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조은비의 비엔나 라이프] 17번째 글입니다. 조은비 대표님은 주얼리 공방 ‘디라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우울증 자조 모임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는 “모든 걸 잠시 멈추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게으르게 쉬는 중”이며 스스로를 “경험주의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은비 대표님의 자세한 서사를 만나보고 싶다면 인스타그램(@d_light_heals_u)에 방문해보길 바랍니다.
[평범한미디어 조은비 디라이트 대표] 사람에겐 두 개의 고향이 있다고 한다. 태어난 고향과 마음의 고향. 그렇다면 베를린은 내 마음의 고향이다. 전세계 유명 브랜드가 모인 쇼핑몰을 놔두고, 사람들은 정작 빈티지숍에서 옷을 사는 도시. 베를린 필하모닉을 보유한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의 도시이면서, 수술 자국이 선명한 가슴을 드러낸 트랜스젠더 남성의 공연 포스터가 붙어있는 도시. 도시 전체를 편리하게 연결하는 두 종류의 지하철, 트램, 버스가 있지만 거기서 사람들은 맥주를 마시거나 전자담배를 피는 도시. 소시지로 만든 ‘커리 부르스트’와 돼지고기로 만든 ‘슈바인스학세’가 유명하지만 식료품점 가격표엔 비건(동물성 재료가 전혀 없는) 정보를 크게 표시하는 도시.
명실상부 유럽의 메트로폴리스는 이렇게 열렬하게 비주류를 고집한다. 평생 내가 한국 사회에서 배운 정답들에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며. 그래서 태어난 고향의 주류에 포함되지 않은 내게 큰 안도감을 준다.
사랑하는 베를린에서 친구 P와 데이트 약속이 잡혀있었다. 한 달 전 파리 주얼리 수업 경비를 마련하러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그녀를 처음 만났다. 나는 P의 다정함이 좋았다. 다정함은 타고나는 것보다 노력하고 배우는 것이라 믿기에, 무거운 짐을 들 때 허리가 아픈 나와 항상 짝이 돼준다거나 말 하나 하나에 배어있는 약자에 대한 따스한 시선 같은 것들. 우리는 서울 유수 대학을 졸업해서 모범 시민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을 둔 점도 비슷했다. 무엇보다 베를린에서 왔다는데 좋아하지 않을 수 없지. 그렇게 우리는 한 채식 레스토랑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커다란 파스텔 분홍색 털목도리에 파묻힌 채 달려와 나를 꼬옥 안아준 그녀. 오후 2시 베를린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그녀의 존재 덕분에 내 마음은 밝게 빛났다. P가 추천한 가지 요리와 버섯 후무스 요리를 나눠 먹으며 우리는 근황을 나누기 시작했다. 서른을 넘긴 완숙한 나이에 부응하는 정상적인 생활을 모두 거스르는, 거의 범죄를 저지르는 수준인 서로의 일상을.
그녀는 계속 구직 중이었다. 긴 공부를 끝내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있지만 계속 최종 문턱을 넘지 못 해 조금 지친 상태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귀국을 앞두고 있다. 주얼리에 필요한 영감을 얻는다며 유럽 대도시를 쏘다녔고, 오스트리아 전역 알프스 대자연과 이탈리아의 해변에서 수영을 즐겼던 긴 여행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꼬박 1년간 빈둥거렸다는 이야기이며 이력서를 한 번에 쓸모 없는 문서로 만들 수 있는 경험이었다. 그녀는 요즘 머릿속에 이 질문이 떠나질 않는다고 했다. “나 지금 여기서 대체 뭐 하고 있지?” 이 질문은 나를 올 한 해 내내 우울의 안개 속에 빠트린 장본인이었다.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예전엔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자부심이 이젠 혼자만의 가여운 ‘정신승리’ 같다고. 나이를 무시하고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하면 잘될 거라 믿고 싶은데 확신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이력서 속 돈을 벌지 못 한 경험들에 세상은 마이너스 점수만 매길 것 같아 불안감에 짓눌린다고 털어놓았다. 불안의 터널에 서있는 그녀. 나 역시 그곳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 했기에 어떤 중압감을 느끼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원래 궤도를 한참 벗어나 광활한 유럽 대륙에서 길을 잃은 우리. “근데 우리 다시... 기운이 나지 않을까요?” 차분하고 인정이 넘치는 목소리로 P에게 말했다. 그때 사회가 규정한 모습에서 벗어나 가슴이 시키는대로 유럽에 왔듯 어떤 위험하고 아름다운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걸 잊지 말자고. 지금은 잠시 몸과 마음의 동력을 잃었지만 우리의 가슴은 다시 무언가를 향해 엄청나게 뛸 것이며 그 힘으로 이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그 가까운 미래에 지금의 우리를 회상해보면 너무도 다른 모습에 놀랄지도 모른다. 이런 확신이 순간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가끔 연결이 끊기지만 늘 내 안에 있던 목소리였던 것 같기도 하다. 다음 목적지로 나를 데려다주며 그녀가 물었다. “우린 다음에 어디서 만나게 될까요?” 한 달 전에도 P는 내게 똑같이 물었다. 다음에도 베를린일까? 비엔나? 아니면 서울? 우리는 어딘가 뿌리 내리길 갈망하면서 아직까지도 그 장소를 찾지 못 하고 있다. 마음이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곳이자 너무 사랑하고 여생을 보내게 될 도시. 얼마 전 25세가 70세까지 산다면 2340주의 시간이 남았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솔직히 그리 많지 않아 충격이었다. 짧은 내 인생은 나만의 것이 아닐 때가 많았다. 내 사회의 것이기도, 내 가족의 것이기도, 내 애인의 것이기도 했다. 남은 시간을 나를 즐겁게 하고 평화롭게 하는 것을 찾는 데 쓰고 싶다. 그곳에 뿌리 내린 후 다시 P와 조우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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