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NFL 애리조나 카디널스의 스타 쿼터백 카일러 머레이의 경기 모습. AP뉴시스
한국인인 외할머니와 깊은 유대
헬멧에 태극기·성조기 달고 뛰어
최애 음식은 어머니표 양념치킨
하루에 한두 단어씩 한국어 공부
태극마크 달고 LA올림픽 뛰고파
이날 경기장에서 일생일대의 환희를 맛본 카디널스의 팬들은 물론, NFL(미 내셔널 풋볼리그) 역사에 영원히 면도날로 새겨진 이 패스의 주인공은 카일러 머레이(Kyler Murray·27). ‘Hail Mary(헤일 메리·미식축구에서 경기 종료 직전 엔드존을 향해 던지는 롱패스. 아베 마리아의 영어식 표현이기도 하다)’를 지우고 ‘Hail Murray(헤일 머레이)’의 신화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전 세계 미식축구 팬들이 열광했지만, 한국 팬들은 좀 더 ‘각별한’ 감정으로 새로운 히어로의 탄생을 응원했다. 그의 혈관 속에는 김칫국물과 같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카일러 머레이는 1997년 미국 텍사스 주 베드포드 출생으로 아버지 케빈 머레이, 어머니 미시 머레이(한국명 미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텍사스 A&M 대학 풋볼팀 선수였는데. 심지어 포지션도 쿼터백. 카일러는 아버지로부터 풋볼뿐만 아니라 ‘쿼터백’의 재능까지 디테일하게 물려받은 셈이다.
어머니 미선씨는 주한미군이었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니까, 카일러 머레이의 외할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얘기가 된다.
카일러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진제공 | 미시 머레이
6살 카일어와 어머니 미선씨. 사진제공 | 미시 머레이
● 태극기와 성조기, 두 문화를 대표하는 쿼터백
카일러 머레이에게 한국은 단순히 ‘외깃집 나라’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미선씨는 “카일러는 나와 내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문화를 배우며 자랐다. 내 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카일러와 오래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카일러는 외할머니와 특별한 유대를 쌓았다. 어릴 때부터 카일러는 할머니와의 시간, 그리고 내가 들려주는 한국의 이야기들을 정말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카일러는 한국과 한국의 문화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배우고 이해하려는 열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 친척들과도 정기적으로 만나며 유대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을 만날 때마다 카일러는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며 한국방문에 대한 의욕을 드러낸다고 한다. 미선씨는 “가족모임에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카일러가 얼마나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이는지 모르실 것”이라며 미소 짓는다.
카일러 머레이의 한국사랑은 (당연하게도) 한국음식으로 이어진다. 카일러의 최애 음식은 어머니가 만든 ‘매운 한국식 치킨’으로, 우리가 ‘양념치킨’이라 부르는 것이다. 미선씨는 “카일러는 항상 미국식보다 한국음식을 더 좋아했다. 내가 만든 음식이 카일러에게 한국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다가간다는 것이 뿌듯하다”고 했다.
동료선수와 팬들은 카일러의 헬멧에 미국 성조기와 한국 태극기가 나란히 붙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미선씨는 “여기에는 단순한 상징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카일러는 자신이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쿼터백’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이 두 개의 문화를 대표하고 싶어 한다. “팬들은 태극기를 볼 때마다 카일러가 얼마나 한국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미선씨의 말이다.
슈퍼 풋볼스타답게 카일러는 방송,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팬들이 기억하는 유명한 어록들도 많이 만들어냈다. “나는 항상 내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이기고 싶다. 그게 내가 경기를 하는 이유”, “나는 내 방식대로 경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와 같은 것이 대표적인 카일러의 어록 일 것이다. 이 중에는 “나는 한국계 혈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언젠가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도 있었다.
카일러가 어머니에게 선물한 어버이날 케이크. 사진제공 | 미시 머레이
한국과 관련된 카일러의 애장품. 사진제공 | 미시 머레이
● ‘작은 고추가 맵다’ 증명해낸 신급 운동능력
NFL에서 쿼터백은 ‘거인들의 놀이터’라 불릴 만큼 장신 선수들이 즐비하다. 이에 비해 178cm, 95kg의 몸을 가진 카일러는 확실히 작은 편에 속할지 모른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팬들이 그의 신장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그의 ‘신급 운동능력’을 논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카일러는 한국 속담 ‘작은 고추가 맵다’를 증명하며 엄청난 운동능력과 정신력으로 거인들을 상대했다. 2019년 NFL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애리조나 카디널스에 입단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데뷔 시즌부터 풋볼계를 발칵 뒤집어 놓으며 NFL 오펜시브 루키 오브 더 이어를 수상했다. ‘독수리’처럼 필드를 스캔하고, ‘치타’처럼 수비수들을 제치며, ‘코뿔소’처럼 전진하는 카일러에 팬들은 벌떡 일어나 “헤일 머레이”를 부르짖었다.
그의 진가는 신체 능력에만 있지 않았다. 프로기사처럼 냉철한 판단력과 포커 플레이어처럼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략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그에게 팬들은 ‘쿼터백 천재’라는 찬사로 화답했다.
●2028 LA 올림픽, 태극 마크를 달고 금빛 질주 꿈꾼다
2028 LA 올림픽에 채택되는 새로운 정식 종목 중 플래그풋볼이 생소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플래그풋볼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카일러 머레이의 국가대표 도전 의지가 주목받고 있다. 플래그풋볼은 ‘깃발 뺏기’ 놀이처럼 흥미진진하면서 전략적인 플레이가 요구되는 스포츠이다.
카일러는 놀랍게도 “한국 대표팀으로 출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며 국내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그의 폭발적인 스피드와 민첩성, 뛰어난 전략적 사고, 무엇보다 NFL 슈퍼스타로 활약하며 몸에 새겨온 경험은 플래그풋볼에서도 빛을 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카일러의 국가대표 도전은 한국 플래그풋볼의 저변 확대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했던 박지성이 국내 축구팬들에게 유럽 리그의 재미와 관심의 폭발을 일으켰듯, 카일러가 대한민국 국대 유니폼을 입는다면 국내에 플래그풋볼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젊은 세대의 참여를 유도할 것이다.
●“한국, 이제 만나러 갑니다!”
카일러 머레이는 내년 3월,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한국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들었다. 이제 경험과 체험의 시간이다. 광화문부터 압구정 골목골목까지 구석구석 다녀보고, 북촌 한옥마을에서 전통문화를 체험하며, 명동에서 쇼핑도 즐겨보고 싶다.
방한을 앞둔 카일리가 작지만, 의미는 결코 작지 않은 목표를 세워놓고 매일 실천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왔다. 어머니 미선씨는 “카일러가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하루에 한두 단어씩이라도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다. 카일러는 하루빨리 기본적인 한국어를 익혀 한국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카일러 머레이는 이제 ‘NFL 스타’를 넘어 NFL의 간판’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사회 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스포츠 브랜드 모델, 광고 출연 등 마케팅 활용 사례를 통해 NFL의 세계화와 아시아 시장 진출에 기여하고 있다. 전 세계를 통틀어 NFL이 닿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카일러 머레이’의 이름이 들린다.
이제 볼을 움켜쥔 그의 시선은 2028 LA 올림픽을 향해 있다. 그는 수십 여 명의 NFL 스타 중 한 명이 아니라 미국과 한국의 스포츠, 문화를 연결하는 ‘유일한’ NFL 스타다.
카일러 머레이의 금빛 도전은 이제 출발선에서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2028 LA 올림픽. 그날이 오면, 전 세계의 풋볼 팬들이 일제히 “헤일 머레이”와 함께 “헤일 코리아”를 외치게 될 것이다.
“한국 팬 여러분,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8 LA 올림픽에서 멋진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곧 한국에서 만나요!”
▲카일러 머레이는….?
· 1997년 8월 미 텍사스 주 베드포드 출생
· 텍사스 주 앨런 고교팀 3년 연속 주 챔피언십 달성 및 선발 쿼터백으로 42승 무패 기록
· 2018년 미국 최고 대학풋볼선수상(하이즈먼 트로피)
· MLB와 NFL 드래프트 모두 1라운드에 지명된 최초의 선수로 기록
· 2019년 NFL 데뷔 시즌 ‘올해의 공격 신인상’
· 2020, 2021년 프로 볼 선정
· 2022년 카디널스와 5년간 2억 3050만 달러 연장 계약 체결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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