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어. 엄마가 알면 절대 안 돼.”
청하는 말없이 옆에 있는 제니가 왠지 한 식구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열이 곁에 있어 줘요. 외로운 사람이니까.”
제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니의 집에서 사흘을 보낸 뒤, 함께 가려는 제니를 서울에 두고 정열은 일본으로 향했다. 도쿄공항에 도착하자 정열을 알아보고 다가오는 여자가 있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연락받고 나온 하루끼입니다.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여자를 따라 나가 차에 오르자 뒤쪽으로 몇 대의 차가 같이 움직였다. 호텔에 도착해서 방으로 들어서자 한 남성이 기다리고 있다. 731부대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짐 스미스였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 왼쪽 발과 오른쪽 팔이 없다.
“어서 오게! 자네가 임 여사님의 영식이신가? 벌써 이렇게 컸구먼.”
“네, 이정열입니다. 그런데…”
“나는 스미스라고 하네. 지밀원 고문을 맡고 있지. 자네가 어릴 때 몇 번 봤지. 임 회장님이 얼마나 자랑을 하시던지. 하하하.”
“아, 반갑습니다.”
“자네를 도와 토모아키를 잡는 것을 도우라는 명령을 받았으니 언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게. 사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일이기도 하다네.”
스미스는 731부대 장교들을 추적해 오다 도진요시카이 조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실을 정열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도진요시카이의 두목인 이시이 소우는 731부대장이었던 이시이 시로의 아들이었고, 토모아키는 731부대 동상연구반장 요시무라 히사토의 손자였다. 도진요시카이의 주요 인물들은 731부대와 관련이 있었다. 스미스가 그동안 비밀리에 조사한 이야기를 들은 정열은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직도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지 상상조차 못했다. 스미스는 정열에게 힘주어 말한다.
“731부대는 아직 살아있다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이건 차원이 다른 전쟁일세. 자네가 도와준다면 시작할 수 있어. 내가 아직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임 회장님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네. 우리 쪽 준비는 이제 끝났어.”
스미스는 자신의 팔과 다리를 동상 실험으로 깨어 부순 요시무라 히사토와 그 관련자들을 처절히 응징하기 위한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지금까지 목숨을 이어 왔다.
스미스는 몇 년에 걸쳐 도진요시카이와 야마구치구미에 지밀원 요원들을 상당수 침투시켰다. 그들은 야쿠자의 조직원과 간부로 활동하는 중이다.
정열은 청하에게 연락하여 어머니를 설득해달라고 부탁했다.
“누나, 여기서 난 포기할 수 없어! 제발 좀 도와줘.”
“이건 우리 조직 전체의 운명이 걸린 일이야!”
“누나! 731부대가 아직 살아있어, 아직도! 그런데 이걸 알고도 가만있으란 말이야? 제니 복수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야. 이 사실을 내가 알게 된 이상 나는 포기 못 해!”
청하도 스미스를 통해 몇 번이나 731부대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정열이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마마에게 이야기 해볼게. 내가 연락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있어. 이건 누나하고 약속해!”
“알았어.”
청하는 고민을 했다. 자칫하면 일본과 전쟁을 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시작하려면 SD그룹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자금과 조직 전부를!
결심을 한 청하는 비장한 마음으로 임영숙 회장을 만나러 출발했다.
“어서 와. 무슨 일 있어?”
평소와 달리 상기된 얼굴을 한 청하를 보더니 임 회장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마마, 열이가 지금 일본에 있어요.”
“뭐! 열이가 일본에? 도대체 왜 일본에 간 거야? 나도 모르게.”
화를 내며 청하를 다그쳤다.
“뭣 때문에 내게 말도 없이 일본에 갔는지 빨리 이야기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는 청하도 이마에 땀이 흘렀다.
“마마, 더 이상 열이를 막을 수가 없었어요. 그 상황이라면 저라도 열이처럼 했을 거예요.”
“너! 도대체…”
“죄송해요.”
“스미스가 그 일을 기어코 하겠다는 거야?”
“지금 치지 않으면 영원히 힘들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 쪽에서 미국 정부와 더 밀착되면 우리는 그동안 준비했던 ‘벚꽃 여행’을 완전히 중단해야 합니다.”
스미스가 준비한 일본 전범을 처단하는 계획이 벚꽃 여행이다.
“승산은?”
“40% 정도입니다.”
“우리 모든 걸 걸어도 그 정도야?”
“네, 상대 전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더구나 일본에서 치러야 하는 전쟁이라서.”
한참을 생각하던 영숙은 비장한 얼굴로 청하에게 말한다.
“후회하지 않겠어? 모든 걸 잃을 수 있는데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열이도 같은 마음이다?”
“그렇습니다. 지금 스미스와 같이 마마의 결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그런 마음인데 내가 어쩌겠어? 그 대신, 내가 직접 간다.”
“그건 안 됩니다!”
“넌 서울을 지키고 있어. 일본은 내가 상대해.”
“안 됩니다! 마마는 지원을 해 주셔야 합니다. 중앙정보부나 CIA 지원을 받으려면 마마가 서울에 계셔야 가능합니다. 정열이도 마마가 오시는 걸 원치 않을 겁니다.”
결연한 청하의 얼굴에 영숙은 더 이상 고집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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