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은, 마르크스가 꿈꾸던 사회를 실현하려던 그의 추종자들이 최초로 장악한 권력,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것을 통해 구현된 현실사회주의(Really Existing Socialism)라는 체제를 고안했다. 여기서 ‘독재’라는 용어는 변화를 이루기 위해 정부가 견제와 균형, 절차상의 장애, 기성 권력 등을 일시적으로 (그리고 필요하다면 폭력을 동원해서) 보류시킨다는 의미였다. 즉 레닌에게도 본래 영구적이지 않은 체제를 의미했다.
그 독재는 누구의 이익을 위하여야 하는가? 레닌은 그것이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을 위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왜 인민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닌가? 사회의 모든 비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자기 이익만을 위한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기에, 그들에게 권력을 조금이라도 허용하면 필연적인 진보가 지연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필연적인 진보란 유토피아, 즉 진정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레닌과 그의 추종자들, 계승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변치 않는 일종의 신앙이 있었으니, 바로 마르크스가 옳다는 믿음이었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들이 만들어낸 경제 시스템이 필연적으로 인류의 행복을 가로막는 주요한 장애물이 된다고 보았다. 그의 관점에서 이 시스템은 부를 창출할 수는 있지만, 부를 공평하게 분배하지는 못했으며, 부가 증가할수록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구조였다. 부자들은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이들은 더욱 가난해지며 궁핍해질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시스템이 유지되면 디스토피아적 사회가 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제시했다.
“생산 자본이 증가할수록 분업과 기계 사용은 늘어나고,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임금은 더욱 줄어든다. 노동자들의 팔뚝은 더 가늘어지지만, 일자리를 요구하며 치켜드는 그들의 팔뚝은 점점 더 빽빽한 숲을 이루게 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디스토피아적 사회가 인류 역사의 최종 상태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이러한 사회는 혁명, 즉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 사회화한 시스템에 의해 필연적으로 전복될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혁명 이후에는 토지와 생산수단을 공동 소유하며, 인민들이 모여 국가가 소유하는 토지와 생산수단의 개선을 위한 계획을 마련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을 내리는 사회가 올 것이라 믿었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꿈꾼 유토피아이자 인류 역사가 필연적으로 도달할 미래였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틀렸다. 우선, 시장경제에서 부가 증가가 반드시 불평등과 궁핍의 심화를 초래한다는 그의 주장은 틀렸다. 그렇게 될 때도, 그렇게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 여부는 소득과 분배를 조절할 도구를 갖추고 있는 정부의 역할에 달린 문제이다. 무엇보다 마르크스가 필연적이라고 주장한 불평등-궁핍화-필연적 사회주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궁핍화는 적어도 영국의 경우 1850년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불평등은 서유럽에서는 1914년, 미국에서는 1929년에 최고조에 이른 뒤 감소했다. 자본가 계급뿐만 아니라 노동계급 역시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부유해졌다.
마르크스가 이와 같은 오류를 범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당시 그가 참고할 수 있는 산업화 사례는 영국뿐이었고, 영국은 산업화가 막 시작된 1790년보다 1840년에 더욱 불평등했으며 노동자들은 더욱 궁핍하고 비참한 삶을 살았다. 이 시점에선 마르크스의 이론은 많은 부분에서 현실성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사망한 1883년과 그 이후의 시점에선, 더 이상 그의 믿음을 현실적이라 말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신봉자들에게 있어 마르크스는 예언자가 되었고, 그의 저작은 신성한 경전이 되었다. 그가 주장한 필연적 궁핍화는 교조, 즉 이성의 문제가 아닌 초월적 믿음의 존재가 되었다. 마르크스가 제시한 혁명 이후의 사회주의 사회는 천국으로 여겨졌다.
레닌과 그의 후계자들은 예언자 마르크스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은 신이 아니었다. 현실에서 사회주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예언자의 말씀으로부터 어느 정도, 어쩌면 상당히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현실사회주의가 탄생했다. 그것은 이론가들의 유토피아적 몽상이 아닌, 복잡한 현실 세계와의 타협이었다. 그렇기에 현실사회주의자들은 이것이 마르크스의 유토피아에 최대한 근접한 가능태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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