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의 거품이 가라앉은 후 한동안 침체됐던 증가상현실 분야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12월13일 구글과 삼성은 혼합현실 헤드셋 ‘프로젝트 무한’으로 약 10년 만에 XR 시장에 복귀했으며 메타는 혁신적 디자인과 사용자 편의성을 앞세운 스마트 글래스 ‘오라이온’을 지난해 9월 선보였다.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해 온 애플 역시 같은 해 5월 첫 증강현실 헤드셋 ‘비전 프로’를 출시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구글의 AI 시스템 ‘제미나이’는 프로젝트 무한을 통해 고도로 개인화된 인터랙티브 경험을 제공하며 메타의 AI는 사용자가 바라보는 사물의 맥락을 파악해 영화 속 인공지능 비서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이처럼 XR 헤드셋은 AI와의 결합을 통해 단순한 디지털 기기를 넘어 우리의 비서이자 지적 동반자로 진화하고 있다.
사용자들은 이제 3차원으로 구현된 구글 맵 속의 공간을 실제로 탐험할 수 있으며 의사는 눈앞의 공간에 펼쳐진 환자 데이터를 AI와 함께 실시간으로 분석하며 진료를 진행한다. 산업 현장의 작업자들은 증강현실(AR) 매뉴얼과 AI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복잡한 조립 작업을 수행하며 해외 파트너들과는 언어 장벽 없이 마치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협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이 모바일 휴대폰처럼 대중화되기까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오라이온의 프로토타입 제작 비용은 현재 약 1천500만원에 달하며 향후 몇 년간 상용화 계획이 없다. 애플이 야심차게 출시한 비전 프로 역시 킬러 콘텐츠 부족 등의 이유로 초기 판매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분야의 중요성은 단기간의 투자 회수보다는 미래의 파급력에 있다. AI와 공간 컴퓨팅이 결합된 메타버스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융합해 인류 사회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잠재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래 사회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메타는 수십조원 규모의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으며 다른 빅테크 기업 역시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중국 또한 ‘디지털 실크로드’ 전략과 적극적인 가상현실(VR) 육성 정책 등을 통해 정부와 기업의 역량을 결집, 독자적인 메타버스 생태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러한 글로벌 주도권 경쟁에서 점차 밀려나는 모양새다. 많은 지자체와 단체들이 비전이나 기술적 이해 없이 메타버스의 유행에 너도나도 편승하더니 어느새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정부 지원 사업이나 투자에서 금기어처럼 취급되고 있다. 장기적 비전과 과학적 분석 없이 새로운 키워드 중심의 유행만 반복되는 관행이 낳은 결과다.
마크 저커버그는 XR를 ‘최후의 플랫폼’이라고 표현했다. 메타버스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기술과 문화가 만나는 국경 없는 새로운 통합 영토인 것이다. 미래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거시적 어젠다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 새로운 영토에서 대한민국이 차지할 자리는 그리 넓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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