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겠다는데도② 고래 식탁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사랑하겠다는데도② 고래 식탁

문화매거진 2025-01-27 11:50:45 신고

[문화매거진=배윤음 작가] 올바르지 못한 너네들은 전부 고래밥이 되어버리라고 적었다. 고래 뱃속에서 펑펑 울고 후회하라고, 거르고 걸러도 답없이 밀려오는 물보라에 너네 같은 족속들과 다 같은 고래밥이 되어 고래밥끼리, 고래 뱃속 같은 세상에서 우왕좌왕 헐뜯고 할퀴고 고성을 질러가며 결말에 닿아 처치 곤란한 고래똥이나 되어버리라고. 누구도 반기지 않게. 아무도 단죄할 수 없다면 고래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나마 괴로워하라고 빌었다. /사랑하겠다는데도, 배윤음
 



“고래는 좀 무서워 보이는 종이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말했다. 여러 사물을 유기적으로 그려 각각의 배치를 요리조리 조합해 레이아웃을 짜 표지를 완성하기로 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그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고래다. 위에 인용한 글의 주인공(?)이다. 어떤 것부터 설명해야 할까. 글로, 그리로 다시 가 보자. 

‘옳고 그름’에 휩싸여 온 생을 절절 매며 살았다. 그른 것을 보면 참을 수 없었다. 사랑해서 화를 냈더니 사랑하는 이가 떠나갔다. 화는 나는데 사람이 떠나는 것이 더 싫었다. 이 참을 수 없음이 결국 나를 학대했다. 그른 것을 보고 화가 난 밤이면 끙끙 앓며 침대 위를 기었다. ‘다른 사람들은 똑같은 걸 보고도 아무렇지 않아 하던데.’ ‘나는 왜 그렇지 못하지.’ ‘나는 왜 이 모양이지.’ ‘난 왜 수더분하지 않지.’ 험한 일은 한꺼번에 주렁주렁 찾아온다고. 어느 날이 그랬다. 친구가 비밀을 만들고 가족이 안위와 신념 앞에서 신념을 저버리고 연인은 나를 기만했고 아무 사이도 아닌 이가 끼어들어 내 것을 빼앗았다. 모두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짓이었다. 그날은 공기에서 상한 나물과 쉬어버린 밥으로 비벼댄 비빔밥처럼 고약한 냄새가 났다. 이대로 먹으면 탈이 나는 것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죽어버릴 지도 몰라.’ 살고 싶어서 적었다. 차라리 다 고래밥이 되어버리라며. 고래 뱃속에 세상이 있다면 그곳에선 꼭 불행하라며. 모두 힘없는 농성에 불과했다.

새해엔 자기연민은 버려보기로 했는데. 나는 아직도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내가 가엾다. 짓무른 염증과 설움에 어쩔 줄을 몰라 택한 것이 고작 자학이고 글 쪼가리가 전부였다는 게. -아쉽게도-독자들의 후기와 반응을 살펴보면 특별히 사랑받는 글귀가 아닌 것 같다만, 내겐 손에 꼽히게 애틋한 글 중 하나다.  



그래서 표지 속 고래는 흔히 소비되는 고래 캐릭터처럼 귀엽기보단 거대하니 무서워야 했다. 돌고래는 당연히 안 되고, 범고래는 좀, 영악하니까 별로다. 최종 후보군이 바로 귀신고래와 혹등고래였는데, 검색창에서 혹등고래의 특징을 보았다. ‘몸 전체에 사마귀와 같은 기생충이 많이 붙어있는데, 그것이 탈락되면 흰색의 자국이 남는다. (출처 지식백과)’

거대한 몸 전체에 오돌도돌 동그랗게 남아있는 흰 자국. 사마귀 같은 기생충이 붙어있다 탈락되어 남은 흰 자국. 상흔이 무늬가 된 고래. 무시무시하게 생겨선 사람에게 붙여진 별명이 고작 바다의 천사. 너의 뱃속은 대체 어떤 세상일까. 그런 생각을 했다. 고민이 끝난 날 밤엔 꿈에 고래가 나왔다. 상흔이 하얗게 무늬가 된 고래였다. 범고래 무리에게 괴롭힘당하는 나를 건져 지느러미에 태워주었다. 느리게 헤엄치는 혹등고래가 입을 크게 벌리니 주변에 킬킬거리며 비웃던 새우와 청어 따위가 한꺼번에 빨려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이 되니 부은 눈가가 쓰라렸다. 왠지 모르게 개운했다. 

* 해당 글은 지난해 12월 발간한 문화매거진 잡지 속 배윤음 작가의 ‘사랑하겠다는데도’ 후속편입니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