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으로의 귀환은 한국의 자체 핵무장 주장에도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활력은 양방향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하나는 트럼프가 한국의 핵무장을 묵인해줄 수도 있다는 '기대 심리'이고, 또 하나는 그가 한미동맹을 경시하면서 조선의 핵무장을 사실상 용인해줄 수도 있다는 '불안 심리'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해외에선 한국이 핵무장에 나서야 한다거나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일례로 영국 <가디언>의 국제 담당 칼럼니스트 사이먼 티스달도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실었다. 또 국내의 핵무장 지지 여론도 강하다.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만 핵무장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다.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도 '이제 고민할 시기가 왔다'는 취지로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일단 한국을 둘러싼 안보 환경을 보면, 핵무장론이 거세지는 것도 이해할 법하다. 한국은 공식적인 핵보유국들인 중국 및 러시아와 인접해있고 비공식적이지만 사실상의 핵보유국인 조선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다.
한중 관계 악화와 미중 전략 경쟁이 맞물리면서 국내에선 '중국위협론'도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비핵화를 선택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조선은 조건부 선제 핵사용 독트린을 공식화했다. 국내에선 '과연 미국의 핵우산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고 트럼프는 주한미군 철수도 시사한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럴수록 냉정해져야 한다. 자체 핵무장은 다양한 관점에서 토론하고 검토해야 할 문제인데,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시차'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용인할지도 불분명하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2기 임기는 2029년 1월까지이다.
무리인 줄 알지만 트럼프가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시점을 2026년 1월이라고 가정하면, 1차적으로 한국에 주어진 시간은 3년 정도이다. 트럼프 다음 행정부가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 것인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이 조선에 버금가는 핵 능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10년 이상은 족히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자체 핵무장을 주장해온 대표적인 언론사인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월간조선>은 2024년 2월호에서 국내의 원자력 전문가들을 인용해 10개의 핵무기를 만드는 데에도 10년 정도가 걸린다고 보도했다. 2025년부터 개발에 착수하면 2035년경에야 10개 정도를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쯤되면 조선의 핵무기 보유량은 200개 수준이 될 것이다.
한국이 핵무장을 본격적으로 추진할수록 한반도 위기가 고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조선은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도 강력히 반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주한미군을 비롯한 한미동맹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지게 된다. 트럼프를 설득해 주한미군을 철수하더라도 한국의 핵무장 이후로 해달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이를 수용할지도 불분명하지만, 수용한다면 어떤 요구를 해올까?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비롯한 각종 청구서를 내밀 것이다. 자체 핵무장 추진이 대미 자주성을 증진하기보다는 이를 결심하는 순간 대미 종속성이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이 트럼프 임기 내에 유의미한 핵무장에 도달할 가능성이 없는 만큼, 차기 미국 행정부가 어떻게 나올지도 알 수 없다.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미국 의회가 한국 핵무장에 동의해줄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살펴봐야하는 것이 미국의 법체계이다. 미국은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는 비핵국가들을 상대로 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광범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갖고 있다. 또 미국 대통령조차 이러한 제재법의 집행을 거부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그만큼 미국의 제재법은 강력하다는 뜻이다.
물론 예외는 있을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국가안보상의 이익이 동맹국의 핵무기 개발에 따른 비확산 체제의 훼손보다 더 크다고 결정할 경우 일부 제재가 유예·해제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 있어서도 미국 대통령의 권한은 제한적이다. 대표적인 제재법인 글렌 수정법에는 '웨이버 조항'이 없기 때문에, 동맹국에 대한 제재를 유예·해제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법 개정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는 핵무장에 나선 한국이 미국의 제재를 면제받으려면 행정부는 물론이고 의회의 동의와 이에 따른 법 개정도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사회에는 미국만 있는 것도 아니다. 과거보단 약해졌다고 하지만, 핵비확산은 여전히 강력한 국제규범이다. 한국이 핵무장을 하려면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탈퇴해야 한다. 한국이 이런 선택을 하면 조선에 이어 NPT 역사상 두 번째가 된다.
NPT에서 탈퇴하면 유엔 안보리 회부를 피할 수 없다.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유엔 차원의 제재를 피하더라도 한국의 핵무장을 반대하는 나라들의 제재는 피하기 어렵다. 무역의존도가 80%가 넘고 국제 금융시장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으며 이미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가 엄청난 재앙을 맞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보면, 한국이 비핵국가에서 핵무장으로의 '전환의 계곡'을 넘기로 결심하면, 그 계곡에 빠져 오랜 시간 허우적거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설사 계곡을 지나가도 더 어두운 세상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매우 피폐해지고 정치·사회적으로는 극심한 남남갈등의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다. 한국 안보의 근간이라는 한미동맹에도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다.
한국이 손에 쥔 핵무기도 조선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자체적으로 우라늄 광산에서부터 핵무기 제조까지 '핵무기 완성 주기'를 갖고 있는 조선은 현재 100개 가까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매년 10개 안팎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이 본격적으로 핵무장에 나서면 러시아가 조선의 전략무기 개발 지원에 나설 공산도 커진다. 무엇보다도 상시적인 핵전쟁의 공포가 한반도를 배회하게 될 것이다.
그럼 대안이 뭐냐는 반문이 나올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글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두 가지 망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하나는 조선이 언제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피해망상'이고, 또 하나는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다량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과대망상'이다. 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러한 망상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한국이 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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