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변상일 9단과 중국의 커제 9단은 23일 서울 성동구 마장로 한국기원 신관에서 열린 제29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 3번기 최종 3국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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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변상일의 기권승이었다. 커제가 ‘사석(死石·따낸 돌) 관리 위반’으로 인한 심판 경고와 벌점 2집에 불복해 대국을 포기한 결과다. 앞서 커제는 전날 열린 2국에서도 같은 이유로 반칙패를 당한 바 있다. 세계대회 결승에서 반칙패와 기권패가 발생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날 대국에서 변상일은 초반 좌하귀 전투에서 커제의 돌을 잡으며 형세를 유리하게 이끌었다, 벼랑 끝에 몰린 커제는 우변에서 패싸움을 벌이며 역전 희망을 이어갔다.
문제는 155수에서 나왔다. 패싸움 과정에서 백돌 1점을 따낸 커제는 따낸 돌을 사석 통에 넣지 않고 초시계 옆에 놓았다. 이후 사석 2개가 밖에 나와 있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재빨리 돌을 주워 사석 통에 넣었다.
하지만 몇 수 뒤 심판이 다가와 커제에 경고와 벌점 2집을 선언했다. 전날 2국에서도 커제는 똑같이 사석 관리 실패로 2차례 경고를 받아 반칙패를 당했다.
커제는 2국에 이어 같은 일이 벌어지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 심판에게 큰 소리로 항의한 뒤 대국을 중단했다. 한국기원은 2시간여 동안 중국 측을 설득했지만 커제는 더이상 대국을 거부했다. 심판은 커제의 대국 포기로 인한 변상일의 기권승을 선언했다.
‘사석 규정’은 한국기원이 지난해 11월 신설한 규정이다. 새로 추가된 ‘제4장 벌칙’ 조항 18조에 따르면 따낸 돌을 사석 통에 넣지 않으면 경고와 함께 벌점으로 2집을 공제하도록 돼있다. 같은 조항 19조에는 경고 2회가 누적되면 반칙패가 선언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번 논란은 서로 양국 바둑 문화에서 일어난 해프닝으로 볼 수 있다. 한국 바둑에서는 사석을 계가 때 사용한다. 기사들은 대국 도중 상대 사석 수를 확인하고 형세를 판단한다. 반면 중국 바둑에서는 계가 때 반상위 살아있는 돌만 센다. 그래서 중국 기사들은 필요없는 사석을 굳이 사석통에 넣지 않는다.
문제는 사석 관리가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세계 대회에서, 그것도 가장 중요한 결승전에서 벌점과 반칙패를 선언한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회 기간에 갑자기 규정을 바꾼 것도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LG배는 지난해 5월 하순에 개막해 24강과 16강전을 치렀다. 8강과 4강전은 지난해 9월 하순에서 10월 초순 사이에 열렸다.
이 때까지만 해도 사석 규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후 11월 초 한국기원이 사석 규정을 새로 만들었다. 이번 LG배의 경우 결승에서 처음 이 규정이 적용됐다. 규정의 일관성 측면에서 한국기원이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심지어 일관성 문제도 있다. 지난해 사석 관리 규정을 만든 후 처음 열린 세계대회인 삼성화재배에선 선수들이 사석 규정을 여러 차례 위반이 있었지만 심판의 경고나 벌점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커제는 사석 규정뿐만 아니라 심판이 변상일이 착수 상황에서 대국을 중단시켜 시간을 벌어줄 의도가 아니었냐는 항의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변상일은 커제에게 1국을 내줬지만 2, 3국을 잇달아 반칙승으로 이기고 LG배에서 첫 우승컵을 안았다. 2023년 춘란배 우승에 이어 통산 두 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했다. 우승 상금 3억원도 품에 안았다.
하지만 평생에 남을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하고도 변상일은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다. 찜찜함은 지울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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