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고영미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43일 만인 1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15일 내란 우두머리 등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했다. 현직 대통령이 수사기관에 체포된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로, 조기대선이 가시화하는 상황에서 여야 정치 원로들과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도 개헌 논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전직 국회의장·국무총리·당 대표들로 구성된 '나라를 사랑하는 원로 모임'은 “지금이 개헌 적기”라는 데 공감대를 이루며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개헌 없는 대선’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여야가 당장 개헌 논의에 착수해 올해 말까지 분권형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개헌 국민투표를 마쳐야 한다“라고 주장했으며, 유정복 신임 시도지사협의회장은 “중앙과 지방의 수평적 협력관계 구축을 위한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원로 모임서 “대통령 개인 선의에 의한 좋은 정치는 이뤄질 수 없어”
전직 국회의장·국무총리·당 대표들로 구성된 '나라를 사랑하는 원로 모임'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정대철 헌정회장을 비롯해 김진표·박병석 전 국회의장, 정운찬·정세균·김부겸 전 국무총리, 서청원·손학규·김무성 등 여야 정당 전직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2차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우원식 국회의장도 참석했다.
박병석 전 국회의장은 이 자리에서 "대통령제 같은 승자독식 구조를 깨는 개헌과 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전 의장은 모임 후 언론과의 통화에서 지금까지 성공한 대통령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은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제도의 문제라고 지적하며 대통령 개인 선의에 의해 좋은 정치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는 접어야 한다는 데 모두가 동의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의원내각제 VS 대통령 4년 중임제 도입 주장
김진표 전 의장도 “4년 중임제와 책임총리제가 필요하다. 대통령 선거 전에 개헌은 불가능하고, 대선과 개헌을 같이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지금의 위기 상황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부작용에서 오는 문제로 권력분산형 개헌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하며 “현실적으로 대선 전 개헌이 어려워 우리가 적극적으로 (여야 정치권에) 개헌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안 되면 대통령 선거 때 (개헌을 특정 시기에 하겠다는) 국민투표를 진행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권력구조 개헌의 핵심은 행정부와 의회의 충돌을 막고, 행정부와 의회 권력이 일치해 정치 안정을 이루는 것”이라며 "지금 우리나라의 문제는 대통령의 무제한적 권력 남용보다 행정부 권력과 의회 권력의 충돌"이라며 '의원내각제'를 주장했다.
반면 정운찬 전 총리는 “내각제라고 하면 사람들이 1960년대 장면 정부(1960~1961년)를 생각하는데, 그때는 군부가 개입해 실패했다”며 “한국 의회의 다양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내각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대철 회장은 “내각제가 이상적 방식이지만, 국민이 선택할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이번에는 이원집정부제에 4년 중임제로 개헌하고, 다음번에 내각제로 개헌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선 개헌 논의 중 일부만 국민투표에 부치고, 나머지는 차기 정권 출범 후 2차 개헌을 담보하는 방식의 ‘과도기적 연성 개헌’ 주장도 제기됐다.
정대철 헌정회장과 전병헌 새미래민주당 대표는 '선(先) 개헌·후(後) 대선'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병헌 새미래민주당 대표는 “여야가 마음만 먹으면 40일에서 60일 이내에도 개헌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의 개헌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을 꿈꾸고 있는 한 대통령 선거 전 개헌은 불가능하다"며 "거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전병헌 대표는 "이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개헌을 공약 1호로 제시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당초 우원식 국회의장을 간담회에 초청해 조속한 개헌특위 구성 등을 촉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우 의장이 이날 간담회에 들러 “개헌 취지에는 공감하나, 현재 혼란상과 여러 여건이 정리된 다음 얘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尹 체포 영장 집행 의견 엇갈려..."체포 구속맞나" vs "법 존중해야"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문제와 관련해선 원로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김무성 전 대표가 "현직 대통령이 국민이 보는 앞에서 체포돼 가는 모습은 없어야겠다"고 운을 띄우자, 손 전 대표도 "유죄 판결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무력 충돌 위협까지 하면서 대통령을 당장 체포하고 구속하는 게 맞느냐"고 동의했다.
반면 정세균 전 총리는 "수사를 여러 번 기피했기 때문에 체포영장이 나온 것"이라며 "대통령께서 법을 존중해야지 그걸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부겸 전 총리도 "이건 법치와 민주주의를 본인 스스로 짓밟아서 발생한 일"이라며 "대통령이 스스로 출두하겠다고 약속해 이 문제를 풀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다음달 3일 후속 모임을 갖기로 했다. 합의된 개헌안을 만들어 우 의장과 여야 대표에 전달하는 것이 모임의 목표다. 헌정회 관계자는 “지난 10일 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만났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도 면담을 요청했고 답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재오 “여야, 당장 개헌 논의에 착수해야”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지난 13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권의 퇴행이 현행 대통령제가 가진 제도적 한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의 대통령제는 여당이 항상 다수일 때만 상정했지, 여소야대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 놨다”며 “여야가 당장 개헌 논의에 착수해 올해 말까지 분권형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개헌 국민투표를 마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이사장은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해서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 외교안보를 책임지되, 그 외 내치는 국무총리 중심의 내각이 담당하는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를 제안했다. 그는 “내각 구성은 국회 의석에 비례하도록 해 소수당도 국정에 참여할 기회를 보장하고, 대통령에 대해서는 ‘4년 중임제’를 채택해 중임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정복 시도지사협의회장 “중앙과 지방의 수평적 협력관계 구축 필요”
비상계엄으로 혼란한 정국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개헌 논의에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시도협)가 본격 가세했다.
그간 국회를 중심으로 개헌의 필요성이 제기되며 대통령(행정부)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켜 입법부(국회)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를 이뤘지만 시도협의 개헌 논의는 행정안전부 등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의 지방 이양을 전제로 하고 있다.
유정복 신임 시도지사협의회장은 지난 13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취임 및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역의 민생과 경제를 지켜온 지방정부의 중요성은 (계엄 선포, 탄핵 등) 정치적 혼란기를 거치면서 다시 한번 더 확인됐다”며 “중앙과 지방의 수평적 협력관계 구축을 위한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시도협은 다음 달 초순까지 17개 시도 의견을 수렴한 헌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2월 하순에는 전문가 토론회 등을 연다는 계획이다.
유 회장은 올해 본격적인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중앙집권적 사고에서 비롯된 각종 규제와 체계가 책임감 있는 지방정부를 저해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행안부 자문위원회인 미래지향적지방행정체제개편자문위원회 하혜수 위원(경북대 행정학과 교수)은 “개헌에 이토록 많은 이들이 공감했던 적이 없고, 앞으로도 이런 기회는 없을 것”이라며 “제도적 지방자치를 넘어 실질적 지방자치를 위한 발판이 올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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