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의 문턱에서 헌신하는 장기요양요원들이 현장에서 겪은 희노애락을 직접 글로 써냈습니다. 이 중 서울시어르신돌봄종사자종합지원센터가 주최한 '2024 나의 좋은 돌봄 이야기'에서 수상한 다섯 작품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나는 올해 1954년생 70살의 나이로 아직도 현역에 있다. 그리고 웬만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끝말이 '사'로 끝나는 직업을 두 개나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나는 미용사이자 요양보호사이다. 20년 전 미용사라는 직업으로 첫 서울 생활을 시작했고, 주위의 권유로 요양보호사를 취득했다.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소일거리 삼아 주변의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힘이 되고자 두 번째 직업으로 요양보호사를 하고 있다. 나도 건강이 좋지 못하고 도움이 필요한 나이임에도 누군가를 돌본다는 게 걱정이 앞섰지만, 일단 도전해보기로 했다.
7년 전 요양보호사로 처음 만난 80대 할머니를 지금도 돌보고 있다. 편의상 A 할머니로 칭하겠다. A 할머니는 요양등급은 받았지만 사람을 알아보거나 거동이 크게 불편한 상황은 아니었다. 요양보호사 생활도 나름 수월했다. 요양보호사와 미용사라는 직업을 병행함에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나도 할머니였지만 더 도움이 필요한 할머니에게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나를 더욱 젊게 만드는 에너지가 됐다. A 할머니가 첫 만남 때부터 날 반갑게 맞이하며 항상 간식거리를 꼭 손에 쥐어주곤 했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할 만했던 처음과 달리 A 할머니는 점점 상태가 쇠약해졌고 나도 나이 들어감에 따라 힘든 날이 이어졌다. 몇 년 전부터 A 할머니는 대소변도 조절이 안 될 정도로 치매 초기증상이 왔고, A 할머니에게 가는 아침이 점점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강도 조금씩 나빠지기 시작해서, 요양을 그만둘까 하는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의 정신이 온전히 돌아왔고, 할머니는 내게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이야기했다. 자신이 치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많은 독서와 꾸준한 운동, 식이요법을 지금부터라도 꼭 하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나는 A 할머니가 온전한 정신이 들어서 하루 동안 기뻤다. A할머니가 그 온전한 정신으로 나를 위해 여러 조언을 해주어서 더욱더 놀라웠다. A 할머니는 나를 친딸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7년 정도 되니 정신이 온전치 못해도 나와 많은 정이 들었고, 치매 초기라도 우리는 서로의 공감대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A 할머니의 조언대로 한 달에 한 권 이상의 책을 읽고, 매일 20분 이상 걷고, 설탕이 들어간 음식은 먹지 않기로 했다. 벌써 2년째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내가 돌봄해주러 가서 오히려 내 건강을 위해 돌봄을 받고 있는 기분이 들었어 사뭇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A 할머니의 상태가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나는 요양보호사를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매일 든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참고 요양보호사라를 직업으로 퇴직을 하고 싶다. 왜냐하면 A할머니가 전수해준 건강을 지키는 조언을 듣고 그대로 실천을 하고 있어 건강한 노년을 맞이하고 있고, A할머니와 많은 정이 들었다.
요양보호사는 노년에 처음 도전한 자격증이고, 일도 얼떨결에 하게 되었지만, 지금은 영원한 나의 직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젊었을 적에는 마을 사람들이 "부지런한 김씨"라며 나를 부르곤 했다. 농사도 짓고, 집안 살림도 하고, 자식들까지 키워내면서 한평생을 바쁘게 살았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손주들을 돌보는 할머니가 되었고, 어느 날 문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마음에 떠오른 것은 ‘요양보호사’라는 일이었고, 처음 도전했을 때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요양보호사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는 동안, 나보다 훨씬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배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 몸은 예전만큼 빠르지 않았고, 머리는 금방 지치곤 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 마음 한편에는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태가 악화된 A 할머니에게 "안녕하세요. 요양보호사입니다"라고 인사하자, 할머니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웃으며 "너도 나처럼 늙은 할매잖아"라고 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A 할머니는 나에게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고, 나는 A 할머니에게 자식 자랑을 하곤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일로 시작한 관계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존재가 되었다.
A 할머니를 돌보며 나는 깨달았다. 요양보호사라는 일은 단순히 몸을 돌보는 것만이 아니다. 나이 든 몸은 물론이고, 그 마음도 함께 돌보는 일이다. 우리는 함께 웃고, 때로는 함께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나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됐다. 다른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배우고, 함께 나누는 일임을 깨달았다.
매일 아침 그분의 집으로 가는 길은 내게 새로운 기대와 기쁨을 안겨준다. 나는 요양보호사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나이 들어서도, 내가 다른 누군가의 삶에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요양보호사라는 이름, 나는 이 이름이 참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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