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의문인 것들

여전히 의문인 것들

문화매거진 2025-01-25 12:57:1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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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려운 '한글' 파일의 아이콘 이미지


[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전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몸이 힘들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싶었다. 공모페이지에 들어가 ‘공모 지원서’를 다운로드하였다. 집에는 두 개의 노트북이 있다. 한글파일이 열리는 노트북은 투박하여 노트북을 열 때마다 십 년은 뒤처지는 기분이 든다. 정리를 못하는 내 배경화면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한글 파일들, 비슷한 이름의 ‘지원’, ‘공모’ 등의 파일명이 보인다. 파일들. (더블클릭) 전시를 해야겠지? 

언제부터 전시까지의 과정을 고민했을까. 전시장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을 알고 있다. 전시장이 아니라 카페와 같은 공간에 내 작업이 걸려 있는 모습, 병원과 학원이 가득한 건물의 엘리베이터 앞에 내 작업이 걸려 있는 모습, 지하철 화장실 가는 길에 걸린 내 작업도 나쁘지 않다. 어쩌면 전시장보다도 더 나을 수도 있다. 내가 왜 이 모든 공간 사이를 고민하게 되었을까. 

서울에는 공간이 많다. 예술인 사이에서만 공유되는 정보일 수도 있다. 가끔 외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나는 이들 중 전시를 본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비범한 누군가를 만나면 그들에게 전시를 어디서 보는지 약간은 떠보는 마음으로 물어본다. 국립현대미술관. 좋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다양한 미술관들이 등장하지만 정작 내가 인스타로 팔로우 업하며 그들의 소식에 집중하는 공간들은 그 사람들에게 미술관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전시는 뭔가 엄청 ‘마이너’한 건가. 서울에는 공간이 많다. 전시를 많이 보는 주변인은 한 번에 전시를 네다섯 개를 묶어서 본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접근성과 이어진다. 

이 많은 공간들을 나는 인스타로 팔로우하며 공간 공모와 공간에서 진행되는 흥미로워 보이는 전시에 집중한다. 흥미로운 제목, 주제, 작가 등을 궁금해하며 추운 겨울 블랙 아이스의 길을 걷고, 봄에는 아름다운 나무 그림자 사이를 지나기도 한다. 작은 강을 다리를 건너 지날 때는음악처럼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고, 더운 여름 다 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걷기도 한다. 공간에서 전시를 하는 작가들 그들을 조금은 부러워하기도 하고, 공간을 덩그러니 지키고 있는 작가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지인들과 즐겁게 마무리하는 사진을 보면 응원의 하트를 누르고 도망간다. 이렇게 많은 곳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들에 나는 속한 것일까. 또는 속하지 못한 것일까.

공간 공모나 지원서를 보면서 나는 도면을 찾는다. 한 번도 건물을 위에서 내려다본 적이 없는데 나는 그 시야를 갖고 내 작품들을 배치해 본다. 나도 내 작품이 어디에 어떻게 서있을지 모른다.

최근 PT를 시작한 지인의 말로는 사람이 똑바로 서 있는 게 가장 어렵다는데… 작품은 얼마나 어려울까. 이 넓은 전시장에서 작품이 어떻게 서 있는지 어떻게 놓여질지 내가 고민하고 적는 그 과정이 정말로 나의 일이 되면서 나는 작가이고 기획자이며 공간 탐색가이고 행정가가 된 것이다. 전부 나의 업무가 되었고 나는 일부를 잃고 기능적으로는 발전했다. 득과 실. 태양과 달. 커피와 케이크. 뭐 그런 것들처럼 양 끝단이거나 아무것도 아닌 무엇을 얻으며 나는 작품과 그것들의 서 있는 곳까지 모두 고려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어디에 서더라도 그리고 설령 바르게 서지 못하더라도 전시를 해야 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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