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고선호 기자] 인공지능(AI) 반도체 글로벌 수요가 올해 한 단계 더 폭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 가운데 AI 칩의 핵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분야의 성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주요 빅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적용 범위가 대폭 확대되면서 관련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물론, 지난해 일각에서 제기된 공급 부족 전망이 수요 상승의 불씨를 더욱 키우면서 내년 8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성장을 이룰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23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이 전년 대비 15% 성장할 전망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HBM3, HBM3E, 그리고 내년 출시 예정인 HBM4의 수요 증가로 24%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점쳐진다.
글로벌 투자사 JP모건 역시 AI칩 시장 수요 확대로 HBM 부문의 성장을 예상했다. 생성형 AI 도입으로 인해 신경망처리장치(NPU),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메모리 집약형 칩에 대한 수요가 확대됨에 따라 시장 규모가 올해 380억 달러(한화 약 55조원)에서 내년 580억 달러(83조원)까지 급성장할 것이란 관측을 내놨다.
주요 빅테크들의 수요 예측 전망에 대해서는 오는 2027년 전체 HBM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구매 비중은 71%,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의 비중은 29%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엔비디아 외 HBM 시장에서 구글과 아마존이 수요의 각각 51%, 33%를 차지할 것이라는 의견이다.HBM 부문의 성장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양사의 HBM 비중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HBM 사업에서 HBM3E의 비중이 3분기 10% 초중반까지 증가했으며, 4분기엔 50% 정도를 기록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SK하이닉스도 3분기 30%대였던 HBM 비중이 4분기에 40%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글로벌 제조사들의 HBM 주문도 잇따르면서 추가적인 성장 기대치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결국 AI 반도체 공급망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엔비디아와의 파트너십 구축과 차세대 HBM 개발 성패 여부에 희비가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삼성전자 HBM3E 8단과 12단 제품의 경우 엔비디아의 퀄(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이다.
엔비디아는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의 출시 시기를 2026년에서 내년 3분기로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제품에는 6세대 HBM(HBM4) 8개가 탑재된다. SK하이닉스는 내년 초 업계 최초로 HBM3E 16단 제품의 샘플 공급, 하반기에는 HBM4 12단 제품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HBM 시장에서 고배를 마신 삼성은 SK하이닉스보다 한 세대 앞선 10나노급 6세대(1c) D램을 기반으로 HBM4를 양산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대한 납품을 목표로 HBM4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루빈에는 HBM4 12개가 탑재돼 시장 주류 제품인 엔비디아의 H100에 탑재되는 HBM3 6개와 비교해 칩이 2배인 탓에 수익성도 높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차세대 HBM 제품을 언제 공급하느냐에 따라 내년 실적이 뒤바뀔 것으로 본다. 전체 매출 중 HBM 비중이 높아져야 내년에 범용 칩 부문의 부진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내년 상반기 공급을 목표로 현존 HBM 최대 용량인 48기가바이트(GB)가 구현된 16단 HBM3E 개발에도 착수했다. 6세대 HBM4 12단 제품도 내년 하반기 출시 목표로 준비 중이다.
HBM4는 차세대 제품인 만큼, 코어 다이(D램)로 10nm 6세대(1c) D램을 탑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HBM3E 양산에 1b D램을, HBM3에는 1b 이하 D램을 사용했다. 이는 제품의 안정성 및 수율에 무게를 둔 선택이라는 것이 SK하이닉스 측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HBM 시장의 성장세는 우리 반도체 업계엔 청신호로 작용할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아직 퀄 테스트 등의 과제를 안고 있긴 하지만, SK하이닉스와 함께 글로벌 맹주로서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공급망 재편에 따른 시장 변화도 주목도가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오픈AI, 소프트뱅크, 오라클이 공동으로 5000억 달러 규모의 메가톤급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추진 계획을 발표하며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이번 프로젝트는 텍사스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것이 핵심으로, 오라클은 데이터센터 운영을 맡고 소프트뱅크는 재무, 오픈AI는 운영을 담당할 계획이다.
이 같은 역사상 최대 규모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추진으로 HBM 수요도 다시 한 번 널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역시 우리 업계엔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이 분야의 선도기업인 엔비디아의 최신 AI 반도체 ‘블랙웰’에 탑재되는 5세대 HBM(HBM3E)을 독점 공급하고 있어, 이번 프로젝트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13일 미 상무부는 미국산 AI 칩과 최첨단 AI 모델에 대한 수출 통제를 전 세계로 확대하고 수출과 재수출, 국가 내 이전 등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새로운 수출 규제 방안을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당장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에 미칠 파장은 크지 않을 것이란 의견을 내놨지만, 중국이라는 초거대 시장과의 거래가 일부분 제한될 것이 분명해짐에 따라 장기적인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돼 관련 기업들은 일단 상황을 예의주시한다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HBM 공급망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이 일부 국가들에 대해 수출 규제를 강화하게 되면 전체적으로 시장 파이가 줄어들 수밖에 없어 영향이 없지 않다”며 “다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라 규제 방향에 재정립될 가능성이 있어 향후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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