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가장 높은 곳을 향하던 시간의 한남동 관저. 한때는 정의를 외치던 검사 윤석열은 피의자가 돼 떠나갔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외치던 시민의 눈물과 한숨이 이 순간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권력의 정점에서 추락한 한 사람의 마지막 발걸음. 그 뒤로 남은 것은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의 간절한 희망뿐이다. ▶관련기사 4면
◆대통령도 법 앞에 선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가장 충격적인 순간이 펼쳐졌다. 15일 오전 10시 33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했다. 청명한 겨울 하늘 아래 대통령도 법 앞에 선다는 민주주의의 엄중한 원칙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43일 만에 이뤄진 윤 대통령 체포는 대한민국 법치주의가 마주한 가장 큰 시험대다. 공수처 338호 영상녹화조사실에서는 이재승 차장이 200여 쪽에 달하는 질문지를 들고 직접 조사를 진행했다.
세 차례 출석요구를 거부한 끝에 이뤄진 윤 대통령 체포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3일 첫 체포영장 집행은 대통령 경호처와 군인 200여 명의 인간 방패에 막혀 무산됐다. 그러나 공수처는 포기하지 않았고 6일 재청구한 체포영장이 마침내 이날 집행됐다. 윤 대통령은 체포 직전 대국민 담화를 통해 “불미스러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출석하겠다. 하지만 공수처 수사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여전히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권력의 정점에서 철창 너머로
한때 청와대의 푸른 잔디를 거닐며 대한민국의 운명을 손에 쥐었던 이들, 그중 일부는 차가운 콘크리트 벽 사이에 갇혔다. 검은 양복 대신 수의를 입고 경호원의 호위 대신 교도관의 감시를 받게 된 그들의 마지막 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치소로 향하던 날 봄바람은 유난히 차가웠다. 한때 국민의 환호 속에 청와대에 입성했던 박 전 대통령은 쓸쓸한 겨울을 보내야 했다. ‘국민과 함께’라는 구호는 어느새 ‘고독과 함께’로 바뀌었고 화려했던 권좌는 차가운 독방이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비슷한 운명을 맞이했다.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며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던 이 전 대통령도 결국 법의 심판대 앞에서는 한 명의 피의자일 뿐이었다. 청계천의 맑은 물소리는 구치소의 쇠창살 소리로 바뀌었고 그가 꿈꾸던 ‘747’ 공약은 17년이라는 형기로 끝이 났다.
이제 또 한 명의 대통령이 법정에 선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대통령이 이번에는 피의자가 돼 법정에 서는 아이러니. 한때 정의를 외치며 수사를 지휘하던 윤 대통령이 피의자가 돼 같은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듯한 이 순간, 우리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긴다.
◆대통령의 몰락
차가운 겨울바람이 한남동 관저를 휘감던 새벽 대한민국 역사는 또 한 번의 큰 획을 그었다. 한때 검찰총장으로 정의를 외치던 사람이 내란 우두머리라는 오명을 안고 체포되는 순간을 지켜보며 국민의 마음은 무거웠다.
“우려했던 물리적 충돌이 없어 다행이다”.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에게는 안도감이 묻어났다. 박 위원장의 언급처럼 새벽녘 관저 앞에는 긴장감만이 감돌았을 뿐 우려했던 혼란은 없었다. 마치 겨울 끝자락의 고요함처럼.
“내란 세력이 무너뜨린 헌법 원칙을 바로세웠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의 말에는 봄을 기다리는 설렘이 담겨있었다. 장철민 민주당 의원(대전 동구)은 “눈치 보던 수사기관을 움직이고 저항하려던 대통령 경호처를 무너뜨린 건 모두 국민들의 힘”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승리를 목격한 감동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추운 겨울 칼바람이 지나가면 따뜻한 봄이 온다. 대한민국의 봄을 앞당기겠다”. 황정아 민주당 의원(대전 유성을)의 이 한마디는 마치 시처럼 울렸다. 황 의원의 말은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국민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한편 한남동 관저 앞에 모였던 국민의힘 의원은 침묵 속에 사라졌다. 그들의 침묵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무겁게 장식했다. 이제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봄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그리고 그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는 것을.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Copyright ⓒ 금강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