그게 절 분노하게 했습니다."

이렇듯 체스트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으나, 기술 업계 종사자인 30대 송닝(가명)은 오히려 익숙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송은 BBC 중국어 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그렇게 전개되리라 예상했다"면서 "(중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우선 여론부터 통제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Reuters
리원량 박사는 병원 내 최전선에서 일하다가 결국 코로나19에 감염되었고, 진단받은 지 며칠 만에 사망했다

리 박사의 마지막 SNS 게시물은 "중국판 통곡의 벽"이 되었고, 슬픔과 불만에 찬 시민들이 적은 댓글은 100만 개가 넘었다.

궈는 "아마 도시 봉쇄는 중국 정부의 통제력 강화 방법 실험이었을 것"이라면서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라고 했다.

궈는 감시 속에서 저항할 방법을 찾았다. 우선 친구들과 화상 통화를 통해 코로나19 봉쇄 기간 가정 폭력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 "경찰의 괴롭힘"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다만 궈는 이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봉쇄 자체가 내게 해를 끼친 게 아니다"는 궈는 "공권력 남용이 해를 끼친 것"이라고 덧붙였다.

AFP
2020년 2월 15일 미국 UCLA 캠퍼스 근처에서 열린 추모 행사. 이렇듯 리원량 박사의 지지자들은 전 세계에서 추모 행사를 열었다
AFP
코로나19 당시 우한의 의료 시스템은 엄청난 압박에 시달렸다

장기적인 영향

우한의 봉쇄는 2020년 4월 8일에 끝이 났으나, 이러한 봉쇄 정책은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중국 당국은 거의 3년간 고강도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했다.

리우는 "그 누구도 이 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지리라 상상하지 못했다"면서 "모두가 충격받았다"고 했다.

그러다 결국 2022년 12월, '백지 시위'로 알려진 전국적인 항의 시위가 벌어지며 결국 당국은 정책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은 검열을 상징하는 빈 종이(백지)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당시 신장 지역에서 화재가 발생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많은 이들은 코로나19 제한 조치로 인해 희생자들이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봤고, 이에 이 같은 시위가 폭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중국 중앙 정부는 "시민이 최우선"이라고 주장했으나, 그 여파는 중국 청년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궈의 동료 운동가들처럼 "경찰의 지속적인 괴롭힘"을 피해 국외 망명을 선택한 이들도 있다. 해외로 떠나지 않은 이들 또한 2023년 광범위한 정리해고 및 기록적인 청년 실업률 등으로 인해 허덕이고 있다.

체스트넛은 "지금은 모든 물건 값이 저렴해졌으나, 돈을 쓰는 사람이 없다"면서 "무언가 근본적인 것이 바뀌었고, 우리는 결코 되돌아갈 수 없다"고 토로했다.

Reuters
중국 당국은 우한 내부의 상황을 세상에 알린 시민기자 장잔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며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양 교수는 "코로나 세대"에 남긴 장기적인 영향을 살펴보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 격리 생활로 인해 이들은 사회성 증진부터 커리어 계획에 이르기까지 타격을 입었고, 이에 많은 이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 택시 운전사와 같은 직업을 선택하고 있다.

양 교수는 "단순히 구직 활동뿐만 아니라 평생에 걸쳐 영향이 이어질 수 있다"면서 "청년들은 직업적인 기술을 쌓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커리어도 정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궁극적으로 결혼부터 가족 계획에 이르기까지 삶의 중대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봉쇄 후 5년이 지난 지금, 양 교수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투명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조직적으로 우한 시민들의 경험에 대한 논의를 차단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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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양 교수는 우한의 "코로나 세대"는 사회성 증진부터 커리어 계획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중국에 바이러스 기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라고 계속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최대한 빨리" 협조했으며, "정치적 조작" 관련 의혹을 부인한다는 입장이다.

중국 내에서는 관련 이야기를 통제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기자 장잔은 우한에서의 전염병 발생을 기록한 혐의로 징역 4년 형을 선고받았다. 봉쇄를 주제로 한 로우 예 감독의 영화는 중국 본토에서 개봉조차 하지 못했으며, SNS에서도 이와 관련한 담론은 검열되었다.

체스트넛은 "(중국) 정부는 점점 더 능숙하게 반대 목소리를 압박하고 있다"면서 "그리고 시민들은 점점 더 사회적 불의에 무감각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송은 봉쇄 조치 덕에 의료 시설이 붕괴하지 않았다는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초기 은폐에 대해서는 씁쓸하다고 했다.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답을 들을 수 있길 바라는 기대 자체를 버렸다.

송은 "이곳에는 진실이란 없다"면서 "이 정권 안에서는 말이다. (당국은) 시민들에게는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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