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
“내가 화를 내는 건 너를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이야.”
“이렇게 예민한 거 보니, 네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거 아니야?”
이런 말 혹시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우리는 연애를 하며 폭력적인 행동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사랑의 표현’이나 ‘질투’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사랑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상대의 폭력적 행동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이 정도면 사랑이니까 괜찮지 않아?’ 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습니다.
이번 파트에서는 왜 이런 ‘사랑이니까…’라는 착각이 생기는지, 그리고 그 착각의 결과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현실적인 사례를 통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1) 폭력적 행동이 ‘사랑’으로 포장되는 이유
1-1. 뒤틀린 애정 표현
일부 연인들은 ‘내가 이만큼 널 생각하니까’, ‘널 지키기 위해서야’ 같은 표현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줍니다.
예를 들어, “그 옷 입지 마. 다른 남자(혹은 여자) 시선 때문에 신경 쓰여서 그래. 널 아끼니까 그렇지.”라는 말이 들리죠. 처음엔 “오, 나를 많이 신경 써 주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관심이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방의 옷차림, 만나는 사람, 행동까지 전부 통제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면 이는 분명 폭력입니다.
1-2. ‘진짜 사랑이면 이 정도는 받아줄 수 있어’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상대에게 맞추고 싶은 마음, 더 잘해 주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문제는 이러한 마음이 끊임없이 ‘양보’를 강요당하는 관계로 이어질 때예요.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당연히 이 정도 요구는 들어줄 수 있지 않아?”라고 요구한다면, 우리는 죄책감을 느끼며 요구 사항을 받아들입니다.
예컨데, “평소에 친구들 너무 자주 만나지 마. 사랑하면 시간을 나한테만 쓰는 게 맞잖아.” 이렇게 말하면 순간적으로 “그래, 내가 좀 자주 만나긴 했나?”라며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그 이면에는 상대가 나를 통제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기 쉽습니다.
1-3. 문화적·미디어적 영향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폭력적인 남성 주인공’이 여주인공을 강하게 붙잡고 “너는 내 여자야”라고 선언하는 장면이 멋있게 그려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폭력이지만, 작품 안에서는 “마초적이지만 매력적인 사랑”으로 보이죠. 이런 묘사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원래 사랑하면 좀 과감해지고, 질투도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결국 폭력적 행동을 제지하기보다, “네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 그래”라며 스스로 합리화합니다.
2) 왜 우리는 이런 착각에 빠지는가?
2-1. 애착이론으로 보는 ‘버림받기 두려움’
심리학에서 말하는 ‘애착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어릴 때 형성된 애착 스타일에 따라 성인이 되어 연인 관계를 맺는 방식이 달라진다고 해요.
예컨데, 불안정 애착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연인이 조금만 거리를 두거나 화를 내도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극심한 불안을 느낍니다. 그래서 작은 폭력에도 “이것마저도 나를 사랑하는 표현이겠지”라고 넘겨버리곤 하죠.
버림받기 싫은 마음이 먼저 앞서, 폭력을 폭력으로 인식하기보다 스스로를 탓하거나 상황을 왜곡하게 됩니다.
2-2. 자존감의 문제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해 줄 사람은 저 사람밖에 없을 거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쉽게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폭력적인 상대라도 날 사랑해 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야”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죠.
상대가 폭력적으로 굴면서도 간혹 보여주는 다정함이나 애착에 마음이 흔들려 “그래도 이 정도면 참을 만하다”라고 느끼기도 합니다.
2-3. 사회적 통념: ‘연애는 원래 고생하는 거야’
주변에서 “원래 연애는 힘들어. 다들 싸우면서 정들지” 같은 말을 하면, 우리는 ‘내가 좀 참으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싸움과 폭력은 엄연히 다른 문제입니다. 싸움은 의견의 충돌이지만, 폭력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행동이죠.
이렇게 사회적 통념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이 정도는 그냥 흔한 다툼’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3) 주변의 시선과 사회적 통념이 만드는 함정
3-1. “너희 둘 문제잖아”라는 방관
데이트 폭력 피해자가 도움을 청했을 때, 주변에서 종종 “그건 개인적인 문제야. 너희 둘이 해결해야지”라며 방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타인이 “너네 문제지, 내가 관여할 바 아니야”라고 하면 피해자는 더욱더 폭력적 관계 안에 고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데이트 폭력을 가벼운 연인 싸움쯤으로 여기는 인식 때문에, 피해자는 망설이다가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하고, 폭력이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죠.
3-2. 가해자가 ‘솔직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인식
“글쎄, 평소에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가해자는 회사나 학교에서는 친절하고 유머러스하며 평판이 좋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피해자가 주변에 도움을 청하면, 오히려 “설마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어. 네가 예민한 거 아니야?”라는 답변을 듣습니다.
그러면 피해자는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고, 결국 조용히 참아 넘겨버리죠. 하지만 가해자가 다정해 보일 때와 폭력을 행사할 때의 모습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4) 자주 보이는 흔한 사례와 결과
4-1. 사례 1: ‘남자친구가 너무 질투가 많아서 힘들어요’
어떤 여성 A씨는 남자친구가 자꾸 “누구 만나니?”, “집에는 언제 들어가?”, “사진 보내봐”와 같은 질문을 합니다. 처음엔 “날 좋아하니까 궁금해서 그렇구나”라고 이해했지만, 이제는 연락이 조금만 늦어도 거친 욕설이 돌아옵니다.
A씨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착각하면서도, 점점 주변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남자친구에게만 매달리게 됩니다. 결국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에서 A씨는 남자친구의 언어적 폭력과 감정적 학대를 더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4-2. 사례 2: ‘이건 다 널 위한 거야’
B씨는 애인이 자꾸 “너는 왜 그렇게 예민해?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너를 위한 거잖아”라고 합니다. B씨가 옷차림을 바꾸거나, 친구를 만나는 걸 줄이면 “이제야 좀 예뻐 보이네. 내 말 듣길 잘했지?”라고 칭찬해 줍니다.
그런데 B씨가 조금이라도 벗어나려 하면 “나를 배신하네? 널 위해줬는데?”라며 큰소리를 치고, 때론 물건을 부수기도 합니다. B씨는 “그 사람이 본질적으로 날 위한다”는 착각에 빠져 관계를 지속하는데, 어느새 감정의 기복이 극심해지면서 평소에도 위축된 상태가 됩니다.
4-3. 결과: 자기 상실과 고립
이런 식으로 폭력적 행동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면, 결국 피해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옷차림, 라이프스타일, 취미, 친구 관계 모두를 상대방 기준에 맞추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원했는지 잊어버리는 거죠. 더욱이 고립된 환경에서 회복할 기회를 잃어버려, 폭력적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 “사랑하니까”라는 말이 때론 달콤하고, 마음을 설레게 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말 뒤에 “그래서 네가 내 요구를 다 들어줘야 해”라는 폭력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라 지배와 통제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파트에서는 폭력적 행동이 어떻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고, 왜 우리가 그 착각에 빠지는지 다뤄 보았습니다. 다음 파트에서는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고, 조기 단계에서 폭력적 관계를 구분하는 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니, 이어지는 글도 함께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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