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최주원 기자】 제주항공 참사 유족들이 희생자의 디지털 계정정보를 요청했지만 국내 기업들이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제공을 거부하며 디지털 유산에 대한 논란이 점화됐다. 반면 해외에서는 법과 플랫폼의 지원을 통해 디지털 유산 접근권을 보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국내 법제화 필요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제주항공 참사로 희생된 이들의 디지털 계정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유족들의 요청에 대해 네이버와 카카오는 기존 방침대로 계정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지난 9일 유가족의 요구가 커지자 결국 삼성전자·애플·카카오는 정부와 법령 검토 끝에 이름을 뺀 전화번호만 유족에게 제공하기로 했다. 이번 조치는 일회성 조치다.
카카오 관계자는 “회원사는 상속인에게 피상속인의 계정 접속권 등을 원칙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유가족분들이 원하는 수준의 제공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선행돼야 할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네이버 역시 유족의 요청이라 하더라도 회원의 계정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해외 주요 플랫폼 기업은 디지털 유산 관리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메타는 페이스북 계정을 사망 후 기념 계정으로 전환하거나 삭제하도록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며 구글은 비활성 계정 관리자를 통해 계정 관리 권한을 사전에 지정할 수 있게 했다. 애플은 지난해부터 ‘디지털 유산’ 기능을 도입해 아이폰 사용자가 가족이나 지인 5명에게 자신의 아이클라우드 데이터 접근 권한을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국내 기업의 대응은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삼성전자는 과거 가족관계증명서와 사망신고서를 제출하면 계정 데이터를 제공했으나, 안드로이드 보안 정책이 강화된 이후 관련 조치를 중단했다. 다만 올해 출시 예정인 갤럭시 S25부터 스마트폰 데이터를 상속할 수 있는 기능을 도입해 점차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문제는 디지털 유산의 상속권과 개인정보 보호 사이의 충돌이 법적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유족들의 정보 요청은 국가적 재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반복되고 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규율하는 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다. 유족의 권리와 개인정보 보호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정작 구체화 된 것은 전무하다. 2023년 당시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현 개혁신당 허은아 대표가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해외 국가에서는 디지털 유산 접근권이 법적으로 명시돼 보장되고 있다. 미국은 47개 주에서 ‘디지털 자산 통일신탁접근법’을 통해 사용자가 디지털 유산 관리 방법을 사전에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GDPR(일반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사용자가 사망 후 자신의 데이터 처리 방식을 사전에 설정할 수 있도록 하고, 개별 국가가 판례 및 해석을 통해 디지털 유산 상속을 인정 해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여대 김명주 교수는 디지털 유산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확대가 우선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유족을 포함한 소수 지정인들에게 미리 권한 부여를 예약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 교수는 “천안함, 이태원, 제주항공 등 참사 유족들만 그 필요성을 느낄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이 본인의 죽음 뒤에 자신의 계정과 디지털 유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며 “국내 플랫폼 기업들이 외국 기업들이 제공하는 휴면계정관리자 기능을 넣고, 약관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이메일 및 SNS 계정 정보를 단순 개인정보로만 간주하지 말고 디지털 유산과 자산 관리의 관점에서 유족 등 지정인에게 미리 접근 권한을 부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라며 “수탁자에게 비밀유지와 개인정보 보호 의무를 부여하고, 플랫폼 기업이 이를 지원할 약관 수정 및 기술적 구현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디지털 유산에 대한 권리를 어떻게 처분할지에 대한 법안은 지난 국회부터 지금까지 연속으로 논의되고 있다”며 “개인 정보에 대해 플랫폼 가입 전 계정 대리인을 별도로 지정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접근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접근권 설정에 대한 부분은 국회 차원에서 충분히 이뤄질 수 있는 논의”라며 “다만 이 법안에 대해 아직 상정되지는 않고 공동 발의만 돼있는 상태”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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