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김우정 기자]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합의로 중동 정세가 안정화되면서 수에즈운하 통항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해운업계는 여전히 수에즈운하 정상화 가능성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예멘의 친(親)이란 후티 반군은 지난 19일부터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합의에 따라 미국과 영국 등 이스라엘 외 국가의 선박에 대한 공격을 중단했다. 지난 15일 양측은 15개월간 이어진 가자지구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휴전·인질 석방에 합의했다.
현지 외신에 따르면 후티 측 인도주의작전조정센터(HOOC)는 발틱해국제해운협회(BIMCO)에 보낸 서한에서 미국과 영국 소속의 개인 또는 단체 선박을 제재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이 예멘에 대한 공습을 강행할 경우 공격을 재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후티 반군은 가자지구 휴전 합의의 모든 단계가 이행되면 이스라엘을 향한 선박 공격도 중단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휴전은 총 3단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양측은 6주간의 1단계 휴전 기간 이스라엘 남성 군인 석방과 영구 휴전 등 2-3단계 휴전 논의를 진행한다.
지난 2023년 10월 가자전쟁 발발 이후 후티 반군은 하마스 지원을 명목으로 무인기와 탄도미사일 등을 활용해 홍해를 지나는 선박들을 공격했다. 초기에는 이스라엘 국적 선박만을 겨냥했지만 이후 국적에 상관없이 무차별 공격으로 확대됐다. 현재까지 후티 반군은 100건 이상의 공격을 감행해 선박 2척이 침몰하고 최소 4명의 선원이 사망했다.
이에 많은 해운사들은 후티 반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유럽으로 향하는 화물선들을 수에즈운하 대신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지나는 항로로 우회시켰다. 희망봉을 경유하면 수에즈운하 대비 운송거리가 6000~9000km 늘어나고, 운항기간도 7~10일 증가한다. 수에즈운하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주요 항로로, 전세계 해상 컨테이너 물동량의 30%, 전체 상품 무역량의 12%가 통과한다.
휴전 합의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 내 수에즈운하 항로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홍해 지역의 안전이 완전히 확보되지 않아 주요 해운사들은 희망봉 우회 항로를 유지하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주요 해운사인 덴마크의 머스크(Maersk)와 독일의 하팍로이드(Hapag-Lloyd)는 중동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안전이 보장되면 홍해 항로로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머스크 대변인은 “중동 상황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하며 안전이 확보되면 홍해로 복귀할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시기를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하팍로이드 대변인 또한 “이제 막 합의에 도달했다. 최근 상황과 홍해 안보 상황을 면밀히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하팍로이드는 이미 지난해 6월 휴전이 수에즈운하 통항의 즉각적인 재개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며, “예멘에 기반을 둔 후티 반군의 위협이 여전히 상존하고 일정 재조정에만 4~6주가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해운사들이 수에즈운하로 복귀한다 하더라도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해지기까지는 1-2개월 이상이 필요하다.
글로벌 해운컨설팅업체 드류리(Drewry)는 보고서를 통해 “(휴전 합의는) 분명히 긍정적인 발전이지만 선사들이 수에즈운하로 돌아가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라며 “수에즈운하 운영을 정상화하는 데는 몇 주가 아닌 몇 달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위협이 제거됐다는 절대적인 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증권사 제프리스(Jefferies)의 해운분석가들 또한 “후티 반군이 선박 공격 중단 계획을 발표했지만 완전한 중단 선언은 아니며, 우선 장기적인 휴전이 필요하다”며 “현재 단계에서 해운사들이 안전·위험 우려를 충분히 평가하기 전까지 즉각적인 항로 변경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높아졌던 해상운임 안정화 기대...“선사, 시장 통제력 유지 전략 펼칠 것”
수에즈운하가 정상화 되면 높아졌던 해상운임도 안정화될 전망이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대거 발주된 신조선의 인도 또한 운임 하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홍해 사태로 수에즈운하가 막히면서 선박들은 장거리 항로를 이용하게 됐고 이는 글로벌 공급망 내 선복량 감소로 이어져 고운임 기조를 형성했다. 한국해양진흥공사(KOBC)에 따르면, 지난해 연평균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2506pt로, 2023년 평균(1005pt)대비 149% 상승했다.
운임 상승은 해운사들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선사 HMM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56% 증가한 3조2524억원으로 추정된다.
글로벌 운송시장 분석업체 제네타(Xeneta) 수석애널리스트 피터 샌드는 “홍해 통행로가 즉시 완전히 복귀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휴전으로 인해 일부 선주들이 위험을 재평가하고 선박을 다시 복귀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홍해로 복귀할 경우, 희망봉을 우회하며 유지되던 약 180만TEU의 수요를 잃게 된다. 이는 컨테이너, 유조선, 건화물선 시장 전반의 운임에 큰 하락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SDS는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역대 최고의 신조선 인도 기록에 힘입어 글로벌 컨테이너 선대 3000만TEU 시대가 본격 시작될 것”이라며 “2025년에는 공급이 5.4%, 수요가 2.8%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공급 우위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우수한 중앙대 국제물류학과 교수는 “선사들은 수에즈운하가 가능해진다고 하더라도 시장 내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펼칠 것”이라며 “아시아에서 미국이나 유럽으로 향하는 ‘헤드홀(Head-Haul)항로는 수에즈운하를 이용하겠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되돌아오는 백홀(Back-Haul)항로는 수익성이 낮아 수에즈운하를 사용하지 않는 등 전략을 통해 시장을 관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해운사들의 매출은 어느 정도는 유지되겠지만 영업이익률은 크게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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