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후지산·비에이쵸, 3대 명소도 한계 왔다
더는 일본이 외국인을 반기지 않는다
[포인트경제] 최근 일본을 찾는 해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한때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 일본 특유의 손님 환대 관습)’로 상징되던 일본 특유의 환대 분위기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한 데다 엔저(円安)까지 겹쳐, 도쿄·오사카·교토뿐 아니라 지방 소도시까지 외국인 방문이 쇄도하는 상황이다. 경제적 파급효과는 컸지만, 갑작스러운 관광객 증가가 지역 주민의 일상과 문화유산 보호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이라는 새로운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오버투어리즘이란 특정 관광지에 인파가 과도하게 몰려 현지 주민의 생활환경을 해치고, 여행자들도 만족스러운 체험을 하기 어려워지는 상태를 뜻한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가 그동안 ‘관광 입국’을 목표로 적극적으로 외국인을 유치한 결과, 2019년에만 3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갔으나, 이 숫자에 비해 교통·숙박·치안·환경 인프라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 결과 코로나19 이후 다시 폭발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지역들이 곳곳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맑은 날에는 후지산이 지붕처럼 보인다. (후지산 로손) 히라오 타카시 좔영/산케이 신문 보도분 갈무리(포인트경제)
가림막을 설치하는 작업자/요미우리 신문 보도분 갈무리(포인트경제)
대표적인 예가 바로 후지산 일대다. 등산 시즌인 7~9월에는 하루 3, 4천 명씩 몰려 등산로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정상 부근까지 길게 줄을 서야 할 정도로 혼잡해졌다. 쓰레기 방치나 무분별한 화장실 이용, 무단횡단과 같은 문제도 반복되면서 지자체는 급기야 하루 입산 인원 제한과 통행료 부과를 검토·시행 중이다. 또 후지산 풍경이 마치 편의점 지붕처럼 보이는 한 관광 스폿에는 찍기 좋은 사진 각도를 확보하려고 무단 침입과 불법주차가 빈번해, 지자체가 거대한 검은 가림막까지 세웠다. 하지만 일부 방문객이 가림막에 구멍까지 뚫으면서 현지 주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교토도 마찬가지다. 명승지인 금각사·청수사·은각사 일대는 발 디딜 틈이 없고, 시내버스는 관광객으로 미어터져 정작 주민들은 이동에 큰 불편을 겪는다. 특히 게이샤(舞妓·芸妓)를 사진에 담으려고 몰려다니는 ‘파파라치형 관광객’ 때문에 무단침입과 사생활 침해 사례가 늘어나 일부 지역에서는 벌금 부과까지 고려할 정도다. 전형적인 ‘오버투어리즘’ 양상에 따라 지역민들의 생활 기반이 외부 관광객에게 침식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관광객이 몰려 절경인 자작나무 가로수 벌채/테레아사 16일 보도분 갈무리(포인트경제)
자작나무 가로수 모두 벌채/테레아사 16일 보도분 갈무리(포인트경제)
여기에 더해, 홋카이도(北海道)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한 비에이쵸(美瑛町)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인구 약 9600명의 작은 마을에 연간 239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명소인 ‘시라카바(자작나무) 가로수길’이 결국 지난 14일 새벽 전부 잘려나간 것이다. 배경에는 주변 주차장 부족으로 인한 불법 주차, 농가 통행 방해, 그리고 농작물에 드리우는 일조량 문제까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9년 전에도 ‘철학의 나무(哲学の木)’라 불리던 포플러나무가 무단 침입·훼손 탓에 베어진 바 있어, “관광객의 매너가 개선되지 않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경관도 지켜낼 수 없다”는 자조가 마을 주민 사이에 퍼지고 있다.
비에이쵸 사례는 지역 주민과 농민, 행정이 협의 끝에 내린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도한 관광객 유입으로 카메라 셔터가 끊이지 않았지만, 차량 혼잡과 무단침입이 계속되면서 더 이상 원활한 농업 활동이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일본 특유의 ‘아름다운 경관’이 언제든 지역 주민의 생계와 마찰을 빚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태국의 전례을 밟고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태국이 세계적인 관광 국가로 급부상했지만, 한편으로 지역 상권이 기념품점과 숙박업 일색으로 변하며 임대료 급등, 원주민 이탈, 관광 공해 등이 심각해진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교토와 후지산, 그리고 비에이쵸 처럼 일본 내 유명·비유명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인파가 쇄도하면서, 지역사회의 테마파크화와 문화유산 파괴가 현실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 더해, “더는 일본이 외국인을 반기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미 오사카·도쿄 등 주요 지자체에서는 외국인·내국인 구분 없이 숙박세(1박당 200~300엔)를 걷고 있으나, 오사카 지사는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추가 부담금을 매기겠다”고 선언했다. 후지산 등산로도 기존 1,000엔의 ‘보전 협력금’에 2,000엔 이상의 통행료를 추가한다. 이를 두고 “차별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지만, 지자체들은 쓰레기 처리비·환경복구비를 충당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이런 재정적·행정적 조치가 과연 극단적인 과잉 방문을 통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해외 관광객에게 1~2천 엔 정도의 부담이 체류 의사를 뒤바꿀 정도로 큰 금액은 아닐 뿐더러, 분산 여행을 유도하는 정책과 결합되지 않으면 결국 특정 지역으로의 쏠림 현상은 계속될 우려가 있다. 또한 일본이라는 관광 목적지의 이미지가 ‘돈을 더 내게 하는 곳’으로 굳어질 경우 장기적으로는 관광 수요 자체를 축소시킬 위험도 존재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관광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지역사회와 자연환경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관리할 것인가다. 교토·후지산·비에이쵸의 사례에서 보듯, 관광객이 많아질수록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가능성은 크지만, 동시에 주민들이 생활터전을 빼앗기고 농지나 자연 풍광이 훼손될 위험성도 커진다. 관광지가 곧 테마파크처럼 변하면, 그 도시·마을의 진정한 매력과 특색을 잃을 뿐 아니라 외부 충격(팬데믹, 환율 변동 등)에 치명적으로 취약해질 수 있다.
일본은 한때 ‘오모테나시’를 내세워 세계에서 손꼽히는 관광 대국으로 도약했지만, 이제는 과도한 성공이 부른 부작용을 해결해야 할 시점에 놓였다. “싫으면 오지 말라”는 식의 배타적 움직임이 커지면 오히려 외국인 관광객 감소와 지역 경기 위축이라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숙박세·통행세를 비롯해 벌금을 부과하거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방식만으로 문제를 풀 수 없고, 지역 주민과 농민, 사업자, 그리고 관광객이 상생할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다.
사실 관광산업은 일본의 국가 경제에 큰 이점을 주지만,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역의 질적 가치가 훼손된다. 특히 비에이쵸의 자작나무길처럼 시그니처가 된 풍경이 사라지는 것은 지역 고유성을 해치는 일일 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장기적으로 손해다. 균형 잡힌 정책적 지원과 관광객의 자발적인 매너 준수가 뒷받침되어야만, 아름다운 경관과 지역문화가 온전히 보전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일본 각지의 오버투어리즘 문제는 단지 “외국인 탓”으로 돌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너무 많은 방문객을 유치하고, 숫자만 늘리는 식의 목표를 추진해 온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이를 인프라 대비 없이 무분별하게 수용한 지역사회에도 책임이 있다. 그 과정에서 오래된 나무가 베어지고 농업 생산이 위협받는다면, 궁극적으로는 지역경제의 지속 가능성도 사라진다.
“오모테나시가 사라진 일본”이라는 말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닌 오늘날, “이제라도 일본이 관광객을 엄격히 관리해질 때가 됐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본질은 ‘제한’ 자체보다, 주민·행정·사업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어 이상적인 수용 가능 인원을 설정하고, 미리 문제를 예방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다. 돈을 더 걷고 관광객을 통제하기만 한다면, 일본 관광이 가진 장점까지 퇴색될 수 있다. 미래 지향적인 협력과 조정이 없다면, 결국 비에이쵸의 자작나무길처럼 소중한 경관만 하나둘 사라진 채, 지역사회도 관광객도 ‘진짜 환대’를 잃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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