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민주 기자] 국민의힘 의원 40여명이 윤석열 대통령의 ‘인간 방패’ 역할을 자처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조기 대선 등 정치권의 시계 흐름이 빨라지는 상황에서 이들이 윤 대통령을 끝까지 지키는 이유는 뭘까. 사실상 동반 추락을 예상하면서도 향후 당내 경선이나 영남권 지역구 국회의원 배지를 위한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의원 44명은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막겠다며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으로 집결했다. 김기현(울산 남구을) 의원은 관저 앞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명확하게 (내란 혐의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주체다. 따라서 이런 영장 집행은 불법으로서 원천 무효”라고 말했다.
관저 앞에 모인 의원 44명 중 26명이 보수 텃밭인 TK·PK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김 의원을 비롯해 강대식(대구 동구군위을), 강명구(경북 구미을), 강민국(경남 진주을), 구자근(경북 구미갑), 권영진(대구 달서병), 김석기(경북 경주시), 김승수(대구 북구을), 김정재(경북 포항시북구), 김종양(경남 창원시의창구), 박대출(경남 진주갑), 박성민(울산 중구), 박성훈(부산 북구을), 서일준(경남 거제시), 서천호(경남 사천시남해군하동군), 송언석(경북 김천시), 이만희(경북 영천시청도군), 이상휘(경북 포항시남구울릉군), 이인선(대구 수성구을), 이종욱(경남 창원시진해구), 임이자(경북 상주시문경시), 임종득(경북 영주시영양군봉화군), 정동만(부산 기장군), 정점식(경남 통영시고성군), 조지연(경북 경산시), 최은석(대구 동구군위갑) 의원 등이 영남권 인사들이다.
이밖에 강승규(충남 홍성군예산군), 김선교(경기 여주시양평군), 김은혜(경기 성남시분당을), 나경원(서울 동작을), 엄태영(충북 제천시단양군), 유상범(강원 홍천군횡성군영월군평창군), 윤상현(인천 동구미추홀을), 이철규(강원 동해시태백시삼척시정선군), 장동혁(충남 보령시서천군), 조은희(서울 서초갑) 의원과 비례대표 강선영, 김위상, 김장겸, 박준태, 박충권, 이달희 조배숙, 최수진 의원 등도 함께했다. 원외 당협위원장도 12명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창환 정치평론가는 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민의힘의 한 인사가 ‘죽는 길인 것을 알면서도 가고 있다. 안 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라며 “이 사람들은 지금 대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기면 좋지만 가능성이 없을 때는 다음을 보고 행동하는 거다. 당 이름을 바꾸면 국민은 잊어버릴 거고 TK는 또 자신들을 찍어줄 거라고 본다. 결국 윤석열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네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대부분 영남권이라든지 국민의힘 강세 지역에서 당선된 사람”이라며 “기존에는 약간 간을 보다가 이제는 전체 국민의 여론에 반대되더라도 당원 경선이나 당내서 앞으로 주류로서 생활하는 것들, 또 앞으로의 재선 등을 생각했을 때 지금은 대통령을 세게 감싸는, 국민보다는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당 내부서도 비판 강해...김상욱 “원죄 있는데 사죄 않는 것 의미, 맞지 않다”
이러한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한 비판 목소리가 당 내부에서부터 강하게 나온다.
‘소신파’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은 KBS라디오에서 “발부된 영장은 법원에 의해서 발부되었고 윤 대통령 측의 이의 신청도 기각됐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이 영장 집행이 불법이고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은 법리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12.3 내란 사태에서 여당으로서 원죄가 있다. 국민들께 진심으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사죄해야만 한다”며 “이런 행동(관저 집결)들이 사죄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데,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친한계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국회의원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대표여야지, 대통령을 지키는 대표자라면 과연 자격이 있겠나”라며 “이분들은 비상계엄이 위헌적인지 아닌지조차도 판단을 잘 못하는 것 같다”고 저격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권이 잘못됐으면 공수처에 가 항의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잘못됐으면 헌재에 가 항의할 수 있다”며 “그런데 관저 앞에 가서 대통령을 우리가 지키겠다, 그러면 누굴 지키겠다는 거냐. 헌법을 위반하고 법률을 위반한 죄인을 지키겠다는 거냐”고 비판했다.
야당은 관저로 간 의원들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해야 한다고 규탄했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국회의원도 현행범인 경우에는 체포할 수 있기 때문에 적법한 영장의 집행을 방해하는 것은 공무집행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 현행범”이라며 “그 사람들부터 체포해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사회민주당 등 야 4당 초선 의원 일동은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의 대표자라는 자들이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 헌정질서를 바로잡기는커녕, 극우세력을 선동하고, 수사를 방해하며, 내란종식을 가로막는데 급급하고 있다”며 “즉각적인 사퇴로도 용서받기 어려운 중대 범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관저 집결한 국민의힘 44인 의원직 사퇴 ▲내란 국조특위 위원 강선영, 박준태, 임종득 의원과 강명구 비서실장 즉각 국조특위·당직 사퇴 ▲국민의힘 즉각 해체 ▲정부, (44인) 즉각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체포 등 4가지를 요구했다.
尹 지지율 ‘40%’?...유승민 “대선, 총선, 지선 판판이 질 것”
영남권 의원들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당당한 모습을 모인 데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이 40%로 나타난 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김상욱 의원은 “당내서는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고무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우리가 맞다고 주장하는 의원들도 계신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 5일 아시아투데이 의뢰로 한국여론평판연구소(KOPRA)가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이같이 집계됐다. 민주당은 “특정 대답을 유도하려는 방식으로 문항이 작성됐다는 판단”이라며 해당 여론조사기관을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정치권은 대체로 국민의힘이 향후 선거에서 유권자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의원들의 개인 행동”이라며 거리를 두지만, 국민의힘 의원 총 108명 중 절반 가까이 참석하고 비대위원인 임이자 의원과 권영세 비대위원장 비서실장인 강명구 의원 등도 참여하면서 당과 분리해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40% 지지율) 여론조사가 진실이라면 예컨대 계엄을 한 번 더 하면 지지도가 더 올라가나”라고 꼬집으며 “윤 대통령의 여러 가지 잘못한 이 부분에 대해서 강력하게 엄호하고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그 국민들만 보고 정치를 하면 앞으로 아마 대선, 총선, 지방선거 판판이 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탄핵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기 대선 준비를 하나도 못 했다. 이후 대선 후보를 찾고 준비할 시간이 한 달도 안 남았었는데 그 선거는 해볼 필요도 없이 지는 것”이라며 “그 똑같은 일이 재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창환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결국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동반 추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소위 ‘내란의 바다’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지금 상황은 국민의힘이 과거 ‘영남 자민련’으로 쪼그라드는데 결정적인 빌미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윤 대통령과 선을 그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한동훈 전 대표를 내쫓을 때 이미 뻔한 길이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국민의힘이 민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송국건 정치평론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모든 건 민심에 달려 있다”며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40%까지 오르는 것도 있고, 국민의힘과 민주당 정당 지지율이 근접한 조사들이 오늘도 나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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