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의 첫 해외 생산 거점 마련 검토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의 관심이 뜨겁다. 해외 기업의 대규모 투자 유치를 원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게는 희소식이지만 공장 셧다운 사태를 겪은 현대제철 근로자 입장에서는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소식이다. 투자 홀대 논란으로 번진 노조와의 갈등과 미국 대규모 투자 검토 사이에서 서강현 사장이 어떤 카드를 먼저 집을지 관심이 모인다.
■ 관세 장벽 대비···첫 해외 생산 거점 검토중
10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미국 현지에 자동차 강판 제품 등을 생산하는 제철소 건설을 검토 중이다. 건설 계획을 확정하게 되면 현대제철은 첫 해외 생산 거점을 갖게 된다. 보릿고개를 넘는 업황에서 파격적인 투자가 추정되는 것은 대미 철강 ‘수출 쿼터제’와 관세 장벽에 대한 대비로 해석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보호무역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관세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며 무역적자와 일자리 파괴를 해소하기 위해 관세 장벽을 높이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앞서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은 작년 3월 주주총회에서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생산 거점도 검토하고 있다"며 해외 생산 가능성을 열어놨다. 서 사장은 ‘재무통’으로 취임 후 1년간 철강 업황 악화에도 부채비율을 낮추며 재무관리에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서강현 사장 취임 1년, 재무건전성 강화···투자 무리 없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제철의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부채비율은 75.8%로 지난해 80.7%에 비해 4.9%p 줄었다. 같은 기간 유동비율은 149.7%에서 156%까지 개선됐으며 차입금은 9조9776억원에서 8조5225억원으로 감소하는 등 재무건전성이 전반적으로 개선됐다.
수익성 회복이 더디고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크게 떨어졌지만 투자가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다. 대개 해외 대규모 투자의 경우 그룹 차원에서 나누어 진행되기 때문에 단독으로 투자금을 부담할 가능성은 없지만 현대제철의 2023년 말 연결 기준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2조4405억원으로 자체 자금 조달도 가능하다. 그룹 내 계열사들이 합작법인 형태로 투자를 진행하면 자금조달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투자 소식에 노사 간의 갈등 심화 가능성은 높아졌다. 현대제철 노사는 지난해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해를 넘겨서까지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시작된 임단협 교섭은 파행 끝에 이달 3일 재개됐다.
■ 재무 개선 이면에 투자 홀대 논란···땜질 처방이 부른 '최악의 살인기업'
서강현 사장의 재무안정성 개선 이면에 ‘투자 홀대’ 논란이 있다. 현대제철은 지난 11월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포항2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노조는 “지금은 투자가 필요한 시기”라며 크게 반발했다. 공장 폐쇄는 고용 문제와 직결 되기 때문이다. 노사는 협상 끝에 제강 부분을 축소 운영하는 형태로 고용을 유지키로 했다.
투자홀대가 부른 땜질처방은 중대재해 발생원인으로 지목됐다. 현대제철은 유독 중대재해가 잦아 노동계가 선정하는 ‘최악의 살인기업’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1월27일 이후 약 2년간 현대제철 소속 사업장에서 중대재해는 4건이다.
지난해 12월 당진공장 발생한 일산화탄소 중독 사망 사건에 대해 전국금속노조 현재제철지회와 노동·시민단체는 “비용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설비를 교체해야 하는 해당 이음관을 금속용 본드를 메우는 땜질처방이 사고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과정에서 생명과 안전을 소홀히 했다”고 주장한다.
현대제철은 8일 미국 제철소 건설 계획 보도와 관련한 해명공시를 내고 “지속가능한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결정된 사항은 없다”면서 구체적 사항이 결정되는 시점, 또는 1개월 내에 재공시하겠다고 밝혔다.
투자 검토가 단계에서 장기화되고 있는 노사 갈등은 새로운 쟁점이 될 수 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미국 현지 투자는 현재 검토 중인 단계”라며 “아직 시기와 규모, 생산방식 등 구체적인 투자 내용은 정해진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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