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조세희와 레비나스

[인천시론] 조세희와 레비나스

경기일보 2025-01-06 19:05:4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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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았지만 지난해로 돌아가 본다. 갓난 예수가 베들레헴 마구간에 누워 계실 성탄절이었다. 인천 동구 화수동 일꾼교회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소설가 조세희가 사랑했던 난장이(난쟁이) 같은 삶을 기억하자는 이들이었다. 일찌감치 조세희가 소설을 쓰기 위해 둘러봤을 장소, 그가 문장으로 새겨 놓았듯 지옥 같은 세상에서 천국을 꿈꾸던 이들이 몸과 맘을 의탁하던 성소였다.

 

조세희는 지옥 같은 세상을 뜨면서 직접 가서 묻겠다는 듯 신의 아들과 자리를 바꿨다. 조세희에 앞서 1995년 성탄절에 떠난 이가 또 있었다. 에마뉘엘 레비나스. 이름마저 신과 함께하려던 이에게도 하늘은 무심하고 가혹했다. 하늘이 낸 백성이라며 적자 계보를 자부했던 유대인이었던 그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학살당했다. 그도 하늘에 묻고 싶었던 게 많았을 철학자였다.

 

조세희는 인천 만석동과 화수동 일대를 돌아보고 ‘은강’이라는 동네를 지어냈다. 레비나스는 인간이 인간을 떼로 죽이는 지옥을 마주하고 ‘타인의 얼굴’을 개념화했다. 조세희는 한국 사회 지옥도를 은강으로 축소하고 상징화해 우화처럼 펼쳐 보였다. 레비나스는 나와 너를 넘어서 사람이 사람을 환대하는 세계를 사유했다. 조세희는 문학 쪽에서 철학에 접근했고 레비나스는 철학으로 문학 같은 상징을 직조해냈다. 성탄절에 떠난 두 삶이 공히 바란 바가 있다면 국경과 인종, 계급 따위를 초월해 천국 백성을 닮은 인간애였다. 두 사람은 땅에서 이루지 못한 일이라면 하늘에서도 이룰 수 없음을 알면서도 천국에 대한 기대를 접지 못했다. 신이 존재하리라 믿어서라기보다는 신이 있어야 할 사람들 편에 서고 싶어서였다.

 

조세희는 1970년대 인천이라는 구체적 시공간을 은강에 담았다. 은강은 인천 동구를 비춰 반사해 낸 인천의 옛 얼굴이었다. 조세희는 난장이 연작을 통해 인천을 비롯한 타지 사람들이 은강에 와서 머물기를 바랐다. 타인이 사는 장소에 들어서는 경험은 나를 변화시킨다. 소설 안에서 우리가 이미 경험했듯 그 문장들을 통과한 후 나의 모습은 이전과 다르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기 전과 후를 말한다. 타자를 만나면서 나는 나를 넘어서는 초월에 도달한다. 타자를 내 집으로 받아들여 손님으로 환대하면서 나는 나를 벗어나 도덕적 인간으로 변해 나간다. 레비나스는 “타자는 가난한 자와 나그네, 과부와 고아의 얼굴을 하고 있고 동시에 나의 자유를 정당화하라고 요구하는 주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했다. 타자는 약자의 얼굴로 다가와 나를 윤리적 존재로 바꿔 놓고야 마는 구원자다.

 

조세희는 인천을 은강이라는 약자의 도시로 그려 놓았다. 인천은 변했고 인천 안에서도 은강은 잊혀진 얼굴이 돼 가고 있다. 성탄절에 은강과 조세희를 기억하기 위해 모인 이들도 극소수였다. 하지만 인천은 천국을 바라는 이들로 넘쳐 난다. 인천을 ‘성시화’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던 목회자와 성도들도 꽤 많았다. 근대 기독교의 발자취를 따르다 보면 천국 아랫동네쯤에 인천이 있어도 부족하지 않은 도시다. 조세희는 다음 성탄절에 또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조세희와 함께 그날에는 레비나스도 올 것이다. 인천을 비춰 빚어낸 은강이라는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 부름에 응답하는 인천이라야 신의 얼굴로 현현한 예수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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