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둔산동 한 주점에 임대문의 문구가 걸려 있다.
대전의 내로라하는 상권이 흔들리고 있다. 대전 곳곳의 중대형상가 공실률이 상승세를 보이는 등 주요 상권과 번화가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모양새다.
◆둔산동 ‘대표상권’ 옛말
설을 코 앞에 둔 둔산동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둔산동은 대전 신도심 개발 이후 명실상부 대전의 핵심 상권으로 군림해왔다. 정부대전청사와 대전법원을 비롯해 교육청과 시청 등 관공서와 함께 상권이 크게 성장했지만 최근에는 맥을 못 추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부동산원 부동산 통계정보 시스템(R-ONE)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둔산동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4~8%대에 그쳤지만 2019년 9.9%로 치솟은 뒤 지난해 3분기에는 두자릿수를 돌파해 12.2%로 올랐다. 둔산동 상가 8곳 중 1곳은 비어있다는 의미다. 아울러 2020~2021년 코로나 시절보다는 2~3%포인트 낮은 수준이지만 대전을 대표하는 상권이자 번화가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빈 점포가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지난 21일 밤늦게 찾은 둔산동 일대는 네온사인과 화려한 조명, 귀가 터질듯한 음악이 여전히 거리에 메아리쳤지만 그에 걸맞은 발걸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 주점의 직원은 쇼윈도 너머로 기대감을 품은 채 길거리의 사람들을 빤히 바라봤지만 기대가 무색하게도 사람들은 직원의 시야를 벗어나 제 갈 길 가기에 여념이 없었다.
요리주점을 운영하는 A 씨는 “워낙 손님이 없다보니 지난해부터는 가요제나 이벤트 같은 것도 열리고 있지만 매장 운영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올해가 진짜 고비”라며 “설 연휴가 길다 보니 가게를 열지도 말지도 고민”이라고 말했다.
임대 현수막이 걸려있던 점포에는 일반적인 판매점과 식당 대신 인형뽑기방, 무인 반려용품점, 무인점포들이 둔산동 일대를 채우고 있었다. 특히 무인 사진관의 경우 블럭 곳곳마다 있는 것은 물론 5곳이 나란히 붙어 영업을 하기도 했다. 고금리와 물가 인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인건비 한 푼이라도 아끼고자하는 불황형 창업이 줄을 이은 것이다.
문제는 무인점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마냥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긴 어렵다는 점이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종업원을 뽑지 않는 무인 점포가 늘어날수록 고용시장도 축소되는 등 악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
대전 한 부동산 관계자는 “개업한지 한두 달 만에 문을 닫는 술집도 있다. 그런 와중에도 보면 한 집 건너 무인 사진관 등 무인점포가 빼곡히 들어서고 있다”며 “둔산동 일대는 유동인구가 많아 임대료나 권리금도 높게 형성돼 있는데 무인점포만 생기는 건 그만큼 경기가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둔산동 거리에 무인사진관이 즐비해 있다.
봉명동 한 상가에 임대문의 문구가 걸려 있다.
◆뉴페이스도 원도심도 비틀
과거 대전의 중심이였던 원도심의 상황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봉명동과 둔산동이 신도심 상권으로 떠오르면서 밀려나는 와중에 대형 백화점도 유성구와 서구 일대에 몰리면서 소비자 이탈로 인한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고 있는 중이다.
23일 방문한 서대전네거리 인근과 은행동 등 원도심 중심지역의 가게들에도 발길이 뜸했다. 서대전네거리는 세이백화점 폐업의 여파로 인해 상권이 크게 위축돼 있었다. 점심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없는 식당이 즐비했다. 은행동의 경우 으능정이 거리에도 임대 문의 전화번호가 붙은 건물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해 3분기 대전 원도심의 중대형상가 공실률도 20.83%로 대전 평균 공실률(14.59%)보다 5%포인트 가량 높다.
직장인들의 성지로 떠오른 봉명동 일대도 마찬가지다. 본래 봉명동 일대는 농업 중심지로 유성온천과 함께 천천히 개발됐으나 수 년전부터 도시형생활주택과 대형 복합상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후 충남대학교, KAIST는 물론 인근 한밭대학교와 목원대학교의 학생들까지 몰려들면서 상권이 급격히 성장했다. 소문을 들은 인근 직장인들도 봉명동을 찾으면서 인기가 급격히 높아졌다.
그러나 최근 방문한 봉명동도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유동인구는 많았으나 상가를 찾는 이들은 드물었다. 봉명동 한 대형 복합상가에는 임대 딱지가 붙은 점포가 여럿 있었다. 주점과 식당이 밀집해 있어 봉명동에서도 중심으로 불리는 우산거리의 한 신축 건물 1층에도 공실이 적잖았다.
봉명동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B 씨는 “인건비는 아끼려면 어떻게든 아낄 수 있는데 문제는 매일매일 오르는 재료비”라며 “평생 장사만 해왔는데 매출 하락세가 이렇게 오래 지속된 적은 처음이다”라고 하소연했다.
봉명동 한 복합상가에 점포가 비워진 채로 자리하고 있다.
대흥동 한 상가에 임대문의 문구가 걸려 있다.
이재영 기자 now@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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