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진희 기자] 경북 봉화군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수년간 일하다 급성 백혈병에 걸린 하청노동자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영풍은 최근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인수에 나선 기업이다. 23일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에서 주주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지지를 얻느냐가 관건인데, 영풍 석포제련소의 환경‧노동 문제로 계속 발목이 잡히고 있다. 국회에서는 환경오염과 노동자 사고가 끊이지 않는 영풍에서 노동자 피해가 더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추가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3부(재판장 정준영)가 지난 16일 진모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인 2심에서 근로복지공단의 항소를 기각했다.
진씨는 2009년 12월부터 6년 9개월간 영풍 석포제련소 하청업체에서 아연 제련 과정에서 나오는 용액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필터 프레스 관리 업무 등을 맡았다. 영풍의 주력 사업장인 석포제련소는 연간 최대 40만톤의 아연괴를 생산하는 국내 최대 규모 비철금속 제련소다.
진씨는 2017년 3월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19년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은 2021년 6월 ‘진씨가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물질에 노출된 수준이 법령상 기준보다 낮다’는 역학조사를 이유로 산재 불승인을 통보했다. 이에 진씨는 근로복지공단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2심 항소심 재판부는 “근로복지공단이 주장하는 사유가 1심에서 주장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고, 1심과 2심에 제출된 증거를 근로복지공단 주장과 함께 다시 살펴보더라도 1심의 사실 인정과 판단은 정당하다고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재판부는 진씨가 얻은 백혈병이 영풍제련소 업무와 관련성이 있다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지속적으로 노출된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 물질이 진씨의 체질 등 다른 요인과 함께 복합적으로 작용해 백혈병을 발병하게 했거나 적어도 그 발병을 촉진하고 악화시킨 원인이 됐다”며 “노출 기준 이하의 작업환경이라는 이유만으로 직업성 질병의 이환을 부정하는 근거 또는 반증 자료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이 사건 사업장(영풍 석포제련소)은 유해 물질 노출 관리가 잘되지 않아 심각하게 지적을 받았던 사업장이었다”며 “진씨가 근무한 기간은 특별감사에서 보건관리와 작업환경 관리가 안 된다고 지적된 기간과 겹치는 바, 이러한 사정 또한 진씨가 포름알데히드 등 발암물질에 노출된 수준이 낮았다고 쉽사리 평가할 수 없는 하나의 정황이 된다”고 설명했다.
진씨가 근무 전 별다른 건강 이상이 없었고, 가족력도 없다는 점 등도 산재 인정 요인이었다.
한편 환경단체들은 환경 파괴에 이어 노동자 죽음이 이어지는 영풍 석포제련소를 폐쇄하라고 촉구했다.
영풍 석포제련소 주변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 공동대책위원회와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지난 16일 논평을 내고 “영풍 석포제련소는 아연 광석과 석탄을 가공해 만드는 연료인 코크스를 혼합한 뒤 황을 제거해 용광로에서 불순물을 걸러 순도 높은 아연을 생산한다”며 “이 과정에서 비소와 포름알데히드 같은 여러 유독물질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에서 오래 일한 노동자는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돼 백혈병과 같은 직업성 암에 걸리고, 하루만 일했던 노동자도 비소 누출로 인한 급성 중독으로 사망한다”고 주장했다.
또 “계속 환경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영풍 석포제련소에 대해 환경부가 통합환경허가를 취소하고, 제련소를 폐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이때, 노동자 백혈병의 산재 인정으로 작업환경에서도 노동자를 죽고 다치게 하는 곳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며 “하루빨리 폐쇄를 위한 로드맵이 시행돼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낙동강을 파괴하는 영풍 석포제련소가 문을 닫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풍 석포제련소는 오는 2월 26일부터 4월 24일까지 58일간 조업정지 처분에 들어간다. 지난 2019년 4월 환경부가 영풍 석포제련소에 대한 특별지도점검에서 폐수를 강에 유출시켜 ‘물환경보전법’ 위반 사실을 적발한 데 따른 조치다. 영풍이 지난해 10월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상대로 낸 ‘조업정지처분 취소 소송’에서 법원이 원고 청구를 심리불속행 기각해 처분이 확정됐다. 영풍 석포제련소는 같은 법 위반으로 2021년 조업정지 10일 처분을 받았고, 이번이 두 번째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백혈병 환자가 나올 정도로 작업장 환경이 열악하고, 관리도 못하는 기업, 환경오염과 노동자 사고가 끊이지 않는 영풍에서 추가적인 노동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추가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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