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제척기간” 내세운 일본 사법부, 유족 청구 기각
유족들의 호소: “우리의 이름을 빼달라”
야스쿠니신사, 역사적 갈등의 중심
정교분리와 인권 문제로 번진 법적 쟁점
한국국적 전몰자의 야스쿠니합사, 대법원 상고 기각하고 원고 패소 확정/NHK 지난 17일 보도분 캡쳐(포인트경제)
[포인트경제] 일본 최고재판소가 지난 17일, 한국인 합사자 유족들이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기각했다.
이미 1심과 2심에서 패소한 유족들은 지난 2013년부터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무단으로 합사된 한국인 군인·군속들의 이름을 빼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이어왔지만, 재판부는 “강제 합사가 1959년까지 이뤄졌고 20년의 제척기간이 지난 뒤에야 소송이 제기되었다”는 이유로 결론을 뒤집지 않았다. 이로써, 일본 사법부는 한국인 유족들의 법적 주장을 다시 한 번 받아들이지 않은 셈이 됐다. 제척기간은 법률상 권리의 존속기간으로 기간 이후는 권리가 소멸된다.
미우라 마모루 재판관 반대의견"국가로 인한 합사는 정교분리제도의 중심에 위치하는 문제"/NHK 지난 17일 보도분 캡쳐(포인트경제)
최고재판소가 제척기간을 내세워 청구를 기각했으나, 재판관 전원이 같은 의견을 낸 것은 아니다. 미우라 마모루(三浦 守) 재판관은 반대 의견에서 “국가가 군인·군속 명부를 야스쿠니신사 측에 제공한 행위가 정교분리 원칙 위배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족들이 합사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고, 그로 인해 평온한 정신생활이 침해되었을 가능성이 크므로, 이 문제는 고등법원에서 다시 심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도쿄지방법원의 부당판결에 시위하는 원고・변호사(합사 반대)/센고네트 갈무리(포인트경제)
유족들은 소송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자신들에게 사전 동의나 협의도 없이 합사를 강행했다”고 주장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의 식민지배 아래 있던 조선인 군인·군속들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잃거나, 제대로 된 정보 없이 귀환하지 못했다. 전후에도 유족들이 전사 사실을 통보받는 일은 거의 없었고,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1990년대 이후의 자료 공개로 알게 되었다는 것이 원고 측 설명이다.
그러나 재판부 다수 의견은 “유족이 언제 이 사실을 알았느냐”와 관계없이 민법이 정한 손해배상 제척기간인 20년이 합사 시점으로부터 이미 훌쩍 지났다고 판단했다. 제척기간이 경과한 뒤에는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가 원칙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대법원 판결의 골자다.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낸 미우라 재판관은 “손해(정신적 피해)가 발생하는 시점이 합사 인지 이후일 수 있음에도, 일률적으로 합사 완료 연도를 기준 삼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이번 판결은 2011년에도 비슷한 취지로 야스쿠니 합사 취소 청구를 기각했던 일본 최고재판소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 정부와 사법부는 한결같이 “야스쿠니신사는 전몰자를 기리는 곳이며, 유족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봐 왔다. 강제 합사를 둘러싼 유족들의 문제 제기가 있어도, 공식적 판단에서는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된다고 인정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법원 내부에서도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기류가 강함을 다시 보여준 셈이다.
한국인 유족들은 이번 결과에 대해 “일본 정부가 그동안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기에 사실상 합사 여부를 알 길이 없었다”며 “처음부터 소송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만든 것이 이번 판결의 본질”이라며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유족 대표 박남순 씨는 “아버지가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는데, 야스쿠니신사 합사 사실마저 나중에나 알게 되었다. 우린 돈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우리 선조의 이름을 빼달라는 것뿐인데, 이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정부가 메이지 유신 이후 벌어진 일련의 내전과, 제국주의 팽창 과정에서 숨진 이들을 제신(祭神)으로 모시는 국가적 의미가 큰 시설이다.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극동국제군사재판(A급 전범 재판)에서 사형당한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되어 있다는 점이 한국과 중국 등을 비롯한 피해국들에게 강한 반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가해와 피해가 함께 합사되어 있다”는 상징성 때문에, 특히 일제강점기를 겪은 한국인들에겐 더욱 민감한 사안이 되어왔다.
일본 정부와 보수 정치권은 “야스쿠니신사는 순수하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을 기리는 곳이며, 정교분리 위반이 아니”라는 주장을 줄곧 펼쳐왔다. 총리 또는 각료들이 참배를 해도 “개인의 종교적 신념” 또는 “순국자에 대한 예우”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같은 태도는 야스쿠니 참배 논란에서 국가 권력과 종교의 분리를 명시한 헌법 조항을 위반한다는 내외부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아 왔다.
반면 한국과 중국 등에서는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과거사의 책임을 회피하는 대표적 상징물이 바로 야스쿠니신사”라는 인식이 강하다. 야스쿠니 합사 철회 문제 역시 이른바 과거사 청산과 직결되며, 외교적 갈등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일본의 법적 절차에서 한국인 유족들의 요구가 번번이 기각되면서,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소수지만 일본 최고재판소 내부에서 이번에 “야스쿠니 합사가 유족의 평온한 정신생활을 위협하는 행위”라는 문제 의식이 처음으로 공식 제기되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인 유족들은 이를 근거로 “정교분리에 대한 헌법적 해석을 다시 묻겠다”며 추가 소송 또는 다른 형태의 공론화 노력을 이어갈 계획임을 내비치고 있다. 결국 이 문제는 법적 쟁점을 넘어,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그리고 한국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지라는 더 큰 담론 속에서 계속 논의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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