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원료약 중국 의존 심화 '아킬레스건'

③ 원료약 중국 의존 심화 '아킬레스건'

뉴스웨이 2025-01-09 06: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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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찬희 기자

2025년 1월 20일(현지시간) 미국 47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시대가 열린다. 트럼프의 더 강력해진 '아메라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에 맞춰 글로벌 산업계도 생존 전략을 마련하는 모습이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또한 트럼프 공약에 맞춰 대미 정책을 변경하고 있다. 트럼트 2기 시대를 앞두고 약가 인하·대중국 필수 수입품 금지 등에 따른 기대감과 강력한 관세정책, 공보험 분야 축소 등의 불안감이 공존하고 있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현실과 과제 등을 4회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 주]


한국바이오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사용되는 원료의약품(API)의 80% 이상이 인도와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보고서는 미국 약전위원회(USP)의 원료의약품 최신 등록 자료(DMF)를 분석했다. DMF는 인체 의약품의 제조, 가공, 포장 및 보관에 사용되는 시설, 프로세스 또는 물품에 대한 기밀 세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API 제조업체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하는 API에 대한 정보가 포함된 문서다. 이번에 발표된 USP 의약품 공급 지도는 2021년에 실시한 API DMF 분석에 대한 업데이트로서 이 분석의 기초인 활성 API DMF 보유자의 위치 중 92%를 매핑했다.

자료를 살펴보면 인도와 중국은 미국 내 원료 의약품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인도의 원료의약품 공급망 등록량은 2000년 미국 전체의 19%에서 2021년 62%로 늘었고, 2023년에는 50% 수준으로 눈에 띄게 감소했다. 중국의 원료의약품 등록 건수는 2000년 5%에서 2023년 32%로 늘었다. 특히 2021년 기준 중국은 134건의 API DMF를 제출했는데 2023년 219건으로 늘며 2년 만에 63%라는 증가율을 보여줬다.

중국과 인도의 원료의약품 공급이 크게 늘면서 같은 기간 유럽과 미국산 점유율은 급락했다. 유럽산 점유율은 2000년 42%에서 2021년 7%로 떨어졌으며 2023년 기준 10% 수준이었다. 미국산 원료의약품 점유율은 2023년 기준 4%에 그쳤다.

이처럼 원료의약품 생산이 인도와 중국에 집중되며 미국 정치권에서는 공급망 다각화를 위한 정책이 초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트럼프도 재선 공약집인 어젠다(Agenda) 47에서 필수 의약품(Critical Drug) 생산의 자국화와 부족 문제 해결을 주요 정책으로 꼽았다.

트럼프는 관세와 수입 제한을 통해 모든 필수의약품의 생산을 미국에서 이뤄지게 하겠다는 주장을 밝혔다. 이는 지난 23년 3월 바이든 정부에서 발표된 이니셔티브에서도 포함된 내용이다. 당시 바이든 행정부는 바이오 산업의 자국 내 생산을 골자로 한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를 발효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API, 항생제, 필수의약품 생산에 필요한 산업 관련 주요 출발물질에 대한 바이오 제조 역할 확대 등을 위해 4000만달러(약 560억원)를 투자했다

바이든 정부의 이니셔티브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제안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트럼프는 행정 명령(Executive Order)의 형태로 관세와 수입 제한을 통한 강제성을 부여하려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 바이든의 이니셔티브가 5년 내에 25%를 미국에서 생산하게 하겠다고 목표한 것에 비해, 트럼프 어젠다 47에서는 모든 필수의약품을 그 대상으로 한다. 트럼프는 공약집에 필수 상품의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을 모두 폐지하기 위한 4년 계획을 도입할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해당 필수 상품에 의약품이 포함되어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미국이 단기적으로는 중국과 인도산 원료의약품에 관세를 높이는 식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미국 내 원료의약품 생산 시설 구축을 시작한다 해도 미국산 원료의약품 생산량이 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제약사의 미국향 수출 품목에 대한 관세 가능성도 낮다.

서근희 삼성증권 비상장솔루션팀 수석연구위원은 "한국 기업이 수출하는 대부분의 의약품은 필수의약품에 속하지 않아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GC녹십자의 면역글로불린 제제 '알리글로'는 면역글로불린이 필수의약품 목록에 등재되어있는 만큼 원래는 관세 대상이지만, 미국은 평상시에도 면역글로불린 공급 부족이며,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도 약가인하 대상에서 제외된 품목인만큼 관세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원료의약품은 의약품을 제조하기 위한 기본 성분으로, 의약품의 주성분(유효성분)을 포함해 최종 완제품 의약품을 생산하기 위한 물질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의약품의 효능과 효과를 결정짓는 활성물질(API)을 원료의약품이라 부른다.

원료의약품은 규모의 경제에 따라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단위당 비용이 감소하는 특성이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 대규모 생산 설비를 갖춘 제조사가 유리하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낮은 제조 원가를 유지하는 것이 핵심인데, 여기에는 노동 비용 등이 포함되어 있어 인건비가 낮은 중국과 인도가 '세계의 약국'이라 불릴 정도로 성장한 바탕이 됐다.

또 유럽, 미국, 일본 등 고부가가치 시장 진입을 위해서는 생산 시설에 대한 품질 인증이 필요하다. 각국의 GMP 인증과 규제 준수 비용 등이 중국과 인도 외의 후발 주자 진입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장 장악을 위한 중국과 인도 정부의 정책적 지원(세제 혜택, R&D 보조금 등) 역시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에 원료의약품은 글로벌 공급망(GVC)을 바탕으로 국가 간 협업과 분업화 체계로 수요와 공급이 조절됐으나 이러한 협업 체계가 미·중 무역 갈등으로 와해되기 시작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 러·우전쟁, 중동분쟁이 이어지면서 세계 각국이 의약품 수급 불안정에 빠졌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초기 인도와 중국이 일부 원료의약품 수출을 제한하며 완제 의약품 생산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아세트아미노펜 등 해열진통제 성분 원료 공급 국가가 의약품 수출을 금지하면서 의약품 공급 대란이 발생하는 일이 벌어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도는 2008년 21.7%에서 등락을 반복하다 2022년에는 11.9%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다음 해인 2023년에는 원료의약품 자급도가 25.4%로 회복됐으나, 수출 원료의약품을 제외하고 실제 국내에서 사용되는 원료의약품 중 수입 제품의 비중은 74.4%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국내 제약사 역시 원료의약품 시장에 도전하고 있으나 가격 측면에서 인도·중국 기업과 경쟁이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원료자급도 하락 추세를 우려하며 국산 원료의약품 지원 정책을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원료의약품 제조업체는 생산비용 증가에 따른 경영악화로 원료의약품 자급도는 장기적으로 하락세로 전망된다"면서 "원료의약품 자급화 비율을 높이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수출과 연계하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지원책과 이를 바탕으로 기업의 미래 활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윤지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최근 발표된 정부 지원 방안(약가 우대 정책, 원료의약품 개발·생산 세제지원 확대)에 대한 업계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며 시행 시 실질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면서도 "관련 정부 대책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으나, 제조 인프라의 현대화 및 친환경 전환 등 원료 생산 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정책도 추가로 마련되어야 한다. 인도 PLI 제도와 같이 일정 기간의 매출증가분에 대해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의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순규·이주희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연구원은 "현재 한국은 의약품 공급망에서 중국의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과제를 가지고 있으나, 완전히 중국 경제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비용면에서 불가능하므로 중국과 무역을 유지하면서 민감한 제품에 대해서 파트너를 다변화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해외 의존도가 높은 특정 의약품에 대한 선별적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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