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지원을 넘어 영국 의회 해산, 영국 총리 퇴진 촉구를 주장하는 등 차기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자문기구 수장으로 내정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영국 내정에 대한 아집이 도를 넘어섰다. 머스크가 미국 정치를 혼란에 빠뜨린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유럽 정치를 주무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머스크는 새해 들어 그가 소유주인 소셜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영국 정치권 비난을 강화했다. 수감된 영국 극우 토미 로빈슨(본명 스티븐 약슬리레넌) 석방을 촉구하는가 하면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및 노동당 정부에 대한 비판을 넘어 영국 찰스 3세 국왕이 의회를 해산해야 한다는 망언 수준의 주장에까지 지지 표현을 하기도 했다.
영국 극우 정당 영국개혁당을 이끄는 나이젤 패라지까지 거리를 둘 정도로 악명 높은 반이민 우익 극단주의자인 로빈슨은 2021년 법원에서 시리아 난민 소년이 영국 소녀를 공격했다는 거짓 주장을 퍼뜨리는 것을 금지 당했음에도 이를 반복해 지난해 10월 징역 18개월형을 받았다. 패라지는 지난해 총선 기간 동안 그의 정당이 로빈슨과 관련이 없다고 해명해 왔고 지난해 8월 영국 극우가 허위 정보를 퍼뜨리며 주도한 반이민 폭동과 관련해선 "증오를 조장하고 있다"며 로빈슨을 비판하기도 했다.
반면 머스크는 반이민 선동으로 인해 2018년 당시 트위터에서 퇴출된 로빈슨의 계정을 트위터 인수 뒤 복구하며 지지 의사를 표현해 왔다. 머스크는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 X에 "토미 로빈슨을 석방하라"는 게시글을 올렸고 5일에도 "다시 한 번 말한다: 토미 로빈슨을 당장 석방하라"는 주장을 재차 펼쳤다.
로빈슨에 대한 입장차로 한 배를 타는 듯 했던 머스크와 패라지의 사이까지 벌어졌다. 패라지는 지난달 머스크가 영국개혁당에 기부하는 방안을 협상 중이라고 주장해 영국 정치권에 머스크 간섭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온 바 있다.
머스크는 지난 3일 패라지가 "그(로빈슨)가 영국개혁당에 합류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계속해서 선을 긋자 5일 X를 통해 "영국개혁당은 새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패라지는 자질이 없다"고 비난했다. 같은 날 패라지는 X에서 머스크의 해당 게시물을 인용하며 "놀랍다! 일론(머스크)은 뛰어난 인물이지만 이 점에 있어선 동의할 수 없다. 토미 로빈슨이 영국개혁당에 적합하지 않다는 내 생각은 변함이 없으며 난 내 원칙을 절대 팔아 넘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는 머스크가 미국의 주요 동맹국 정부에서 "게시물의 진실성은 무시한 채 극우와 극단주의자들을 옹호"하며 "미국 정치를 혼란에 빠뜨리는 데 사용했던 것과 유사한 각본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머스크는 지난 3일엔 X를 통해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인용하며 "그렇다"고 동의해 영국에 헌법적 위기를 불러 일으키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입헌군주제인 영국에서 왕은 의회를 해산할 형식적 권한을 가지지만 이는 총선을 치르기 위한 총리의 의회 해산 요청을 왕이 승인하는 방식으로 행사돼 왔다.
머스크의 망언 수준의 이러한 게시물들은 노동당 소속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의 사퇴를 거듭해서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머스크는 스타머 총리가 2008~2013년 왕립검찰청(CPS) 청장을 맡았을 때 아동 성착취 사건을 은폐했다고 주장 중이다. 머스크는 5일에도 X를 통해 "스타머(영국 총리)는 사임해야 한다. 그는 국가적 수치"라고 주장했다
웨스 스트리팅 영국 보건장관은 5일 영국 방송 스카이뉴스에 머스크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잘못된 정보"라고 비판했다. 그는 스타머 총리가 "정계에 입문하기 전 강간범, 소아성애자, 성범죄자를 교도소에 넣은 실제 전력이 있다"며 관련해 머스크의 "설교"가 필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코앞에 두고 벌어진 머스크의 도발은 트럼프 정부와 우호적 관계 맺기를 시도해야 하는 영국 정부에 부담을 안긴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미 CNN 방송은 스타머 총리가 사퇴를 요구하는 머스크의 발언에 반응을 자제하며 "아직까진 미끼를 물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방송은 그러나 스타머 총리가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차기 (미국) 지도자의 가장 가깝고 중요한 측근"인 머스크를 "완전히 무시할 순 없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방송은 스타머 총리가 머잖아 영국 총리와 장관들에게 쏟아지는 머스크의 "온라인 학대"에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의원들의 요구를 마주함과 동시에 머스크를 신뢰하는 트럼프 정부와 협력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머스크가 지난해 총선을 치러 선거가 임박하지 않은 영국 정치권에 날을 세우는 배경에 의문도 제기된다. <워싱턴포스트>는 머스크의 전세계에 걸친 이러한 시도가 사업적 이익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영국에선 오는 3월 소셜미디어 기업이 아동에 대한 성적 착취, 극단적 성폭력, 테러 등과 관련된 유해 콘텐츠를 막도록 하는 온라인 안전법이 발효되는데 이 법을 위반하는 회사는 전세계 수익의 최대 10%에 달하는 벌금을 낼 수 있다. 머스크는 지난 2일 X를 통해 온라인 안전법 관련 게시글을 인용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딱 맞춰 권력을 잡을 것이다. 다행이다"라고 적기도 했다.
다음 달 조기 총선을 앞두고 머스크의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 지지 및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 대한 "바보" 등의 막말로 홍역을 앓고 있는 독일에선 더 날선 반응이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을 보면 숄츠 총리는 4일 공개된 독일 <슈테른>과의 인터뷰에서 머스크의 도발 관련 질문을 받고 "트롤(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시비를 거는 사람)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것이 자신의 "원칙"이라고 답했다. 그는 "(중도 좌파) 사회민주당원으로서 우리는 사회민주주의 정치를 달가워하지 않고 그들의 의견을 숨기지 않는 부유한 미디어 기업가들이 있다는 사실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왔다"며 "차분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30일 크리스티아네 호프만 독일 정부 대변인은 "일론 머스크가 (독일) 연방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라며 머스크의 내정 간섭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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