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트럼프발 리스크가 시장에 선반영 되며 한국 경제는 지난해 말부터 환율 상승에 몸살을 앓고 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져, 국내 기업들은 대외신인도 하락 위기 속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많은 기업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심하는 가운데 3·4세 경영인을 중심으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려는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차세대 경영인들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며, 기업의 혁신과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불확실성이 짙은 경제 환경 속에서 과감한 도전을 기회로 삼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이들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투데이신문> 은 이러한 위기 속에서 시대적 과제를 짊어진 오너 3·4세들의 혁신과 도전 이야기를 조명하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김 부회장은 이어진 캔들라이트 만찬, 스타라이트 무도회 등에서도 모습을 나타냈다. 특히 미 국무장관, 국방장관 후보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외교 안보 주요 책임자들 만남을 가졌으며 정·재계 인사들과도 교류했다. 이날 김 부회장은 한화그룹의 주요 사업인 방산, 우주항공, 에너지 부문을 이끄는 글로벌 네트워크 리더십을 보여주며 사업 확장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장남으로 1983년 태어난 김 부회장은 미국 세인트폴고등학교와 하버드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으며 공군사관후보생 통역장교로 국방 의무를 마쳤다. 한화그룹에는 지난 2010년 차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중국 법인인 한화솔라원 기획실장, 한화큐셀 전략마케팅실장, 한화솔라원 영업담당실장, 한화큐셀 전무를 거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20년 10월에는 한화솔루션 전략부문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올랐고 2년 뒤인 2022년 8월에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본격적인 3세 경영 시대를 열었다. 2024년 8월부터는 한화임팩트의 투자부문 대표이사도 함께 맡고 있다.
김 부회장은 승진과 함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디펜스를 통합하고 한화 방산 부문을 합병했다. 이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고 한화오션을 출범시키면서 육상·우주·해상을 아우르는 종합방산기업의 탄생을 알렸다. ‘사업보국(事業報國)’이라는 한화그룹의 창업정신과 함께 한국판 ‘록히드 마틴’을 꿈꿨던 김승연 회장의 꿈이 성큼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실제 한화는 지난 2022년 폴란드와 8조원대 무기 수출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듬해 말 3조원대 규모의 2차 실행 계약을 맺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호주법인도 호주 국방부와 미래형 궤도 보병전투장갑차 레드백 129대를 공급하는 3조1649억원 규모 계약을 체결하며 잇달아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폴란드와의 안보 협력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 부회장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지난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경남 창원 사업장에서 만나 지난 10년간 이어온 방산 협력에 대한 신뢰를 다시 한 번 다졌다. 두다 대통령은 한화의 통합 방산 역량을 직접 확인하며 양국 간 평화와 안보 협력을 강화하자는 데 공감했다.
한화그룹의 방산사업은 미국과 중동 지역에서의 확장이 기대되고 있다. 먼저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조선업의 주도권을 한국·일본·중국에 내어주면서 군함 유지 및 보수 능력이 크게 쇠퇴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미 의회에서는 해군 수륙양용 전투함 중 절반이 보수·정비 부실로 작전 투입이 불가능하다는 지적까지 제기됐으며 중국 해군력에 대한 대응이 심각한 안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 조선업을 위해 우방국인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직접 언급했으며 이에 따라 현지 MRO(유지·보수·정비) 시장 진출 확대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에는 미국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관 스티븐 쾰러(Steve Koehler) 제독이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이날 김 부회장은 거제사업장에서 정비 중인 ‘월리 쉬라(Wally Schirra)’함을 함께 둘러보고 인도·태평양 지역에 배치된 미국 해상수송사령부 함정의 MRO사업에 대한 추가 협력 가능성을 논의했다.
한화오션은 이미 지난해 7월 미 해군 함정 MRO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함정정비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 조선소(Philly Shipyard) 인수를 최종 완료했다. 한화오션은 필리 조선소의 생산 역량과 시장 경험을 기반으로 북미 조선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할 방침이다. 김 부회장은 스티븐 쾰러 제독과 만난 자리에서 “한화오션이 보유한 기술력과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인수한 필리 조선소 등을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통해 미 해군 전력 증강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중동 지역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의 일환으로 수입에 의존하던 방위산업을 50% 이상 현지화 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한화그룹은 첨단 솔루션을 기반으로 현지화 및 공동개발, MRO 등을 통해 안보와 경제 분야에 기여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김 부회장은 지난 2023년 10월 한국정부 경제 사절단의 일원으로 압둘라 빈 반다르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방위부 장관을 처음 만난 이후 상호 신뢰를 다져왔으며 실질적인 협력관계로 발전시켰다.
상명대학교 경영학과 서지용 교수는 “3세 경영 시대가 본격화 하면서 기업 간 비교가 되는 시점인데 김 부회장은 방산에 주력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라며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조선업 등에 여러 가지 협업을 많이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새로운 사업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 미리 준비했던 사업 포석들이 경영 성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방산산업에서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김 부회장의 다음 청사진은 항공우주산업이다. 이를 위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인재 육성과 기술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글로벌 방산시장 변화와 항공엔진, 우주산업 기술 확보를 목표로 10개 대학과 산학협력 네트워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허브’를 구축했다. 서울대, 건국대, 부산대 등과 협력해 첨단 방산기술, 항공엔진 소재, 우주 발사체, AI 기반 표적 탐지, 자율주행 기술 등 50여 개의 중장기 연구 과제를 수행할 계획이다.
이번 협력은 글로벌 시장 요구를 반영한 기술개발과 인재 육성을 동시에 추진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의 일환이다. 무엇보다 연구자들이 체계적으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설계했다. 또 우수 인재의 발굴-육성-채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강화하고, 2028년까지 항공엔진 R&D 인력을 국내에서 500명 이상 확대할 예정이다. 이 같은 계획에는 인재와 기술 확보가 국가의 미래 산업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김 부회장의 의지가 담겨 있다.
에너지 부문에서는 한화큐셀이 올해 안에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북미 최대의 태양광 제조기지 ‘솔라허브’를 완공 후 본격 가동에 들어가며 미국 내 발전사업과 EPC 사업 또한 수행할 계획이다. 태양광 분야는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미국의 중국 태양광 견제로 인해 반사이익이 기대되고 있다.
한화그룹의 현재와 미래인 방산, 우주항공, 에너지 부문을 이끄는 김 부회장의 역량은 앞으로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오랜 해외 경험에서 쌓은 글로벌 감각과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이라는 이력은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하는 미국에 대응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강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한화그룹이 추진하는 사업들은 불확실성이 높아진 한국 경제를 이끌 새로운 사업의 축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황용식 교수는 “방산이라는 고부가가치 산업에는 지속적인 성장 모멘텀이 보여진다. 앞으로 한국이 계속 끌고 가야 할 산업의축이 되고 있다”라며 “아무리 좋은 사업 아이템이라도 그것을 잘 키워 나가는 것은 경영자의 역량이다. 한화가 보이는 방산 리더십은 3세 경영의 또 하나의 성공 사례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미국이 학벌과 학력을 중요시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이비리그로 기준을 나누는 건 더 심할 수도 있다. 김 부회장의 경력은 글로벌 네트워크 형성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라며 “트럼프 시대의 예측 불가능성을 말하지만 생각보다 아젠다가 명확하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지렛대 삼아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해야 하고 한화의 사업이 여기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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