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뜨는 트렌드 VS 지는 트렌드

2025 뜨는 트렌드 VS 지는 트렌드

코스모폴리탄 2025-01-10 00:00:02 신고

TOPIC ❶ | 텍스트힙

YES

잠깐, 텍스트힙의 존폐를 논하기 전에 ‘텍스트힙’이란 무엇인지 그 뜻부터 검색해봤다. 단어만 생소할 뿐 익숙하게 보아온 거다. 생각해보면 트렌드라는 건 그렇다. 듣도 보도 못 하던 것이 불쑥 튀어나오는 때도 있지만, 대체로 존재하던 것이 별안간 유난스러워지는 일 같다. 텍스트힙을 알고, 취하고 행해온 이들을 떠올려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랑스의 군인이자 황제였던 그는 늘 책을 끼고 다녔다고 알려져 있다. 말을 타고 가며 책을 읽었단 소문도 있고. 심지어 전쟁통에서는 책을 수레에 실어 끌고 다니면서 틈날 때마다 읽었다고 한다. 전철이나 버스에서 책 읽는 사람만 봐도 눈길이 꽂히는데 말 위에서 독서하는 장군이라니(힙하다!). 나폴레옹도 어느 정도는 ‘책 읽는 나’에 취해 있지 않았을까? “전쟁터에서도 책이 없으면 버틸 수 없는 나, 정말 멋져!” 하고 말이다. 영화 〈금발이 너무해〉의 주인공으로 얼굴을 알린 할리우드 배우 리즈 위더스푼 또한 한 시절 텍스트힙에 불을 지핀 인물 중 하나일 테다. 위더스푼은 인스타그램으로 자신이 읽은 책들을 소개해왔는데 이는 점차 인기를 얻어 비즈니스 ‘리즈의 북클럽’으로 발전했다. 여성이 서사의 주체로서 내러티브를 끌고 가는 작품들을 직접 선정해 소개하는 그는 일찍이 다독가로 알려져왔다. 할리우드 스타가 추천하는 책은 도서 시장에도 엄연한 영향력을 미쳤다.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20주 이상 연속으로 오르는 건 기본, 인쇄된 책 기준 평균 2만 권 정도가 판매된다는 소식에 나 또한 그가 소개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주문한 기억이 있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연일 절판이 이어지고 서점가는 문을 열기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선다는 뉴스를 보았다. 어린 시절 〈해리 포터〉 시리즈 신권이 나오는 날이면 서점에 일찌감치 가서 매대를 서성이곤 했는데, 그런 기억 이후로 이런 현상은 정말 오랜만이다. 멋지고 좋은 것. 사람들은 그런 것에 순수하게 동화된다. 책은 멋지다. 심지어 좋다. 책벌레 나폴레옹이, 여성 도서를 선정하는 위더스푼이, 노벨상을 수상한 한강이 책으로의 포문을 열어주었고 사람들은 그 안으로 가볍게 편승하여 텍스트힙이라는 걸 만들어냈다. 책은 독서 여부와는 별개로, 손에 쥐는 행위만으로도 고양감을 선사한다. 그러니까 방 한쪽에 책 기둥을 쌓아두곤 흡족해하는 거겠지. 감히 예견해본다. 종이책이 사양길이라고 했던가? 수십 년 전부터 떠돌던 괴소문이 실제가 되어 어느 날 종이책이 전부 사라지게 된대도 텍스트힙은 남아 있을 테다. 어떤 미래가 찾아온대도 텍스트힙은 폐(廢)하지도, 패(敗)하지도 않을 거라 본다. 책이 없어져도 누군가는 책 기둥으로 방을 지탱하고 있을 테니까.
― 이주연/산책방 (에디터, 기획·편집자)

YES

“독서는 멋져.” 언젠가부터 젊은 세대 사이에 불어오는 텍스트힙은 단순히 독서를 즐기는 애호의 의미 이상으로 특정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독서를 하는 사람은) 자기만의 세상이 있을 것만 같고, 명확한 취향을 지녔을 것만 같고, 진중한 멋을 지닌 것만 같은. 지금까지 텍스트힙이 이미지로서 기능했다면 2025년부터는 실질적 독서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먼저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점으로 독서를 향한 전 세대의 호기심과 관심도가 높아졌다. 갑작스러운 서점 오픈런이라니. 생소하고도 반가운 풍경이었다. 한강 작가의 열풍은 며칠간의 짧은 호응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가 노벨 문학상 수상 자리에 선 모습이 TV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고, 인터뷰와 강연 자리에서 한 말들이 온라인 구석구석으로 널리, 오래 퍼졌다. 이제 문학과 독서는 고고한 명예까지 얻었다. 2025년에도 텍스트힙의 열기는 뭉근하게 지속될 것이다. 특히 MBC가 웹 예능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를 부활시킬 거라는 소식을 전하면서 대중은 더 넓게, 더 실질적으로 책과 가까워질 예정이다.
― 이자연(〈씨네21〉기자,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TOPIC ❷ | 숏폼

MAYBE

옥스퍼드대 영어 사전을 출판하는 옥스퍼드 편집부가 2024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brain rot)’을 선정했다. 편집부에 따른 사전적 정의는 ‘사소하고 의미 없는 자료, 특히 최근에는 온라인 콘텐츠를 과잉 소비하면서 개인의 정신 또는 지적 상태가 악화되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정신을 보다 더 맑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인터넷에 덜 접속하라는 요구는 이제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느껴진다. 동시대의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중 아무도 그런 경험을 성공적으로 해낸 적이 없으면서 서로에게 공허한 희망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디지털 디톡스 전격 도입 또는 스마트폰을 꺼두고 진짜 책 한 권 읽는 시간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례를 모은 것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데에 더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온라인 세상에 접속해 있는 와중에 뇌의 신선도가 걱정된다면, 계속해서 귀여운 동물 영상, 가장 빛나는 순간을 응집한 아이돌의 킬링 파트 숏츠, 얼마 전 릴스 만들기에 도전한 내 지인의 다소 매가리 없는 내레이션이 곁들여진 릴스를 보시길. 그것은 언제나 롱폼으로 된 가짜 뉴스 한 편을 읽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 서해인 (〈콘텐츠 로그〉 발행인)

YES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새로운 스테이지가 시작된다는 짜릿함 때문에 숏폼 콘텐츠는 늘 슈팅 게임에 비유된다. 숏폼의 인기는 단순히 짧은 시간 안에 높은 자극을 추구한다는 형식적 특성에만 있지는 않다. 1~ 2초 사이에 영상을 즉각적으로 수용 또는 거부할 수 있다는 선택의 오락성. 사람들은 이 놀이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할 뿐만 아니라, 내가 정보를 선택해서 수용하고 있다는 감각 또한 얻는다. 영상의 내용이 아닌 행위 자체에 대한 몰입인 셈이다. 그래서 숏폼을 한때 유행하고 사라질 단순한 비디오 포맷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숏폼의 재생 방식이 지닌 이러한 중독성은 상호작용보다 노출되는 것이 더 중요한 ‘광고’에 가장 적합한 형태다. 지금도 숏폼에서 광고 영상을 크리에이터 콘텐츠와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기업은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이 매체를 더욱 전략적으로 이용할 것이고, 시청자들은 자신이 소비자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중독을 쉽게 끊지 못할 것이다. 결국 숏폼 콘텐츠의 미래는 그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의 적극적인 저항에 달려 있다. 과연 우리는 숏폼이 만드는 허무한 쾌감과 달콤한 자극을 멀리할 수 있을까? 만약 숏폼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함께 논의해야 한다면, 그 논의의 대상은 사회가 부추기는 자극, 중독, 소비 전반에 관한 것으로 확대돼야 할 것이다.
― 복길(자유 기고가)

TOPIC ❸ | 갓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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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하고 복학했을 때 신입생 후배들의 일과에 놀란 적 있다. 내가 신입생일 때와 달리 후배들은 하루하루를 정말 열심히 살았다. A+ 학점을 챙기는 건 기본이고, 동아리 2개에 대외 활동까지 꽉 찬 나날을 보냈다. 물론 알바도 뛰며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했다. 2014년의 일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지난 직장에서는 팀장 역할을 했다. 1년에 한 번은 인턴 에디터를 채용하기 위해 이력서를 검토했다. 지원자들의 이력은 짱짱했다. 학교에 다니며 쌓은 경험에 더해 인턴 경력 두세 곳을 거치며 ‘경력직’ 인턴이 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런 지원자 중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최종 면접 대상자로 추렸다. 10년 전 후배들이나 2020년대 사회 초년생만의 일은 아니다. 30대 중반인 지금, 친구들을 만나면 열에 아홉과는 정신 건강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자주 보든 오랜만에 만나든 상관없다. 번아웃 치료 경험을 나누고, 퇴사하고 몇 달을 쉬었다는 이야기에 “나도 나도” 하며 말을 보태기 바쁘다. 퇴근 후 전화 영어를 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눈다. 갓생은 불안을 먹고 자란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나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운 경제 상황을 거치며 기업은 채용을 줄였고, 신입이든 경력이든 ‘확실한’ 사람만을 뽑으려는 현상이 불안의 근간이 됐다. 이런 현상은 젊은 층 개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우므로, 해결책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부지런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삶을 살도록 일과를 세팅한다. 같은 현상을 대체하는 다른 말이 생기더라도 갓생 트렌드는 계속될 것이다. 20대에는 갓생을, 30대에는 번아웃을 겪는 삶의 패턴도 자리 잡을 것 같다. 비상계엄령 사태 여파로 경제가 더 어려워질 거라는데, 갓생이 계속된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하는 입이 쓰다.
― 최창근(영상 처리 인공지능 스타트업 ‘메이아이’ 콘텐츠 에디터, 전 ‘뉴닉’ 콘텐츠 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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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생 키워드는 2025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갓생의 의미는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갓생이 생산성, 효율성, 근면 성실함을 지향하는 생활 방식을 의미했다면 앞으로는 일상 유지, 정서적 안정성, 자기 돌봄에 포커스를 맞출 듯하다. 과도한 경쟁 사회와 오랜 경기 불황은 전반적으로 은은한 우울감을 지속시켰다. 그리고 그 불안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령 선포로 극에 달했다. 분 단위로 쏟아지는 ‘속보’에 사람들은 업무와 학업 등 본래 일상을 채운 의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온라인에서는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의 드론 사격 장면이 비현실적으로 전파되고,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각종 혐오와 오해를 뒤섞은 성별·세대별 갈등이 쏟아진다. 2025년에도 부지런함과 성실함의 가치는 이어지겠지만 그 방향은 자신의 정서적 안정성을 회복시키고 싶은 마음을 중심으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그런 양태는 충분히 보여지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덕질 발표회’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고, 별거 아닌 이유로 기념일을 만들어 홈 파티를 열거나, 혁명을 소망하는 집회에서 응원봉을 가지고 오는 어린 세대의 모습이 그렇다. 나아가 안정의 정의도 타인이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될 것이다. 특히 자기 주도적 결정이 중요한 Z세대는 남들에겐 사소해 보일지라도 내 눈에 아늑하고 선한 것이라면 과감하게 선택한다. 100인 100색에서 1인 100색으로 나노화된 취향 트렌드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 이자연(〈씨네21〉 기자,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TOPIC ❹ | MBTI

MAYBE

MBTI의 등장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16개 유형만으로 모든 인간을 단번에 파악하고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라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니, 별자리와 혈액형으로 서로를 알아가던 그 시절의 풍습이 우스워지는 순간이었다.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인 카를 융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고안한 이 성격 유형 검사를 두고 사람들은 과학이라 추앙했고 MBTI는 어딜 가든 이름, 나이 뒤에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기본 정보값이 됐다. 업무 미팅을 하든 소개팅을 하든, 면접을 보든 모든 TPO를 가볍게 무시하는 게 바로 MBTI라는 말이다. 물론 내게도 MBTI에 완전히 빠져든 때가 있었다. 기본 MBTI 검사부터 시작해 MBTI를 기반으로 한 각종 심리 테스트를 발견할 때마다 친구와 동료들이 모여 있는 카톡방 여기저기에 퍼 나르고 서로의 결과값을 공유하며 감탄하기 바빴다. 사찰이라도 한 듯 어쩜 내 성격을 그대로 써놨을 수 있냐며, 어쩌면 MBTI는 이 시대 최고의 발견일지도 모른다는 진심 섞인 농담도 주고받았다. 웬만한 테스트를 다 섭렵했을 즈음 MBTI는 더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이론도, 도파민 솟게 하는 놀잇감도 아니게 된 것 같았다. 되레 ‘T’와 ‘F’의 성향 차이를 희화화해 그들의 간극을 더 넓히는 것은 아닌지, 어떻게 60억 명의 인간을 단 16개 종류로 구분할 수 있겠냐며 섣부른 일반화를 부른다는 의견도 생겼다. 한술 더 떠 스스로 MBTI에 정의되지 않겠다 선언하며 테스트도 하지 않고, 공개하지도 않는 이들이 힙해 보인다는 선망의 시선을 받기도 한다. 그 틈을 비집고 ‘과민한 사람 테스트(HSP)’라는 새로운 유형 검사까지 나타났다. 모든 것이 빠르게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대한민국에서 MBTI의 시대는 이렇게 막을 내리나 싶었지만, 흥미롭게도 MBTI는 여전히 우리 도처에 있다. MBTI 성향에 맞는 채용관이 열리는가 하면 성격을 취향과 연결하는 타깃형 마케팅의 수단으로 MBTI는 아주 그럴싸한 명분으로 쓰인다. 내 MBTI에 맞는 향수, 디저트, 여행, 심지어는 보험과 체성분 유형까지, 이 세계는 변주의 변주를 거듭하고 있고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소위 말해 MBTI는 아직 먹힌다는 뜻이기도 하다. MBTI는 장수할 수 있을까? 그건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신선도가 떨어진 상품은 그만큼 상품 가치가 떨어진 것 아니겠는가. 2024년과 2025년의 길목에서, MBTI는 그저 얼마간의 수명을 연명했을 뿐이다.
― 천일홍( 〈코스모폴리탄〉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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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 전문가에게 MBTI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수 시간째 어마어마하게 많은 항목에 답하면서 끝이 없는 길을 걷고 있다는 막막함을 느낀 기억이 난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항목당 하나의 답만 선택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었다.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 이 모습도 ‘나’이면서 저런 모습도 ‘나’인 바람에 선택에 꽤 애를 먹었다. 긴 시간이 흘러 받아 든 검사지에는 난생처음 보는 알파벳 조합이 적혀 있었다. 새로웠다. 돌아보면 그땐 누구도 내게 MBTI가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트렌드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최근 몇 년간 온라인으로 간단하게 검사가 가능해지면서 MBTI로 대화의 포문을 여는 사람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한참 휘몰아치던 초창기엔 MBTI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부담스러웠다. 내가 궁금해서 MBTI를 묻기보단 MBTI를 더 잘 알고 싶어서 피험자 삼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인간에게는 타인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는 것 같다. 한때 혈액형으로 사람 성격 유형을 나누던 것도 비슷한 욕구였으리라. 혈액형 때만 돌아봐도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사람도 많았고, 맹신하듯 추켜세우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의 MBTI가 그런 것처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좀 더 체계적이고 흥미로운 도구가 나타난다면 MBTI도 혈액형처럼 시간의 뒤안길로 넘어갈 것이다. 체계적인 성격 유형 검사가 지금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MBTI가 살아 있는 건 사람을 제법 적당한 개수의 범주로 일반화할 수 있고, 꽤 직관적이라는 특성 때문일 거다. 인간 군상을 16개로 구분하는 건 혈액형 4개로 일반화하는 것보다는 체계적으로 보이고, 개개인의 성격을 서술형으로 묘사하는 구체적인 검사 결과보다는 훨씬 그럴싸하니까. 어쩌면 숏츠가 유행하는 맥락과도 비슷할지 모르겠다. 사사건건 겪어가며 인간을 이해하는 것보단 MBTI 네 글자로 요약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니까. 그래도 난 “MBTI가 뭐예요?”라는 질문보다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이 훨씬 좋다. 취미를 이야기하다 보면 같이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좋아하는 음악이나 책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지만, MBTI는 절대적인 검사값으로 타인의 성격을 고정해버리는 면이 없지 않으니까. 취미는 밥을 먹여줄 수 있지만, MBTI는 밥을 먹여줄 수 없다.
― 이주연/산책방 (에디터, 기획·편집자)

TOPIC ❺ | 요리 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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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남을 것이다. 2019년 〈냉장고를 부탁해〉의 종영 이후 스타 셰프들의 예능 출연은 다소 잠잠해졌지만, ‘요리 예능’이라는 불씨만큼은 백종원의 인기와 영향력에 의해 보존돼왔다. 그리고 2024년 그 불씨는 누구도 흥행을 예측할 수 없었던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으로 인해 활활 타올랐다. 아주 오랜만에 전 국민을 열광케 한 예능의 등장이었다. 검은 안대를 착용한 채 오직 맛으로만 요리를 평가하겠다는 그 이상한 고집은 결국 다른 분야 서바이벌 예능과의 차이를 만들었고, 흑과 백으로 나눠진 계급적 도식은 ‘미각’이라는 절대적인 평가 기준으로 무너지면서 새로운 스타들의 얼굴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흑백요리사〉의 뜨거운 인기가 만든 갈증은 10년 전 종영한 〈마스터셰프 코리아〉와 〈한식대첩〉 같은 명작 요리 예능들을 소환했다. 그리고 이러한 열기를 포착한 〈흑백요리사〉의 제작사 JTBC는 〈냉장고를 부탁해〉를 부활시켰고, 심사위원이었던 백종원은 〈흑백요리사〉 출연 셰프들과 함께 〈백종원의 레미제라블〉이라는 새 요리 리얼리티를 론칭했다. 요리 예능은 시청자에게 그 맛이 직접적으로 전해지지 않기에 반드시 평가의 시선이 개입한다. 전문가들의 솔루션 예능에 익숙한 지금 한국 대중은 그 시선 위에 자신들만의 해석을 얹고 그것을 공유하며 논쟁하는 것을 즐긴다. 저마다의 혹독한 수련을 거친 요리사들이 자신의 서사를 요리에 담아내면, 시청자들은 기술이면서 예술이면서 동시에 그저 끼니일 뿐인 요리를 다양하게 해석하며 즐거움을 얻는다. 2025년 방영이 예정된 〈흑백요리사 시즌2〉가 지금의 화제성과 그에 따른 비판을 잘 흡수한다면 한동안 요리 예능은 순항하지 않을까?
― 복길(자유 기고가)

YES

한때는 ‘냉털’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프로 자취로서의 바로미터가 됐다. 시든 재료를 버릴 때만큼 가구주로서 초심이 초라해지는 순간은 없으므로. 냉털이 우리 모두의 숙제처럼 느껴졌던 시기에는 뭐가 들어 있을지 모를 게스트의 육중한 냉장고 속 재료들이 셰프들에게 토스돼 약 15분 만에 먹을 만한 한 상으로 탈바꿈되는 걸 보는 쾌감이 있었다. 그사이 우리는 다종 분화된 밀키트와 신속한 배달 음식이 가져다주는 편의에 녹아들었으나, 지난 12월 〈냉장고를 부탁해 since 2014〉가 돌연 부활한 건 팔 할이 〈흑백요리사〉가 쏘아 올린 요리 예능 붐 덕분이다. 오로지 미각에만 집중하게끔 하는 ‘안대 심사’는 비주얼적으로는 기묘했지만 적어도 이 경연이 공정하게 진행된다는 믿음을 안겨주었다. 탄단지가 고루 균형을 이루는 식단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이들은 두부 요리가 27종이나 펼쳐지는 마지막 미션을 보며 혀를 내두르게 됐다. 이 프로그램의 교훈은 다름 아닌 “단백질 섭취는 중요합니다”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스터셰프 코리아〉 〈한식대첩〉 〈흑백요리사〉까지 이어진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조리 후 깔끔한 뒤처리로 위생적인 주방을 자랑하던 참가자들의 인성과 사생활 논란은 순식간에 도마 위에 올랐다. 그들이 완벽한 한 그릇을 내어놓기 전까지 중간중간 얼마나 자신의 도마를 깔끔하게 세척하는가와는 무관하다는 듯 그런 일들이 자꾸만 벌어져왔던 것이다. 결국 요리도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우리는 여전히 빈 그릇에 ‘무엇’이 담길지보다는 ‘누가’ 주방에서 물과 불을 쓰는지가 더 궁금하다. 약간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은 채로 요리 예능을 지켜보는 이유다.
― 서해인( 〈콘텐츠 로그〉 발행인)

TOPIC ❻ | 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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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는 한때 유행하는 트렌드가 아니다. 기술의 연장선이다. 이 기술의 기반은 대규모 데이터가 네트워크로 연결된다는 기술이다. 그게 클라우드와 빅데이터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한 게 2010년대다. AI로 대표되는 ‘LLM’은 네트워크로 모을 수 있는 빅데이터의 활용 방안 중 하나다. 그것이 검색-결과 표시로 요약되는 챗봇형 AI로 만들어진다. 그 시장에는 ‘매그니피센트 7’로 묶이는 대형 회사 7개가 있다. 오픈 AI는 그 회사 중 하나이며, 챗GPT는 그 회사의 서비스 중 하나다. 챗GPT가 주춤할 수는 있다. 투자 회수가 어렵다. 지금 AI 시장에 투입된 투자 금액은 약 600조원이라 추정된다. 반면 오픈 AI의 2023년 매출은 아직 4조 6000억원 수준이다. 손해다. 그런데도 더 좋은 제품을 위해서는 계속 투자해야 한다. 기약 없이. “AI 시장에 거품이 껴 있어요. 장기적으로는 이 기술이 세상을 바꿀 거라 생각하지만 한 번은 거품이 꺼질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시소 CTO이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이동근은 현 상황을 이렇게 요약했다. 챗GPT의 미래에 대해 해야 할 질문은 “이게 트렌드냐”를 넘어선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지금 이미 AI에 넣을 수 있는 데이터는 다 넣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데이터를 활용해 AI 혹은 오퍼레이터인 인간이 얼마나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챗GPT가 아무리 대세가 돼도 인간의 어떤 영역은 여전할 것 같다. 포토샵이 발전한다고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값이 떨어지지는 않고, 챗GPT가 아무리 점쟁이 같다 해도 신점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AI라는 게 생기기 시작할 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본능을 모으면 지능이 되지만, 지능을 모은다고 본능이 되는 건 아니다.”
― 박찬용(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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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에서 유저 인터뷰를 할 때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우리 서비스가 없어지면 얼마나 불편할 것 같나요?” 이때 상상하기도 싫다는 식의 답변이 나오면 ‘큰 혁신을 만들겠구나’로 해석할 수 있다.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는 이미 혁신을 시작했고, 챗GPT는 출시 약 2년 만에 대중화됐다고 평가받는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우리 생활에 뿌리내릴지가 더 중요해졌다. 3가지 측면에서 짚어보자. 첫 번째 상황, ‘GPT-4o’의 등장이다. GPT-4o는 영화 〈그녀〉의 ‘사만다’가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았다. 텍스트로만 대화가 가능했던 초기 모델과 달리, 음성과 영상까지 결합해 영상 통화하듯 활용 가능해진 것이다. ‘멀티모달 AI’라고 부르는 이 기술은 사용자가 챗GPT에 타이핑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주었다. 출력 속도도 실시간에 가까운 수준으로 개선됐다. 두 번째 상황, 여러 검색형 AI와의 경쟁 체제. 요즘 대세는 ‘퍼플렉시티’다. 최신 정보를 답변할 수 있고, 출처를 정확히 표기하는 것이 강점이다. 챗GPT와 차별점이 생기는 부분이다. 국내에서 퍼플렉시티를 이용하는 사람은 2024년 3월 3425명이었지만, 11월에 29만 명(스마트폰 접속 기준)을 돌파하며 무서운 성장세를 보였다. 챗GPT의 단점을 파고들어 이용자를 잡은 것이다. 세 번째 상황, ‘온디바이스 AI’의 상용화다. 2024년 초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에 AI를 탑재한 갤럭시 S24를 공개했다. 인터넷 연결 없이도 스마트폰 기기 내에서 실시간 번역 같은 기능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애플도 음성비서 시리에 GPT-4o를 통합하며 추격 중이다. 온디바이스 AI의 등장은 나만의 AI의 시대, AI의 일상생활을 기대하게 한다. 타이핑, 최신 정보, 인터넷 연결. 챗GPT 트렌드는 혁신을 거듭하며 계속될 것이다.
― 최창근(영상 처리 인공지능 스타트업 ‘메이아이’ 콘텐츠 에디터, 전 ‘뉴닉’ 콘텐츠 리드)

TOPIC ❼ | 레트로

YES

지금 우리 곁의 모든 것은 미래에 레트로가 될 것이다. 지금의 레트로는 어젠가의 최신 문물이다. 문명 자체가 수많은 레트로를 만들어내는 기계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약 15년쯤 후의 레트로가 누군가의 최신 상품으로 출시돼 있을 것이다. 레트로는 앞으로 더더욱 성행할 것이다. 클라우드 기술 덕이다. 레트로와 최신 기술은 상극 같지만 사실은 반대다. 레트로는 기술을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인간은 이제 온갖 이미지를 검색할 수 있다. 온갖 중고품과 그것의 수리 부품도 전자상거래로 손쉽게 살 수 있다. 그 결과 홍콩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1990년대 홍콩의 이미지만 보고 홍콩풍 식당을 만들어 성공한다. 이런 레트로가 버젓이 생겨나는 게 21세기 서울이다. 레트로는 심리적으로도 성행할 것이다. 밝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 사라졌으니까. 사람은 지금 내 손에 없는 가상의 뭔가를 꿈꾸며 살아간다. 21세기 초까지는 미래의 희망이 있었다. 열심히 살아서 뭔가를 해결하면 삶은 나아지고 세상은 좋아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제 그런 기대는 여러 변수와 함께 점점 사라져간다. 그러니 사람들은 돌아볼 수밖에 없다. 레트로는 연차만 바꿔가며 계속될 것이다. 1990년대와 00년대 레트로를 지나 2010년대도 레트로의 대상이 될 것이다. 모두 하염없이 지난날을 바라볼 것이다.
― 박찬용(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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