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입틀막'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대통령 경호처가 최근 수사 기관의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육탄방어하며 '내란수비대'로 전락하자 '대통령의 사병화'된 경호처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야당에서는 대통령 경호 업무를 경찰로 이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유신 정권 출범과 함께 제왕적 대통령제의 핵심으로 자리해 온 대통령 경호처에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모아진다.
현재 대통령 경호처에 대한 2025년도 예산만해도 1391억원에 이를 정도의 공룡화, 비대화된 정부조직이다. 대통령 경호처 예산은 2022년 970억원 보다 무려 43.4% 증가되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400억원이 넘게 대폭 증액된 것이다.
윤 대통령의 충암고 선배이며 12.3 내란의 주역인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尹정부 초대 경호처장이 되면서 경호처의 위상은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 '차지철 경호실장'을 방불케 했다. 이른바 대통령 경호처의 '입틀막' 사태도 김용현 처장 시절 일어난 일이다.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대통령 경호처가 국민을 향해 군과 경찰의 무력을 동원한 '내란수괴'로 적시된 체포영장을 또다시 무력으로 저지하는 '대통령 친위부대''윤석열 사병화''내란수비대'로 전락되고 있다.
두차례 '입틀막'으로 국민 공분.. 체포 영장 집행 저지하며 尹 사병화
지난 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은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 체포를 위해 대통령 관저에 진입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체포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 체포는 좌절됐다. 대통령 경호처가 이들의 진입을 육탄방어했기 때문이다. 수백명의 경호처 직원들이 인간띠를 만들었고, 일부 인원은 개인화기를 소지하기도 했다.
한 공수처 관계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저항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완강했고 4시간 넘는 대치 끝에 공수처와 경찰은 결국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공수처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적법한 영장 집행을 방해한 경호처에게 '내란수비대'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사실 윤석열 정부 들어 경호처는 늘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지난 2022년 11월에는 경호처의 활동반경을 규정한 대통령경호법 시행령 개정안이 도마에 올랐다.
해당 개정안에 '경호처장이 군과 경찰을 지휘·감독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즉, 경호처 직원 700여 명에 더해 군 1000여 명, 경찰 1300여 명까지 도합 3000명 가량의 병력을 경호처장이 지휘·감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경찰청과 국방부 모두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냈고, 야당은 경호처를 "유신 시대 차지철을 꿈꾸는 거냐" "나치 친위대를 연상시킨다"며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경호처는 '지휘·감독'을 '관리' 등으로 고치기로 했다가 '관계기관의 장과 협의'로 수정된 채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경호처장에게 신원조사 권한을 추가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안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가 야당의 반대로 좌절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경호처 권한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이어졌다. 경호처 예산은 지난해 대비 421억원(43.4%)이나 늘어났다.
국민적 분노를 야기한 사건은 두번의 '입틀막'이다.
지난해 1월 전주시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윤 대통령과 마주한 자리에서 '국정 기조를 바꾸셔야 한다'고 말하자 경호처 직원들은 강 의원의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 행사장 밖으로 끌어 냈다.
한달 뒤에는 카이스트 졸업생 신민기씨가 졸업식장에서 'R&D 예산을 복원하라'고 외치자 경호원이 달려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신씨 역시 강 의원처럼 졸업식장 밖으로 강제 퇴장됐다.
文, '경호실, 경찰청 산하로 이관' 공약.. 무산
조국혁신·민주, 경호 업무 경찰 이관 위한 법안 발의
현재의 대통령 경호처는 유신 정권의 산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취임한 1963년 12월 17일에 대통령경호실로 창설되어 경호실장은 군사정권 시기 대통령에 이어 2인자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특히, 노태우 정부 때까지는 군 출신이 경호실장을 맡았으며 상당수가 12·12 쿠데타 핵심 세력이었다.
박종준 현 경호처장의 전임이었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도 윤석열 정부 초기 경호처장으로서 이번 비상계엄을 실행한 인물이다.
지금도 대통령실은 비서실장-국가안보실장-경호처장 3명이 권력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대통령 외에는 경호처의 지휘·운영·인사에 권한이 없어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전무하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통령 경호처의 권한을 줄이려는 시도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최순실 씨 등 비선 실세나 비공식 의료진이 청와대에 출입한 일이 드러나면서 경호실이 국정농단을 방조했다는 비판이 나오자 경호처로 직급을 낮춘 것. 문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경호실을 경찰청 산하 경호국으로 두겠다는 공약까지 내걸었으나 실현되지는 못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체포영장 저지 사태가 벌어지자 야당에서는 대통령 경호 업무를 경찰로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당장 조국혁신당은 지난 6일 경호처를 폐지하는 내용이 담긴 정부조직법과 대통령경호법 개정안 등을 발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당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정희 정권 때 만들어진 '차지철식 경호처'는 윤석열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며 "대부분의 선진국처럼 경찰이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대통령경호처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했다. 개정안에는 대통령 경호업무를 국회의장, 국무총리,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처럼 경찰청에서 맡는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신 의원은 "대통령경호처가 법의 통제를 벗어나 무소불위 권력기관으로 날뛰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제왕적 대통령의 상징이자 권위주의 시대의 산물인 대통령경호처를 폐지하는 게 그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황명선 의원과 민형배 의원 등 10여명은 7일 '대통령 경호에 관한 법률'과 '정부조직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통령경호처를 폐지하고, 경찰청 산하에 대통령경호국을 신설해 국가원수의 경호를 담당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외 선진국, 경찰이 경호 업무 담당.. 핵심은 '인사권' 지적도
야당의 주장처럼 주요 선진국에서는 국가수반 경호를 독립된 기관이 아닌 정부 부처 산하에 두거나 경찰에 맡기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미국 비밀경찰국은 백악관 직속이 아닌 국토안보부 소속이며 최고책임자는 차관보급이다. 권력남용을 막기 위해 상급 관리자가 경호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조직 형태다.
영국은 런던 광역경찰청 특별임무국, 캐나다는 연방경찰청 경호경비부, 일본은 경찰청과 경시청에서 국가 정상의 경호를 각각 맡고 있다.
준대통령제인 프랑스는 경찰청 요인경호실, 이원정부제인 독일은 연방범죄수사청 경호총국이 담당한다. 최고책임자 직위는 치안감급 또는 경무관급 수준이다.
다만. 제도적인 보완과 함께 대통령에게 귀속된 인사권을 외부에 맡기는 것이 핵심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정희 정권의 차지철, 전두환 정권의 장세동, 윤석열 정부의 김용현 등 대통령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인물을 기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에 경호 업무를 맡긴다 해도 정권에 충성하는 인사가 임명된다면 현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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