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원 작가] 얼마 전 만으로 마흔이 되었다. 말로만 듣던 사십춘기라도 찾아온 걸까. 이 나이 먹도록 이룬 게 하나도 없다는 패배감과 함께, 간간이 들어오는 일감에 만족하며 이대로 작업이나 하면서 살다가는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사회에서 설 자리가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아니, 아주 먼 미래를 내다볼 것까지도 없다. 바로 지금 이 순간, 겁도 없이 작업실을 덜컥 얻어 놓고 다달이 월세를 낼 생각에 공포에 질려 떠는 가난한 예술가의 현실이 눈앞에 가로놓여 있었다.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내 주변에서는 모두가 뜬금없는 소리로 들었으며 오직 부모님만이 이제야 철이 좀 들었다고 여겼다), 그 현실을 자각한 나는 더 늦기 전에 취업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십 단위로 딱 떨어지는 나이를 맞은 만큼 이쯤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하는 편이 앞으로의 삶에(적어도 향후 10년 동안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지역 일자리 센터를 통해 40대 ‘경단녀’가 신입으로 취업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엿보이는 직종을 추천받았다. 하지만 사회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나는 소위 말하는 경단녀조차 아니었다. 직장 생활을 지속한 적이 없기에 단절될 만한 경력이라는 것이 아예 없었다. 그런데도 센터에서는 나를 따스하게 맞아 주었다(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저 매뉴얼에 따라 기계적으로 응대했을 뿐인지도 모르지만, 인생 망한 것 같아서 더는 살고 싶지 않은 마음뿐이었던 내겐 큰 위로가 된 것은 사실이다. 다 잘될 거라는 센터의 은은한 (어쩌면 기계적이었을) 응원 속에서, 무너질 것 같은 정신줄을 부여잡고 센터가 권하는 교육과정에 지원했다.
나처럼 중년에 접어들어 진로를 고민하는 여성들과 함께 직업 교육을 받게 되었다. 청년기에 각기 다른 것을 배우고 각기 다른 것을 하다가 저마다의 사정으로 인해 일자리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었다. 교육장에서는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이전에 어떤 일을 했으며 지금은 무슨 일을 하는지 피차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저마다 먹고사는 일의 고충을 토로했고, 올해 안에 반드시 취업하자는 말을 덕담처럼 나눴다. 그 적당한 거리감에서 비롯된 익명성이 묘하게 편했다.
내 주변에는 온통 프리랜서 예술가뿐이다. 그들과는 그토록 노골적으로 툭 까놓고 생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들과는 대개 붐비지 않는 평일 오후 시간대에 만나곤 했는데, 만났다 하면 거의 최근에 하고 있는 작업 이야기, 최근에 봤던 작품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내심 다들 어떻게 그런 평일에 시간을 낼 수 있는지, 돈은 언제 벌고 작업은 무슨 돈으로 이어 가는지 궁금할 때가 있었다. 하긴 그들도 내게 같은 궁금증을 품었을 수 있다. 평일에 개인 시간을 만끽하면서도 어떻게 유유히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지 의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유형의 질문은 무신경하게 대뜸 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사회인으로서의 기본 매너를 탑재한 우리는 속으로 삼키고 말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 경우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늘 허덕이고 쪼들렸다.
취업을 준비하며 지인들에게 넌지시 내 결심을 털어놓고 어떤 반응이 돌아오는지 살피곤 했다. 고맙게도 다들 나름의 방식으로 내 진로 고민을 진지하게 귀담아들어 주었는데,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어떤 이들은 내 선택을 덤덤히 응원하는 한편, 남들은 직장에 다니다가 퇴사해서 자기 사업을 할 나이에 나는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또 어떤 이들은 내가 취업으로 인해 작업할 여유를 잃을 것이 아쉽다고 자기 일처럼 속상해하면서, 직장 생활이 결코 만만치 않으니 절대 버티지 못할 거라고 경고했다.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사실 나도 가능하다면 취업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사주를 보기 위해 난생처음으로 용하다는 사주가를 수소문해서 찾아가기도 했다. 사주가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각을 묻더니 내게 주어진 사주를 술술 풀어 놓았다. 내가 입을 뗄 겨를은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 속에서 진리의 단편을 발견한 느낌이다. 사주에 따르면 나는 ‘불’이었다. 다만 사방이 어둠으로 둘러싸인 불이다. 그래서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빛을 발하며 홀로 어둠 속을 더듬어 가야 했다. 그런 팔자를 타고난 사람은 오로지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고 했다, 어차피 의심이 많고 고집이 세서 누가 뭐라든 곱게 믿지도 듣지도 않을 거라고 했다.
그 한마디에 깨달았다. 내 인생의 해답을 다른 사람에게서 구할 수는 없는 거였다. 그 후로는 누구의 반응도 떠보지 않고 스스로가 계획한 일을 묵묵히 행동으로 옮겨 나갔다. 그러면서 이따금 머릿속에 떠올렸다. 스스로를 불태워 얻은 빛으로 눈앞을 밝혀 어둠 속을 나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말이다.
세 달 남짓 직업 훈련을 받고 네 개의 국가공인자격증을 딴 끝에 바라던 대로 어느 회사에 취업했다. 내 이력서는 거의 모든 곳에서 외면당했지만 단 한 곳, 그 회사에서만 주목해 주었다. 일자리가 정해진 직후 나는 오키나와로 3박 4일간의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돌아오자마자 작업실 건물주에게 문자를 보내 계약을 끝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로써 일 년간의 좌충우돌 촌극에 마침표를 찍었다.
나는 지금 작업실을 얻지 않았더라면 있는지도 몰라서 도달하지도 못했을 지점에 와 있다.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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