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간) 전장에 투입된 북한군 2명을 생포하면서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사실로 확인됐다.
특히, 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지 못한채 전장에 투입됐으며, 충분한 전술 훈련이나 후방 지원 없이 '총알받이' 역할을 한 정황이 확인되고 있다.
포로로 붙잡힌 이들의 신병 처리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에 붙잡힌 우크라이나군과 맞교환을 원하고 있으나 러시아와 북한이 이들을 자국군으로 인정하지 않을 경우에는 포로 지위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일각에서는 이들을 한국 국적자로 간주해 국내로 송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0세, 26세 젊은 병사 2명 생포.. 국정원, 심문 지원
국정원 "러시아 파병 북한군 사망 300여명·부상 2천700여명"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1일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지역에서 북한 군인 2명을 생포했다고 공개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 국정원도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9일 러시아 쿠르스크 전장에서 북한군 2명을 생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생포된 북한군이 각각 20세, 26세 젊은 병사이며 이들은 우크라이나 정보당국(SBU)의 심문을 받고 있다면서 관련 영상도 공개했다.
SBU의 심문에는 한국어를 하는 남성이 통역 역할을 했는데 국정원이 협력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상에서 침대에 누운 채 조사받은 북한군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싸우는 것을 알고 있었어?'라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답하지 않았다.
이 북한군은 "1월 3일 나와서 동료들이 죽는 것을 보고 방공호에 숨어 있다가 5일 부상당하고 (잡혔다)"라고 설명했다.
생포된 북한군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지난해 11월 러시아에 도착해 일주일간 러시아 측으로부터 군사훈련을 받은 후 전장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전쟁이 아닌 훈련을 받기 위해 이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러시아 도착 후에야 파병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군인은 자신은 부대에서 낙오되어 4∼5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다가 붙잡혔다고도 털어놨다.
국정원은 13일 우크라이나전에 파병돼 러시아를 지원하는 북한군 병사들의 사상자가 3천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국회 정보위원회가 개최한 비공개 간담회에서 국정원은 이런 내용을 보고했다고 여야 간사인 국민의힘 이성권·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발표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러시아 파병 북한군의 교전 참여 지역이 쿠르스크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북한군 사상자는 사망 300여명, 부상 2천700여명 등 3천여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은 현대전에 대한 이해 부족과 러시아 측의 북한군 활용 방식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즉, 드론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 방법을 모른채 전장에 나선데다 후방 화력 지원도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총알받이'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북한 내부에서는 러시아 파병과 관련한 소식이 암암리에 확산 중으로, 파병군 가족들은 '노예병, 대포밥'이라는 자조와 걱정을 토로하고 있다고 국정원은 보고했다.
'총알받이'로 전락한 북한군의 상황은 그간 여러 경로를 통해 꾸준히 전해진 바 있다.
9일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우크라이나군의 증언을 인용해 북한군 병사들이 사실상 '인간 지뢰 탐지기'로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우크라이나에 따르면 러시아군과 북한군은 부상한 동료를 처형해 증거를 없애는 방식으로 북한군의 참전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번에 생포된 북한군도 자신이 낙오돼 4~5일간 헤매다 붙잡혔다고 말했는데, 러시아군에 먼저 발견됐다면 부상 상태로 방치되거나 처형됐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인권센터 "북한군 포로, 한국 국적자로 간주하고 송환 검토해야"
젤렌스키, 우크라 포로와 맞교환 제안
이들의 신병 처리가 어떻게 될지도 관건이다.
전시 포로의 처우를 규정한 제네바 협약은 적대행위 종료 후 포로의 석방과 송환을 의무화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가 생포된 북한군을 러시아군 소속으로 인정한다면 협약에 따라 전쟁포로 지위가 부여되고 러시아 측으로 송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북한과 러시아가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들 두 국가가 모두 자국군 소속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이들은 '불법 전투원' 등으로 간주돼 전쟁포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러시아는 전선에 투입된 북한군 병사들을 자국 국민이라고 허위로 기재한 신분증을 주는 등 위장 전술까지 구사해왔다.
또, 이들이 자국으로 복귀 시 탄압과 처벌 등 인권침해 위협에 직면한다면 송환 의무의 예외 대상으로 간주될 수 있다. 즉, 북한군 병사 본인들의 의사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남거나 제3국행 가능성도 있다.
북한군 포로 중 1명은 우크라이나에 남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우크라이나가 공개한 북한군 포로 신문 영상을 보면, 1명은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여기서 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집에 가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가라면 가는데"라고 말을 흐렸고, 우크라이나에 남으라면 남겠느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우리 헌법을 감안하면 북한군 포로가 한국 국적을 가진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과 인권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에서 "정부는 우크라이나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북한 포로에게 북송이 아닌 대한민국 송환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변상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도 지난해 11월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러북 양국이 소속을 확인해주지 않는 북한군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우선적 관할권을 갖게 되므로 정부는 우크라이나와의 협의를 통해 북한군을 한국으로 송환하기 위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변 실장은 "북한군이 한국 귀순 의사를 밝히게 되면 '제네바 제3협약에 관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주석서'에 의거해 포로 송환 의무의 예외를 정당화할 여지가 있다"며 이 같은 경우에도 정부가 ICRC에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는 13일 정례브리핑에서 "국제법 등 법률적 검토와 함께 관계국과의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현 단계에서 예단해서 말씀드릴 내용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젤렌스키 대통령은 12일 러시아에 억류된 우크라이나군을 인도하는 조건으로 자신들이 생포한 북한군을 풀어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한글로 "김정은이 러시아에 억류된 우크라이나 전쟁 포로와 북한 군인의 교환을 추진할 수 있을 경우에만 북한 군인을 김정은에게 넘겨줄 준비가 돼 있다"며 "처음 생포한 병사들 외에도 의심할 여지 없이 다른 병사들도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다음은 생포된 북한군 2명의 신문 내용 전문.
북한군 포로1
--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알아?
▲ (고개 좌우로 흔들어)
-- 너 지금 우크라이나에 있어. 우크라이나.
▲ (고개 끄덕끄덕)
-- 우크라이나 상대로 싸우는 거 알고 있었지?
▲ (고개 좌우로 흔들어)
-- 몰랐어?
▲ (가볍게 고개 끄덕)
-- 그러면 여기 지휘관들은 뭐라고 했어? 누구랑 싸운다고 했어?
▲ 훈련을 실전처럼 해본다고 했어요.
-- 그러면 전선에는 1월 3일부터만 있었던 거야?
▲ (고개 살짝 끄덕)
-- 1월 3일부터 있었고.
▲ (다시 고개 끄덕)
-- 그러고 언제까지? 잡혔을 때까지?
▲ (고개 끄덕이며) 1월 3일에…. (통증이 있는지 잠시 얼굴을 찡그린 뒤 다시 말을 이으며) 와서 옆에 동료들이 죽은 것을 보고, 그러고 방공호에 숨어있다가 5일에 부상당하고….
--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
▲ (잠시 머뭇거리다) 우크라이나 사람들 다 좋은가요?
-- 우크라이나 괜찮은 것 같아? 여기는 좋아.
▲ (다시 잠시 머뭇거리다가) 여기서 살고 싶어요.
-- 너는 지금 우리, 여기 우크라이나 친구들이랑 나를 포함해서 여기 선생님들 계셨잖아. 그분들이랑 잘 이야기하면 여기서 최대한 살 수 있도록 우리가 잘해볼 테니까 건강하게 잘 있어야 해. 건강하게 잘 있고, 밥 주는 거 잘 먹고. 알겠지? 자주 올 테니까.
▲ 집에는 안 보내주겠죠?
-- 집에? 집에 가고 싶어?
▲ 가라면 가는데….
-- 가라면 갈 거고.
▲ (고개 끄덕)
-- 우크라이나에 남으라면 남을 거고?
▲ (좀 더 분명하게 고개 끄덕끄덕)
북한군 포로 2
-- 북한에 가족들이 없어?
▲ (고개 끄덕이며) 으으음….
-- 있어?
▲ (다시 고개 끄덕이며) 으으음….
-- 부모님은 지금 너 어디에 있는지 알아?
▲ (고개 끄덕끄덕)
--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시선 아래로 떨구며 침묵)
-- 조선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 (고개 끄덕이며 시선 다시 위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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