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향수 판매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 경기 불황에 이른바 '스몰 럭셔리(작은 사치)'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명품 브랜드 제품 중에서는 그나마 가격이 저렴한 향수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향수가 유명 브랜드의 효자로 자리매김하면서 제품의 기획부터 마케팅, 판매 전략 등을 진두지휘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의 존재감도 새삼 커지고 있다. 그들의 역량에 따라 제품의 성패가 좌우되는 탓이다. 덕분에 유명 CD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고급화·대중화 모두 잡은 조말론 사령탑…샤넬의 영광 재현 나선 보테가 부흥 주역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실시한 3분기 향수 브랜드평판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향수 브랜드는 미국의 화장품 기업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의 브랜드 '조말론런던(이하 조말론)'이다. 조말론은 영국 런던의 유명 조향사 조 말론이 1994년에 만든 니치 향수 브랜드로 1999년 에스티로더컴퍼니즈에 인수됐다. 니치 향수는 '틈새'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니치(nicchia)'에서 파생된 단어로 소수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한 프리미엄 향수를 뜻한다.
조말론의 모회사인 에스티로더컴퍼니즈는 올해 3월 기준 창업주 에스티로더 가문이 38%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로 올라있다. ▲뱅가드그룹(10.57%) ▲블랙록(5.1%) ▲스테이트 스트리트(4.5%) 등도 지분을 보유 중이다. 에스티로더컴퍼니즈는 조말론 이외에도 ▲톰포드 뷰티 ▲르라보 ▲킬리안 등의 유명 향수 브랜드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조 말론은 1999년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에 자신의 브랜드를 매각한 이후에도 브랜드 CD로 활동을 해왔으나 2003년 유방암 진단을 받고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돼 2006년 자신이 소유했던 모든 지분을 에스티로더컴퍼니즈에 매각한 뒤 회사를 떠났다. 현재 조말론 이끌고 있는 CD는 '완지나 글래스힌 브라운(Wandjina Glasheen-Brown)'이다.
1976년 호주에서 태어난 완지나는 미국 뉴욕시에 위치한 명문 사립 예술 대학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디자인학을 전공했다. 파슨스디자인스쿨은 패션 분야에서 세계 1위 대학으로 꼽히는 초일류 패션 스쿨이다. 완지나는 학위를 마친 후 곧바로 대학 선배인 도나 카란이 설립한 패션 브랜드 DKNY에 입사해 디자이너로 약 3년간 근무했다. 이후 에스티로더컴퍼니즈 산하 브랜드인 립스틱 회사 M·A·C을 거쳐 2011년 조말론으로 자리를 옮겼다. 완지나는 2018년 조말론 CD를 맡은 뒤 지금까지 조말론의 브랜드 파워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
완지나는 브랜드 출범 당시부터 내세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한 층 끌어올리기 위해 럭셔리 마케팅을 계속 전개해나가는 중이다. 완자나는 제품은 물론, 직원 서비스, 패키징, 매장 인테리어까지 철저하게 고급화 전략을 고수했고 그 결과 '럭셔리 향수'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동시에 10ml, 15ml 등 저용량 향수를 출시해 기존 제품에 비해 저렴하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조말론의 진입 문턱을 낮추기도 했다.
한국인이 두 번째로 사랑하는 향수 브랜드는 프랑스 럭셔리 향수의 대명사 '샤넬(chanel)'이다. 샤넬은 No.5, 코코 마드모아젤 등과 같은 아이코닉 향수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1960년 미국의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가 한 인터뷰에서 "잘 때 무엇을 입으시나요"라는 질문에 "잠자리에 들기 전 오직 샤넬 No.5를 향수 몇 방울만 몸에 걸친다"고 대답한 인터뷰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샤넬 No.5'는 전 세계 여성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태디셀러 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샤넬 NO.5'는 러시아 황실의 전설적인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의 작품이다. 샤넬의 설립자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코코 샤넬)은 당시 러시아 황제였던 니콜라스 2세의 조카인 드미트리 바블로비치와 연인 관계로 발전하면서 에르네스트 보를 소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향사로서의 에르네스트 보의 성공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에르네스트 보의 아버지는 러시아의 화학자로 당시 비누공장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샤넬은 설립 초기 당시 동업자였던 피에르 베르트하이머 가문이 줄곧 소유권을 보유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비상장 기업인 샤넬은 베르트하이머 가문 투자회사 '베르타이머스'가 소유권 100%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베르타이머스는 피에르 베르트하이머의 손자 알랭 베르트하이머와 제라드 베르트하이머가 이끌고 있다.
2019년 샤넬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칼 라거펠트 타계 이후 5년간 샤넬을 이끈 버즈니 비아르가 지난 6월 사임한 가운데 올해부터 샤넬을 이끌게 된 CD는 프랑스 출신의 '마티유 블라지(Matthieu Blazy)'다. 마티유 블라지는 지난달 12일 역대 샤넬의 4번째 CD로 발탁됐다. 샤넬은 의류, 악세사리, 향수 등 모든 제품을 1명의 CD가 총괄 관리한다.
1984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마티유 블라지는 벨기에 브뤼셀의 유명 예술학교 라 캄브르에 입학한 후 발렌시아가와 존갈리아노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의 졸업 작품 심사위원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였는데 그는 마티유 블라지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심사 자리에서 곧바로 자신의 팀원으로 고용했다. 이후 메종마르지엘라와 셀린느, 그리고 캘빈클라인 등을 거쳐 2020년 보테가베네타 CD로 임명됐다.
마티유 블라지는 보테가베네타에서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패션쇼를 여러 번 선보이며 글로벌 패션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당시 그는 기존 보테가베네타의 특유의 인트레치아토(격자무늬로 가죽을 엮어내는 방식)디자인의 격자 크기를 대폭 늘리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보테가베네타의 부흥을 주도했다.
메가히트 주역 딥디크 CD, 엘리트 조향사 출신 디올퍼퓸 CD, 향수명가 7대손 크리드 CD
한국인이 세 번째로 사랑하는 브랜드는 프랑스 니치 향수의 대명사 '딥디크(diptyque)'다. 딥디크는 1961년 이브 쿠슈비츠키, 디디에 말로, 크리스티안 고스마 등 세 명의 공동 창업주들이 설립했다. 딥디크는 과거 원단을 생산하는 기업이었는데 이들은 사업을 진행하던 중 손님들이 인테리어를 위해 놓는 오브제의 구매력이 높다는 사실을 깨닫고 유리병에 든 고급 방향제 '포푸리' 등을 유통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이후 세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향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향초와 향수를 전문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향초와 향수 사업에 전념해오던 딥디크는 2001년 미국의 유명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작품 내에서 주인공이 딥디크의 베이 향초를 사용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면서 단숨에 유명 브랜드 반열에 올랐다. 이후 2003년부터 런던, 샌프란시스코 등에 매장을 내면서 규모를 키웠고 2005년 영국의 사모펀드 만자니타 캐피탈에 인수됐다.
현재 딥디크를 이끌고 있는 CD는 '마리암 바도(Myriam Badaul)'다. 1968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마리암 바도는 프랑스 파리의 비즈니스 스쿨인 ISG paris에서 마케팅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프랑스 향수 회사인 아닉 구딸(Annick Goutal)에 입사해 경력을 쌓았다. 그러던 중 유명 조향사 장 케를레오, 장 뮈셸 뒤리에 등의 추천으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향수 브랜드 '장파투(Jean Patou)'로 자리를 옮겼다. 장 파투의 사내 조향사였던 장 케를레오는 1976년부터 1979년까지 프랑스 향수 협회 회장을 역임한 프랑스 향수업계의 최고 권위자 중 한명이다.
장파투에서 향수 개발과 상품 기획 역할을 동시에 맡았던 마리암 바도는 2008년 딥디크로 이직했다. 그는 딥디크에서 조향사,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등과 긴밀히 협력해 새로운 제품과 향을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바로 딥디크 제품 중 큰 사랑을 받고 있는 '34번가 컬렉션'이었다. 신제품의 성공 덕에 마리암 바도 역시 유명 CD 반열에 등극했다. 그는 지난 2019년 딥디크 CD에 올라 지금까지 딥디크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마리암 바도는 평소에 사향, 아이리스 꽃, 그리고 암브레트 씨앗을 활용한 항료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이 네 번째로 사랑하는 향수 브랜드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도 유명한 '디올(dior)'이다. 디올 향수는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연령·성별에 관계없이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전 세계인들에게 디올 향수 열풍을 불러일으킨 제품은 1999년 출시된 '쟈도르(J'adore)'다. 쟈도르는 지금까지도 디올 향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그 중에서도 특히 20년 인상 자란 비터 오렌지 나무의 꽃에서 추출된 '네롤리'를 원료로 한 '쟈도르 퍼퓸 도'는 디올의 스테디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디올의 모기업은 전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패션기업 LVMH그룹이다. 30일(현지시간) 파리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LVMH의 시총은 원화 기준 약 485조원이다. LVMH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는 창업주 '베르나르 아르노'가 설립한 가족투자회사인 피나시에르 아가슈가 자리해 있다. 현재 디올은 베르나르 아르노의 장녀인 델핀 아르노가 CEO를 역임 중이다.
디올은 CEO가 경영 전반을 아우르는 동시에 제품 별로 따로 책임자를 두고 있다. 디올에서 향수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CD는 프랑스 출신의 유명 조향사이자 사업가인 '프란시스 쿠르크지안(Francis Kurkdjian)'이다. 1969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프란시스 쿠르크지안은 13살부터 향수 제작에 매진하며 조향사의 꿈을 키웠다. 그는 1990년 프랑스 베르사유에 위치한 세계적인 국제 향수 전문학교(ISIPCA)에 입학해 조향에 대한 전문 기술을 익혔다. ISICPA는 향수 사업 증진을 위해 프랑스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기관으로 졸업생 대부분이 샤넬, 디올 등과 같은 유명 화장품 브랜드에 취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란시스 쿠르크지안은 졸업 후 2005년 스위스 최대 향수 회사 지보단에 인수된 향수업체 퀘스트에 입사한 뒤 파리 럭셔리 마케팅 스쿨에서 석사 공부를 병행했다. 그는 1995년 겨우 만 26세가 되던 해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에르메스의 CD를 역임했던 장 폴 고티에를 위한 향수 '르 말레(Le Male)'를 제작해 단숨해 세계적인 조향사 반열에 올랐다. 이후 2009년 자신의 이름을 딴 향수회사 '메종 프란시스 쿠르크지안'을 설립해 큰 성공을 거둔 뒤 2017년 LVMH에 해당 브랜드를 매각했다. 2021년 디올 향수의 수석 CD로 발탁돼 지금까지 디올의 향수 부문을 책임지고 있다.
한국인이 다섯 번째로 사랑하는 향수 브랜드는 유럽 왕실이 사랑한 '크리드(Creed)'다. 크리드는 1760년 제임스 헨리 크리드가 설립한 영국 런던의 재단소가 모태다. 당시 크리드는 영국 왕실에 고급 원단을 납품하고 왕실 사람들의 양복을 제작하는 등 일부 상류층만 비밀스럽게 방문하던 곳이었다. 1781년 당시 영국의 황제였던 조지 3세의 명령으로 크리드는 상류층을 위한 향수 사업을 전개했다. 크리드의 향수는 나폴레옹 3세, 엘리자베스 여왕을 비롯해 다양한 유럽 국가의 왕실에서 찬사를 받으며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1854년 크리드는 나폴레옹 3세에 의해 매장 전체가 프랑스로 이주하게 됐고 그 결과 현재까지도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두고 있다,
크리드는 7세대를 거쳐 이어온 가문의 전통적인 조향 방식을 통해 정체성을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최근 대량 생산의 문제로 다수의 기업들이 향수 제작에 있어 기계를 사용하는데 반해 크리드는 여전히 재료의 숙성과 여과작업 등 향수 제작과 관련한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주문자의 특성과 성향에 맞는 맞춤형 생산방식으로 유명인들의 향수를 다수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드 향수 고객으로 알려진 유명 인사로는 고(故) 다이애나 황태자비, 고(故) 오드리 헵번, 고(故) 원스턴 처칠, 데이비드 베컴 부부 등이 있다.
크리드는 현재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를 소유하고 있는 명품 재벌 케링그룹의 산하 브랜드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6월 케링그룹은 화장품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별도의 뷰티 법인 '케링보테'를 세워 크리드 지분 100%를 인수했다. 케링그룹은 구찌와 생로랑, 발렌시아가, 알렉산다맥퀸, 부세론 등 다수의 명품 브랜드를 소유한 프랑스의 패션그룹이다.
현재 크리드를 이끌고 있는 수석 CD는 크리드 가문의 7세 '어윈 크리드(Erwin Creed)'다. 198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어윈 크리드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입학하지 않고 곧바로 아버지 올리버 크리드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았다. 어윈 크리드는 자연에서 생성되는 고급 재료 확보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티의 베티버, 인도의 튜버로즈, 스리랑카의 샌달우드, 불가리아의 장미 에센스 등을 대표적이다. 어윈 크리드는 지난해 신제품 출시를 기념해 한국에 내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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