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그래도 여행 갑시다

아직 입춘이 지나지 않았으니 을사년은 시작되지도 않았건만 새해 분위기가 참으로 을씨년스럽다. 정국은 불안정하고 경제는 불확실하며 우리네 마음에는 찬바람이 인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어떤 어려움이나 장애물이 있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멈출 수는 없다.

공연계에는 "Show must go on"(공연은 계속돼야 한다)이라는 말이 있다. 19세기 극장 문화에서 유래한 격언이다. 이 말 앞에는 '그래도'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단어가 숨어 있다.

무대는 연기, 미술, 음악 등 여러 분야의 스태프가 함께하는 만큼 늘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지만 '그래도' 공연은 계속돼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예술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서 투철한 직업 정신을 상징하는 명언으로 애용되고 있다.

이 말을 우리 경제에도 들려주고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경제 활동도, 소비 활동도 계속 돼야 한다. 시절이 하 수상하다고 해서 하던 일을 중단하거나 지갑을 닫아선 안 된다.

특히 열심히 일한 당신들이여, 떠나라. 지난 한해 열심히 달려온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고 다시 달릴 동력을 확보하라.

미국 심리학협회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여행은 불안과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다른 연구에서는 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21% 낮아졌고 그 효과가 휴가를 다녀온 뒤에도 계속됐다는 결과도 있다.

무엇보다 당신의 여행이 멈춰있는 우리 경제에 작은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굳이 해외 여행이 아니어도 좋다. 국내 여행은 더 좋다.

최근 여행업계는 잇단 악재에 시름하고 있다. 2024년은 여행업계에 있어 나쁜 경우의 수가 모두 터졌다 해도 과언이 아닌 해였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코로나19의 터널을 지나 지난해부터 조금씩 업황이 회복되나 싶었는데 6월에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가 불거졌다. 여름 휴가를 코앞에 둔 시점인데다 고액 단위 결제 상품이 많았던 탓에 여행업계가 가장 주목받았고 그만큼 피해 규모도 컸다. 업계 최대 성수기인 여름 휴가 매출은 그렇게 플랫폼 대란에 떠내려 보냈다.

겨울 방학 성수기를 맞이하려는 찰나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발했고 해를 넘기기 직전에는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사건이 일어났다. 참사 24시간 만에 제주항공 항공권 예약은 6만8000건이 무더기 취소됐다. 이와 연계된 패키지 여행들도 취소문의가 잇달았다.

지난해 주요 여행사들은 여름방학 및 휴가, 추석 연휴가 몰려 연간 최대 실적을 올려야할 3분기에 일제히 영업이익이 하락했다. 여행업계가 걱정하는 것은 당장의 실적 하락보다는 소비 심리 위축의 장기화다. 실제로 지난달 고환율과 탄핵정국으로 여행 예약 취소 조짐이 보였을 때 4대 여행사는 "고환율보다는 사회 분위기가 더 큰 위험요소"라고 입을 모았다.

여객기 참사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났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슬픔과 분노, 스트레스에 둘러싸여 있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공연을 계속해야 하는 이땅의 누군가를 위해 국민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그래도 여행 갑시다."

황정원 머니S 산업2부 차장. /사진=김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