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섭 더봄] 안 보면 후회할 연극 ‘타인의 삶’ 감상법

[박종섭 더봄] 안 보면 후회할 연극 ‘타인의 삶’ 감상법

여성경제신문 2025-01-10 10:00:00 신고

연극 '타인의 삶' 출연 배우들 /박종섭
연극 '타인의 삶' 출연 배우들 /박종섭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면 그 영화는 어떨까? 재미가 훨씬 줄어든다. 그런데 영화를 먼저 보고 연극을 보는 것은 달랐다. 오히려 영화보다 더 재미있게 보았다. 그 연극이 현재 서울 LG아트센터 U⁺스테이지에서 공연하고 있는 <타인의 삶> 이다.

연극은 배우 손상규가 각색, 연출을 맡았고 지난해 11월 27일부터 올해 1월 19일까지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배우들 동작 하나하나가 눈앞에서 라이브로 진행되어 몰입도가 한층 더 크게 느껴진다.

무대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동독에서의 살벌한 감시와 감독 속에서 일어나는 일로 시작된다. 동·서독이 서로 갈라져 철의 장벽을 세우고 이념의 극한 대립 모습은 지금 우리 한반도 상황과 다르지 않다.

주인공인 동독 비밀경찰 비즐러(윤나무, 이동휘)는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동독 최고의 비밀경찰이다. 이들은 국가보위보 소속 <슈타지> 로 불리며 반체제 인사 감시, 탄압, 경비, 정보수집, 대외공격 등을 하는 조직이다. 비즐러는 이 조직의 하위조직으로 XX/7로 활동했다.

극작가 게오르그 드라이만(정승길, 이동휘)은 성실한 예술가로 자신이 속한 체제의 이념 안에서 최선의 작품을 도모하는 사람이다. 그의 연인인 크리스타-마리아 질란트(최희서)는 재능 있는 배우이지만 자신의 위치와 삶에 끊임없이 불안해해 브루노 햄프 장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드라이만과 크리스타 이 두 사람이 비즐러의 다음 감시 표적이 되어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드라이만과 크리스타가 사는 집에는 철저하게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었고 일거수일투족이 비즐라의 감시망에 들어갔다.

밤낮으로 두 사람의 생활을 감시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냉혈한 비즐러가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예술적 신념에 동화하며 점점 혼란에 빠지게 된다. 예술을 향한 그들의 순수한 사랑과 열정에 비즐러의 얼어붙은 옹벽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결국 야간 당직을 수행하며 함께 작전을 수행하던 우도(박성민)마저 따돌리고 보고 내용을 ‘아무 이상 없음’으로 조작하게 된다. 사회주의 이념에 틈이 생기며 인간 본연의 선(善)한 마음이 한 줄기 서광처럼 나타난다. 자칫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비즐러는 두 사람을 돕게 된다. 결국 드라이만이 집 마루 밑에 감추며 동베를린의 참혹한 실상을 알리려 작성한 타자기를 먼저 빼돌리게 된다.

이 타자기는 드라이만이 그 문서의 작성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결정적 증거로 슈타지 요원들이 들이닥쳐 압수하려던 증거물이었다. 두 사람을 감시한 책임자였던 비즐러는 결국 성과를 못 올린 책임을 지고 한직으로 쫓겨나게 된다. 체제와 적당한 타협을 하였더라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던 비즐러가 인간다운 삶을 택한 결과였다.

그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이 통일되었을 때 드라이만은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슈타지 조직의 XX/7 요원(비즐라)이었던 것을 알게 된다. 마침내 그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발간했다. 어느 날 우체국에서 허드렛일하며 일생을 보내고 있던 비즐러가 벽보에 붙은 그 책을 발견하게 된다. 비즐러는 서점에 들러 그 책 한 권을 사들었다. 책에는 작가 드라이만이 자신을 도와준 XX/7 요원에게 바친다는 글이 쓰여 있다.

“포장해 드릴까요?”라고 묻는 점원의 말에 비즐러는 책을 가슴에 끌어안으며 말한다.

“아니요! 이 책은 나를 위한 책입니다.”

비로소 한 인간이 찾은 인간다움에 대한 보상에 관객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울컥’하고 우러나오는 감동의 눈물을 제어하지 못한다.

연극의 특성상 모든 것을 한 무대 위에서 보여줘야 하기에 감시자와 피감시자가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장면이 더 극적인 효과를 내지 않았나 싶다. 감시자는 유령처럼 피감시자를 옆에서 지켜보며 긴장감을 준다.

이미 잘 알려진 주연급 연기자 이동휘, 김준한, 최서희 등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이 연극을 이끌어가는 데 일인다역을 소화하는 조연배우들의 역할과 연기력이 볼만하다.

배우 이호철은 비즐러의 상관 그루비츠 국장과 반체제 인사이자 드라이만 친구인 하우저를 연기한다. 배우 김정호는 문화부 장관인 햄프와 반체제 예술가 예르스카를 연기한다. 또 한 사람 배우 박성민은 비즐러와 함께 감시자 ‘라즐로 작전’을 수행하는 우도 레이에와 카알 발너, 에곤 슈발버의 역할을 맡아 열연한다.

이들이 바뀌는 장면마다 일인다역을 소화하며 활약하는 몸짓, 말투, 표정 연기가 활력을 주며 연극의 완성도를 더하게 한다.

'타인의 삶'은 책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연극으로 그 감동을 이어가는 화제작이다. /박종섭
'타인의 삶'은 책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연극으로 그 감동을 이어가는 화제작이다. /박종섭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영화나 연극의 감상법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고전 <춘향전> 을 감상할 때 주연인 이도령과 춘향에만 몰입하지 말라고 했다. 방자와 향단에게도 관심을 두고 관람할 때 훨씬 좋은 입체적 감상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우린 지나치게 스타에게만 치중하는 우(遇)를 범하는지 모른다. 요즘 대세인 트로트 가수 임영웅에게 열광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TV조선 미스터트롯에 나오기까지 그는 전국의 무대를 다니며 수없이 노래했지만, 무명 가수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연극에서도 일인다역을 하는 조연들은 주연보다 더 많은 대사를 하며 몸짓, 표정, 말투까지 바꿔가며 카멜레온처럼 열연한다. 이런 모습을 함께 감상할 때 그 연극은 더 넓고 깊게 다가올 것이다. 고 이건희 회장의 감상법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다.

이 연극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타인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요?” 오랜만에 감동 있는 좋은 연극 한 편을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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