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40년 가까운 감독 경력 내내 위기에 처한 팀을 구원하는 게 특기였다.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온 이번 시즌도 능력은 여전하다. 고향팀 AS로마를 심각한 위기에서 살려냈다.
무려 1986년부터 감독 생활을 한 라니에리는 오랫동안 강팀의 과도기에 적당한 성적을 내 주고 다음 유명 감독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땜질 전문 감독(tinkerman)’으로 유명했다. 특히 2000년대 첼시, AS로마 등의 구단에서 이런 면모가 돋보였다. 그러다 2015-2016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 하위권 구단 레스터시티를 맡아 우승으로 이끌었다. 리그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드라마 중 하나였다.
이후 낭트, 풀럼, 로마, 삼프도리아, 왓퍼드 등을 거친 감독은 바로 전 직장인 칼리아리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쓸쓸한 은퇴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가장 감동적이고 성과로 가득한 은퇴였다. 2022-2023시즌 도중 칼리아리 지휘봉을 잡은 뒤 첫 시즌 승격, 그리고 두 번째 시즌 극적 잔류를 달성했다. 경력 초창기에 지휘했던 칼리아리로 돌아와 그들을 구해냈기에 더 감동적이었다.
여기까지가 진짜 끝인 줄 알았는데, 지난해 73세 나이에 은퇴를 번복하고 로마로 돌아왔다. 지난해 11월 로마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다니엘레 데로시 감독을 시즌 초 자르고 실리적인 이반 유리치 감독으로 바꿨는데, 유리치 감독 역시 기대이하였다. 결국 로마 태생이고, 로마 선수 출신이며, 감독직도 두 번이나 역임한 라니에리에게 긴급구호를 요청했다.
라니에리도 두 번째 컴백 직후에는 쉽지 않았다. 나폴리, 토트넘홋스퍼, 아탈란타라는 힘든 대진을 1무 2패로 보냈다.
반전은 12월 중순부터 시작됐다. 레체 상대로 부임 후 첫 경기를 거둔 라니에리 감독은 이때부터 5승 1무 1패로 훌륭한 성적을 내고 있다.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와 코파 이탈리아에서 각각 승리를 거뒀고, 이탈리아 세리에A는 3승 1무 1패로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강팀인 밀란과 비기고 라치오를 상대한 더비에서 2-0 승리를 거뒀다.
6일(한국시간) 더비 승리는 상징적이었다. 라니에리 감독은 띄엄띄엄 로마 지휘봉을 잡아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로마 더비)를 4번 치렀는데, 4전 전승을 거뒀다. 전반적인 성적도 좋지만 팀의 자신감을 살릴 수 있는 중요한 경기에서 더욱 강해지는 라니에리 감독 특유의 동기부여와 운영 능력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시즌 성적은 승리 후에도 10위인 로마에 비해 한때 선두 경쟁하다 패배 후에도 4위로 상위권을 유지한 라치오가 훨씬 좋다. 하지만 로마는 전반 11분 속공 상황에서 특유의 득점력을 보여준 로렌초 펠레그리니의 골로 앞서갔다. 선제골을 어시스트한 알렉시스 살레마키어스는 전반 18분 직접 골을 터뜨렸다.
재능 있는 선수는 많지만 다소 난잡한 구성이었던 로마를 라니에리 감독이 잘 정리했다. 스트라이커 아르템 도우비크와 더불어 ‘에이스’ 파울로 디발라가 투톱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경기를 주도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오른쪽 윙백이 다양한 실험을 거친 끝에 공수를 겸비한 측면자원 살레마키어스로 결정되면서 기동력이 한층 살아났다. 유리치 감독 시절까지 아예 뛰지 못하던 스타 수비수 마츠 후멜스는 최근 스리백의 중심에서 팀을 조율해주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21세 유망주 니콜로 피실리를 본격적으로 1군에서 활용하며 세대교체에도 속도를 붙이고 있다.
라니에리 감독은 더비 승리 후 기자회견에서 “이제야 우리는 하나의 팀이 되었다. 모든 선수가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서로 지원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났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 할 때다. 이제 햇빛을 봐야 한다”며 로마의 상승세를 자부하는 듯한 발언을 남겼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AS로마 X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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