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갔다가 다시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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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갔다가 다시 올게

문화매거진 2025-01-23 17:32:0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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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 길에 촬영한 모습 / 사진: 구씨 제공
▲ 산책 길에 촬영한 모습 / 사진: 구씨 제공


[문화매거진=구씨 작가] 겨울에도 산책은 계속된다. 목도리를 두어 번 둘러 얼굴을 칭칭 감고, 패딩의 지퍼를 올리면 기분 좋은 오돌토돌한 직선의 소리가 들린다. 작업실에 하나뿐인 히터를 끄고 긴 복도를 걸어 오래되어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튼튼한 유리문이 건물의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다. 차가운 금속 손잡이를 힘주어 밀며 밖으로 나선다. 겨울의 바람은 작게 뚫린 어떤 곳으로든 들어올 수 있다. 나오자마자 외투의 이음새와 겹겹이 입은 옷들 사이사이의 구멍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손끝이 시리다. 두 겹 입은 바지는 든든하고 무겁다. 땅은 더 딱딱하다. 걷다 보면 목도리에 맺히는 차가운 물방울. 훌쩍거리는 코. 고개를 들면 보이는 까만 하늘 그리고 하늘과 대비되는 하얀 입김을 조금은 멍하게 바라보다 보면 이 감각과 풍경이 겨울에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그것은 추위보다 강렬하다. 

추운 날에도 40여 분간 산책을 하고 집에 가는 루틴은 계속되고 있었다. 작업실 바로 앞은 술집이 많아 저녁 시간이 되면 네온사인과 술집 간판의 불빛들이 세상을 세트장처럼 만든다. 밝다. 배달 오토바이, 골목 어디선가 나타나기 일쑤인 위협적인 자동차, 수면 잠옷에 패딩을 입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 산책 나온 강아지. 온갖 것들이 이곳이 자신의 동네임을 주장한다. 나는 외부인 같다. 2년째 보는 풍경인데도 매일 익숙해질리 없는 듯 풍경에 기가 죽는다. 역시나 새롭다. 젊은이들을 겨냥한 술집은 왜 그렇게 노란 불빛을 사용하는 것인지, 어르신들은 왜 다 같이 앉아서 매일밤 24시 식당에서 감자탕을 먹고 있는 것인지, 이 어딘가 비슷한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금요일이 아닌 평일에도 왜 이렇게 술을 마시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와 동료는 버스정류장으로 함께 걸어가며 내일 할 일을 도란도란 이야기해 본다. 내일은 작업실에 몇 시쯤 도착할 것인지, 내일 같이 해야 하는 일이 있는지. 그런 것들.

서로의 입김을 보고 웃는다. 새로 산 신발을 자랑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준 옷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열린 가방을 닫아주고 버스의 시간표를 본다. 배차간격 76분. 이럴 거면 왜 알려주는 거지? 시간이 오래 걸리면 어쩔 수 없지. 조금 더 걷자. 다음 정류장으로 향한다. 새로 생긴 칼국수 식당 앞에는 축하 화환이 가득하다. 늦은 저녁을 칼국수로 먹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길에서 첫 번째로 마주치는 신호등은 초록불 신호를 놓치면 80초를 기다려야 한다. 사실은 81초. 그 1초가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80초 정도를 기다린다. 앞에 놓인 돌을 툭툭 차거나 새로 걸린 현수막을 이야기한다. 

걷다 보면 나타나는 마트가 있다. 두 개의 큰 마트는 매번 경쟁하듯 늦게까지 문을 열고 있다. 두 번째로 마주치는 마트에서는 매일 같이 멋진 클래식이 나온다. 늦은 밤 생활용품을 구매해서 빠르게 나가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그 음악을 두 해째 듣다 보니 이제는 ‘이 음악을 트는 것이 누군가의 삶의 행복이려나’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자신의 기쁨을 위해 튼 클래식을 우리가 매일 훔쳐 듣는 스토리를 펼치며 마트 앞을 지난다. 11시에 가까운 늦은 시간에도 클래식 음악은 명랑하거나 흐느끼며 어두운 거리를 채워 나간다. 

시끄러운 소리가 가득한 도시에서 그것도 늦은 밤에 클래식을 듣는 경험은 꽤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한다. 여기까지 걸어왔다면 정류장에 거의 다 온 것이다. 

매일 밤 걸어가며 하늘을 본다. 우리는 달을 보고 별을 보고 이야기한다. 매일 같이 변하는 달의 모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새로운 작업실 2년 계약을 마쳤다. 우리의 또 다른 2년이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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