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오리온은 지난해 1월 리가켐 인수 계획을 밝힌 후 같은 해 3월 리가켐 지분 25.73% 인수를 위한 주식대금 5485억원을 납입하며 최대주주에 올랐다.
리가켐바이오는 김용주 대표가 지난 2006년 설립한 항체-약물접합체(ADC) 개발 전문 바이오테크(바이오 기술사)다. 오리온에 인수되기 전 '만년 적자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지난해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이 흑자로 전환하는 등 재무 안정성을 확보한 상태다. 이에 따라 사업전략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리가켐 2025년 1분기 IR 자료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해부터 기술이전 대상을 기존의 중견 제약사·NRDO(No Research Development Only) 기업에서 글로벌 대형 제약사로 확장했다. 또 기술이전 단계도 후보물질 발굴·IND(임상시험계획) 등 전임상 단계에서 임상 1상 및 2상으로 변경했다.
기존에 리가켐은 초기 개발단계에서 신약 후보물질의 기술이전을 택했다. 재무 구조가 불안정한 바이오테크로서 실패 부담이 큰 자체 임상 대신 기술이전으로 비용과 리스크를 줄이고 파트너사를 통해 임상을 진행하는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중국 포순제약과 맺은 'LCB14'(HER2-ADC, FS-1502) 기술이전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자체 임상 진행 자금이 없던 리가켐바이오는 후보물질의 가능성을 파트너사가 대신 증명하길 바라는 목적으로 기술이전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얀센에 기술이전한 'LCB84'나 시스톤파마슈티컬스에 기술이전한 'LCB71'도 비슷한 경우다.
바이오테크로서 마땅한 수익원이 없는 리가켐 입장에서는 기술이전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동시에 개발 비용을 아끼는 빠른 기술이전 전략을 쓸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전략에 변화가 생긴 것은 리가켐이 오리온의 대규모 투자와 함께 몇 차례 대규모 기술이전 계약을 맺으며 풍부한 현금을 확보한 것과 관련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리가켐이 보유한 금융자산 총 4950억원 가운데 정기예금(금융기관예치금)은 3750억원에 이른다. 현금및현금성자산은 ▲보통예금 361억원 ▲예화예금 26억원 ▲단기채권 1149억원 등 총 1536억원 수준으로, 1년 이내 단기간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성은 약 5490억원으로 추정된다.
풍부한 현금유동성을 보유하게 된 것은 오리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자금 4698억원과 얀센 기술이전 계약금 1300억원 등을 대부분 예금에 넣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투자활동 현금유출은 4463억원을 기록했는데, 재무활동 현금유입 4729억원 중 대부분을 금융자산에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지난해 3분기 누적 이자수익이 140억원을 넘어서는 등 순이익 흑자전환의 원동력이 됐다.
많은 연구개발(R&D) 자금이 필요한 자체 임상시험 진행이 가능해지며 지난해 글로벌 임상 1상에 진입한 3개 ADC 후보물질(LCB84(TROP2-ADC), LCB71(ROR1-ADC), LCB73 (CD19-ADC)) 중 'LCB84'에 대한 임상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미국 파트너사 넥스트큐어와 공동개발 중인 B7-H4 ADC 'LNCB74(LCB41A)'의 고형암 대상 미국 임상1상 첫 환자 투약을 개시했다.
이외에 면역항암제 'LCB39'은 내년 상반기 글로벌 임상 개시를 노린다. 임상 1상 결과를 통해 물질 가치를 높여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리가켐은 지난해 순이익 흑자전환에도 불구하고 연구개발비 725억원을 쓰며 영업손실 72억원을 기록한 상황이다. 회사는 올해도 연구개발비 투자를 3000억원대로 늘리기로 했다.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3년 내 10개 이상의 시험계획서(IND) 승인이 목표다.
리가켐은 새로운 전략을 '비전 2030'으로 명명했는데, 5년 내 약 15개 임상 파이프라인울 확보하고 5개 이상의 자체 임상 파이프라인은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비전 2030'의 핵심인 자체 임상 확대와 기술이전 대상의 범위 확대뿐만 아니라, 기존의 단일 물질·플랫폼 기술이전 방식에서 벗어나 물질과 플랫폼을 함께 이전하는 패키지 딜 방식으로 전략을 전환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새로운 기술이전 형태를 보여주는 사례가 지난해 10월 일본 오노약품공업과 체결한 두 건의 계약으로, 리가켐은 ADC 물질 'LCB97'과 차세대 ADC 플랫폼 기술을 함께 이전했다.
이번 계약으로 오노약품은 개발·상업화 전세계 독점권을 확보했고, 리가켐은 계약금, 연구개발, 판매에 따른 마일스톤으로 최대 7억달러(약 1조225억원)를 지급받을 수 있다. 순매출에 따른 로열티는 별도이다.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매년 5개의 후보물질 도출을 목표로 연구에 집중해 지속적으로 고부가가치 기술이전을 위한 임상개발단계 파이프라인 구축에 노력하고 있다"면서 "공동개발 및 기술이전, 플랫폼과 프로덕트(물질)를 활용한 각종 패키지딜 등 다양한 사업모델을 발굴해 사업화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임상을 진행 중인 LCB71과 LCB84 임상 1상 결과는 연내 확인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빠르게 상업화 단계를 밟고 있는 LCB14는 2026년 중국시장 진입이 목표다.
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LCB14, LCB71의 임상 진행에 따라 파이프라인 가치 상승이 예상된다"면서 "LCB84 글로벌 임상1상 톱라인 데이터(Top Line data)에서 긍정적 결과가 나올 시 J&J(존슨앤존슨)의 옵션 행사가 기대된다. 마일스톤 유입으로 3000억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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